메뉴 건너뛰기

close

김영삼 전 대통령계인 '민주동지회' 회원이라고 주장하는 이성권씨가 3일 오전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민주동지회의 박근혜 대선후보 지지 결의대회 도중 유인물을 뿌리며 지지 선언에 항의하고 있다. 이씨는 "독재자의 딸인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부끄럽다" "박근혜는 이명박 정권의 연장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김영삼 전 대통령계인 '민주동지회' 회원이라고 주장하는 이성권씨가 3일 오전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민주동지회의 박근혜 대선후보 지지 결의대회 도중 유인물을 뿌리며 지지 선언에 항의하고 있다. 이씨는 "독재자의 딸인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부끄럽다" "박근혜는 이명박 정권의 연장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어제는 '김지하', 오늘은 '민주동지회'...

과거 민주화의 상징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이 잇따라 박근혜 후보 지지선언을 하는 것을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다. 1987년 6·10 민주항쟁 이후 봇물처럼 터졌던 노동자대투쟁. 그 불길을 당겼던 몇몇 노동계 인사들의 극과극 변신이 이번 대선의 막판 변주곡과 너무 닮아 보인다.

수많은 서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고, 수많은 민주진보진영 사람들이 "박근혜 후보로의 정권이양은 서민들을 참혹한 나락으로 떨어지게 할 것이다"고 외치는 와중에도 왜 민주화 주역이라는 인사들은 박근혜 후보 지지선언을 하는 것일까.

어려움 함께 한 동지를 외면한 것은 아닐까?

2009년 2월 13일 언론에는 일제히 "권용목 뉴라이트신노동연합 상임대표(당시52) 사망"이라는 부고가 실렸다.

권용목. 노동자대투쟁의 불씨가 된 현대중공업 노조 설립의 산증인이며 노동자대투쟁을 계기로 설립된 민주노총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그의 마지막 이력란에는 '뉴라이트신노동연합 상임대표'라는 직함이 붙어 있었다.

권용목씨 부고가 난 다음날인 2월 14일, 당시 민주노총 간부였던 한 인사가 급히 기자에게 전화를 해왔다.

"박 기자님, 특종이 될 것 같은데요... 지금 권용묵의 장례식장인데 말씀 드릴게 있습니다."

그는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이어나갔다. 격앙된 목소리에는 권용목씨가 숨지기 전까지 집필했다는 책자가 나오게 된 배경, 그리고 그 와중에 알려지지 않았던 얽혀 있는 비화 등이 비교적 객관적으로 설명됐다. 흥분하기는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이때가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이 생생히 들려왔다. 일부는 녹취하고 일부는 수첩에 적어나갔다.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2009년 3월 12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뉴라이트전국연합 주최로 열린 `민주노총 충격보고서' 출간 보고회에서 참석하여 "권용목 대표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매우 슬프지만 그가 책에 남긴 뜻대로 노동운동의 선진화를 위해 힘쓰겠다"며 발언하고 있다.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2009년 3월 12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뉴라이트전국연합 주최로 열린 `민주노총 충격보고서' 출간 보고회에서 참석하여 "권용목 대표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매우 슬프지만 그가 책에 남긴 뜻대로 노동운동의 선진화를 위해 힘쓰겠다"며 발언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권용목씨가 집필한 '민주노총 충격보고서'라는 책자는 그가 작고한 후 꼭 한 달 뒤인 2009년 3월 12일 뉴라이트전국연합에 의해 출판보고회를 가졌지만, 그 책의 내용은 이미 일부 보수언론에 공개된 바 있었다.

전화를 받고 "특종이다" 싶어 기사를 작성해 나가던 순간, <오마이뉴스> 바이라인에 한편의 기고 글이 등장했다. 기고문을 두 번이나 정독한 후 기자는 두드리던 자판을 거두고야 말았다.

그 기고문은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고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동구에서 노동자대투쟁 당사자들의 힘을 바탕으로 구청장을 지냈던 이갑용씨의 육성 회고였다. (관련기사 : 권용목, 그의 운명이 참으로 가혹하다)

이갑용씨는 이 기고를 통해 한동안 함께 부대껴 왔고, 한 때 존경받았던 노동운동가 권용목씨의 변신 속사정을 알렸다. 노동자대투쟁 주역이었던 그가 뉴라이트 수장이 되어서 끝내 세상을 하직 하기까지의 과정이 목격자의 입장으로 상세하기 적혀 있었다.

