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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2일 오후 광주역에 도착한 뒤 역광장에 마련된 무대에서 새누리당의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2일 오후 광주역에 도착한 뒤 역광장에 마련된 무대에서 새누리당의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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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누가 민주당 찍나. 사람 보고 찍는 거다."

지난 12일 오후 광주역 앞에서 300여 명의 다른 시민들과 함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맞은 광주시민 손천섭(72)씨는 이번 대선에서 박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의사가 확고했다. 그는 "박근혜 후보가 이 지역에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키겠다고 공언했다"며 지지 이유를 댔다.

이 자리에서 박 후보는 "광주에 친환경 자동차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호남이 소외되지 않는 탕평인사를 하겠다"고 공약했고, 모인 지지자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60대 남성도 "박 후보의 공약을 믿는다"며 지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광주역 앞에서 박 후보가 시민들에게 환영받는 모습을 보면, 이곳 광주가 새누리당의 불모지라는 게 낭설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인 인파 속에는 '허수'도 있었다. 박 후보가 연설하는 주변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는 한 50대 여성 박아무개씨는 "난 서울에서 왔다"고 밝혔다. 이날 국민희망포럼이라는 박 후보 지지 조직에서 수십 명이 광주로 왔는데, 자신이 그 중 한 명이란 설명이다.

박 후보의 광주행에 다른 지역에서 지지자들이 모이는 건 일종의 '기운 북돋우기'로,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한 고위 당직자는 7월 26일 경선후보자 합동연설회가 열렸던 염주체육관이 썰렁할까봐 걱정했다. 그러나 한 지지조직에서만 10대가 넘는 버스가 동원돼 타 지역의 박 후보 지지자들을 참여시키는 등 자리 채우기에 성공했고, 덕분에 첫 합동연설회가 열띤 분위기로 마무리돼 안도했던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다.

12일 오후 광주역광장에서 박근혜 대선후보 참석을 앞두고 열린 새누리당 투표참여 캠페인에서 도우미들이 '강남스타일' 음악에 맞춰 '말춤'을 추며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12일 오후 광주역광장에서 박근혜 대선후보 참석을 앞두고 열린 새누리당 투표참여 캠페인에서 도우미들이 '강남스타일' 음악에 맞춰 '말춤'을 추며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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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1.7%, 16대 3.6%, 17대 8.6%... 18대는?

이렇게 지지조직의 '환영인파 지원'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건 호남 중에서도 특히 광주지역에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득표율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연이어 패배한 이회창 후보가 15대 대선 때 1.7%, 16대 대선에선 3.6%를 득표했다. 17대 대선 때 압승한 이명박 후보는 광주에선 8.6%밖에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박근혜 후보가 이 지역에서 20%의 득표율을 올리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박 후보의 측근 이정현 공보단장이 4·11 총선 때 광주 서구을에 출마해 낙선하긴 했지만 39.7%라는 높은 득표율을 보인 게 희망의 단초다. 이 단장이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1% 미만의 득표율을 올린 걸 감안하면 괄목할만한 변화다.

그래서 새누리당의 호남 공략도 적극적이다. 박 후보 본인이 '호남 소외 없는 탕평인사'를 줄기차게 외치고 있고, 한광옥 전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에 앉혀 동교동계 인사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또 황우여 대표가 호남에 상주하면서 '호남표 뺏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 박 후보가 '광주 20% 득표'를 낙관하기는 이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근혜-문재인-안철수 3자 구도로 지지율을 조사하면 전국 40% 내외인 박 후보의 지지율은 광주지역에선 10% 내외에 그치고 있다.

"이정현 선전이 광주의 변화"... "여성 대통령 나와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2일 오후 광주광역시 충장로 젊은이의 거리에서 한 상인이 선물한 빨간 귀마개를 착용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2일 오후 광주광역시 충장로 젊은이의 거리에서 한 상인이 선물한 빨간 귀마개를 착용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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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인 54세 남성 정아무개씨는 "아무래도 이전보다는 새누리당 후보를 찍는 표가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총선 때 이정현씨가 선전한 것도 광주의 바뀐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그 때는 이정현씨가 당선될 줄 알았는데, 개표해 보니 아니더라"고 했다.

정씨는 "민주당 찍어줘서 광주에 해준 게 뭐가 있느냐"며 "김대중 대통령 때도, 노무현 대통령 때도 광주에 뭘 해준 게 없지 않느냐, 계속 그러다 보니 광주 사람들도 생각이 바뀌는 것"이라고 푸념했다. 그는 "나는 지난번 총선에서 한두 군데는 새누리당을 뽑아줬으면 사정이 좀 나았을 거라고 보는데, '차라리 새누리당으로 다 뽑아줬으면 좋았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정씨가 민주당에 등을 돌리게 된 건 광주의 경기침체가 민주당 탓이라는 판단이 크게 작용한 듯했다. 정씨는 "전남도청이 이전해서 광주 경기가 다 죽었다, 뭘 빼 갔으면 다시 다른 걸 만들어줘야지, 광역시가 200만, 300만은 돼야 하는데 140만밖에 안되니..."라며 혀를 찼다. 광주광역시 공식통계로 광주 인구는 2011년 기준 147만7570명이다.

박근혜 후보는 이날 광주의 '젊음의 거리', 충장로를 방문하기도 했다. 박 후보가 도착하기에 앞서 충장로 3가와 4가 사이에서 10여 분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던 한 60대 남성은 "여성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지지 이유를 "박정희 대통령 딸이니까"라고 밝히면서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전부 다 가족들이 감옥가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는 다시 한번 "여성 대통령이 한 번 되면 좋겠어"라고 덧붙였다.

그 옆에서 교복을 입고 박 후보가 오길 기다리던 동신여고 3학년 학생 3명도 '투표권이 있다면 누굴 찍겠느냐'는 질문에 똑같이 "모르겠다"고 했지만 "여성 대통령은 좋은 것 같다"고 답했다. '여성 대통령론'은 광주에서도 그럭저럭 먹혀들고 있는 것 같았다.

충장로 주변에서 장어탕이 맛있는 식당을 11년간 운영해온 60대 여사장은 "여자니까 여자 대통령을 찍어야지, 당연히"라고 단언했다. 그는 "나는 딱 마음을 정했어, 요즘은 여자들이 상위인 시대 아니냐"며 "옛날에야 경상도 사람은 경상도, 전라도 사람은 전라도 그러제, 지금은 그냥 잘하는 사람 찍어주는 거제"라고 말했다.

"여자니까 여자 찍고 그러면 안되제"... "3자가 TV토론 좀 해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 12일 오후 광주 동구 충장로 젊음의 거리를 방문해 계란빵을 사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 12일 오후 광주 동구 충장로 젊음의 거리를 방문해 계란빵을 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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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여자라고 찍어주진 않는다'는 반응도 만만치는 않았다. 충장로 주변에서 오랫동안 약국을 운영해온 박아무개(68) 약사는 "여자가 살림을 잘하기는 잘하지, 아무래도 가정에서 세심하게 잘하는 건 여자니까 여자 대통령이 한 번 나오는 것도 나쁘지는 않겄제"라면서도 "그런데 대통령으로서 나라 밖에서 큰일 하는 건 남자가 유리해"라고 단언했다.

기자가 약국에 들어서기 전까지 박씨와 대화를 나누던 50대 여성 손님도 "여자라고 여자 찍고, 남자라고 남자 찍고 그러면 안 되제. 정책으로 뽑아야제"라고 거들었다.

아직 후보 간 정책적인 차이를 잘 몰라서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는 박씨는 "3자가 토론도 좀 해야 쓰겄드만"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박씨는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가겠다, 5년 동안 경제적으로 어떻게 잘 만들어 보겠다는 게 아직 안 나온 거 아니냐"며 "미국에는 후보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명확하게 자기 생각을 얘기하고 토론하고 그러는데 우리나라는 만날 텔레비전에서 누구 후보가 어디 가서 뭐 했다 그런 거만 나오니까 박근혜가 어짠가(어떤가) 안철수가 어짠가, 문재인이 어짠가 잘 모르잖아요"라고 말했다.