기고의 요지는 이렇다. 노동자대투쟁으로 해고된 권용목씨의 생계가 어려워 가족들이 고생을 많이 했고, 이는 개인이 감내하기엔 너무 큰 고통이었다. 또한 그와 동지들을 분리 시키기 위해 일어난 온갖 공작들, 마침내 사면초가에 빠진 권용목씨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을 '운명'이라는 한 단어로 묶어 놓았다.

이갑용씨는 권용목의 고통을 외면한 동지들에 대한 서운함도 주요 내용으로 글에 담았다. 송고하려던 뉴라이트 권용목씨 대한 기사는 이 한편의 기고 글로 지워지고 말았다.

민주당 기득층, 동지들의 믿음 위해 선언하라

1987년 대선을 앞두고 시민들이 주역이 된 6·10 항쟁이 일어났다. 급기야 위기감을 느낀 보수정권과 노태우는 6·29 선언을 내놓는다. 이후 억압됐던 노동자들의 분노가 폭발한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등 대규모 공장이 있던 울산에서는 드디어 노동자 대투쟁이라는 민초들의 항거가 일어났다. 그 시발점은 1987년 7월 21일, 당시 현대중공업 내에 있던 엔진공장의 노조 설립 시도였다.

지난 대선에서 권용목은 정몽준 캠프의 선거운동을 하기도 했다
▲ 정몽준 캠프의 권용목 지난 대선에서 권용목은 정몽준 캠프의 선거운동을 하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이후 역사가 증명하듯 수많은 노동자가 폭행당하고 투옥되고 해고됐다. 당시 현대그룹의 정주영 명예회장은 노조설립에 앞장서다 해고된 노동자들을 거론하며 "내가 죽기 전까지 '권.오.사.김.정'은 절대 복직시키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 첫 번째 나오는 이름 '권'이 바로 권용목씨다. 그는 민주노조를 외치다 투옥되고 해고됐지만 궁극에는 뉴라이트로 변신했다. 두번 째 거론된 '오'로 지칭된 오종쇄씨는 권씨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 후 현대중공업으로 복직한 후 노조위원장으로 당선되며 화려하게 재등장 했다. 이후 오종쇄씨는 우리나라 노동계의 판도를 바꾸는 일대 변신을 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 노동운동 주역들의 극적인 변신 저변에는 해고당한 후 겪어야 했던 경제적 고통과 섭섭함, 동지들에 대한 배신감이 깔려 있다.

이런 노동계의 변주곡이 이번 민주화 인사들의 박근혜 후보 지지선언과 닮아 보인다. 우리는 지난 5년간 변질된 민주항로 속에서 고통받은 서민들의 신음을 눈과 귀로 확인했다. 또한 지난 5년간 민주진보진영은 그 고통의 원인으로 '이명박근혜'를 지목하고 시민들에게 심판해달고 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은 민주진보진영 후보들의 지지율을 앞선다. 믿었던 인사들의 변신은 이어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권용목씨를 변신하게 한 것처럼 민주당은 자신의 동지들을 외면하지는 않았나.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정치혁신은 과연 일어날 것인가? 주민들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을까.

솔직히 이야기해 보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수많은 공직 일자리가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질때, 또한 당선된 대통령이 직접 인선하는 수천 개의 고액 연봉 자리가 채워져 나갈때, 과연 그 자리는 누구의 몫으로 돌아갈 것인가. 표를 찍어준 노동자인가, 아니면 중소상인인가, 그도 아니면 정권교체에 동참했던 시민인가.

함께 정권교체에 동참해도 소외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민주당 인사들이 당을 박차고 안철수라는 새로운 희망울타리로 들어간 것, 소위 민주화 인사였던 자들이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은 이미 자신들은 중심부에서 소외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한 것은 아닌가.

대선을 보름 앞둔 이 시점에서 민주당은 양심선언을 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기득권을 포기하겠다고, 새로운 일자리는 민주당 기득 세력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자질이 있는 사람에게 돌리겠다고.  

덧붙이는 글 | 박석철 기자는 2012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대선특별취재팀입니다.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18대 대선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