박씨는 "(SBS TV 프로그램) <힐링캠프>서 보니까 3명 다 호감은 가드만, 그런데 3명이 딱 마주 앉아서 앞으로 나라를 어찌할 건지 얘기도 좀 하고, 우리가 일본하고도 독도 문제 같은 거 얼마나 징허요"라며 "대통령 되면 이런 거를 어떻게 풀란지, 뭐 그런 거를 얘기해야 좀 생각을 해보지"라고 '판단 근거의 부족'을 푸념했다.

"호남차별 원조는 박정희"... "한광옥은 자기 입지 위해 간 것"

남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충장로의 한 의류가게에 모인 남성들이 보였다. 사장인 62세 임아무개씨는 박 후보를 찍을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는 "박근혜는 얘기를 들어보면 뭐든지 잘될 것 같은 얘기만 한다"며 "희망적인 얘기만 하고 사안에 대해서 핵심을 말하지는 않는다"고 꼬집었다.

임 사장은 "정권을 바꾸긴 바꿔야 한다"고 정권교체론이 박 후보에게도 여전히 적용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의 눈에 한광옥 전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 영입 같은 일은 박 후보가 내세우듯 '대통합의 의지'로 비치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의 여성 대통령론이 별다른 반감을 사고 있지 않은 반면, 동교동계 영입 등을 통한 '호남 끌어안기'는 효과가 크지 않아 보였다. 

그는 "그 사람들은 자기의 정치적인 입지를 위해서 (박근혜에게) 붙은 것이고 득세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에 붙은 것이지, 호남을 위해서 김대중 대통령을 위해서 거기 간 게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진실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대가 돼야지, 명예와 출세만 좇는 사람들의 시대가 되면 안 된다"며 "없이 사는 사람도 입이 바른 곳이 광주"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임 사장은 "한광옥 같은 사람들이 저쪽으로 간 것은 노무현 대통령 잘못도 있다"며 "김대중 대통령이 죽을 고비를 여섯 번이나 넘기면서 붙들어온 민주당을 노무현 대통령이 깨버렸으니 그 사람들도 거시기하고 호남사람들도 거시기한 거 아니냐"고 했다.

임 사장의 친척인 79세 임아무개씨는 "이명박 대통령도 선거 때 여기 와서 그렇게 '호남에 잘하겠다 잘하겠다'했지만 결국 호남 사람들 다 들어내지 않았느냐"며 "호남은 언제나 차별받아 왔는데, 선거 때문에 여기 와서 하는 말에 진정성이 있겠냐"고 말했다.

임씨는 박 후보에 대해 긍정·부정 양면 평가를 내놨다. 그는 "박근혜는 스캔들이나 부정이 나타나지 않았고, 정수장학회 같은 게 있긴 하지만 정치인이라면 그만한 건 다 있다고 봐야지, 특별히 저기(거리낄)한 건 없다"면서도 "그런데 박근혜는 어릴 때 청와대에 있은 거 빼고는 여태까지 국회의원만 한 거 아니냐"고 국정운영 경험 부족을 지적했다.

임씨는 "영·호남이 서로 반감을 갖고 있는 거를 대처해서 없애는 게 필요한데 아직 박근혜가 제시한 게 특별한 게 없다"며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다 다르다, 호남에 대한 차별은 박정희 대통령 때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느냐"고 했다. 호남 차별을 본격화했다고 평가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대통합을 외친다고 해서 믿을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다.

임 사장 가게에서 제품을 주문하고 돌아가던 한 50대 남성도 대화에 껴서는 "구 동교동계는 구태의연한 정치를 하던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박근혜한테 갔다고 해서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사람들이 영향을 받겠냐"며 "박근혜가 호남에서 20% 득표한다고 하대, 그런데 아직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태그:#광주, #박근혜,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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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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