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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야권 대선주자인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6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후보등록 전 단일화에 합의한 후 밝은 표정으로 나오고 있다.
 야권 대선주자인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6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후보등록 전 단일화에 합의한 후 밝은 표정으로 나오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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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부진하던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논의가 지난 6일 두 후보가 백범 기념관에서 전격적으로 단독 만남을 가지고 7개항의 합의문을 발표하면서 가시권에 들어섰다.

후보 등록 이전 단일화를 제1의 합의사항으로 국민에게 발표했고, 곧바로 실무 협상이 진행되고 있어 단일화 가능성은 훨씬 높아졌다. 새누리당은 구태정치, 야합이라고 비난하고 나섰으며, 특히 김태호 의원은 "국민을 홍어X로 보는 것"이라는 막말을 쏟아내 구설에 올랐다.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는 곽노현2"

이뿐 아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의 이정현 공보단장은 12일 "민주당 문재인-무소속 안철수 후보 간 단일화 협상이 공직선거법 232조 '후보자에 대한 매수와 이해유도죄'에 해당되는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정현 단장은 이어 "문-안 단일화의 조건이 명백한 후보 거래, 다시 말해 곽노현 2로 규정지어질 것에 대비해 선거법을 다시 읽어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안 단일화를 두고 공동정부론, 안철수 총리(또는 문재인 총리)설, 차기 대권설, 신당 창당설, 민주당 입당설 등 각종 시나리오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야권단일화에 대한 새누리당의 본격적인 공격도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단일화를 정말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서울시교육감인 곽노현을 감옥으로 보낸 '사후매수죄'라는 법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사실 곽노현 이전에는 '사후매수죄'라는 것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1997년 DJP 연합을 통하여 DJ가 대통령이 되고 JP는 총리가 되었을 때도,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김근태 후보가 사퇴를 했을 때도(나중에 노무현은 대통령이 됐고, 김근태는 장관이 됐다),  2010년 김두관 경남도지사 후보와 강병기 민주노동당 후보의 단일화 때에도 사후매수죄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1997년 DJP연합 당시 후보매수죄를 검토했다가 김대중 당선 후에 이를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사후매수죄는 검찰이 곽노현에게 적용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죄 선고를 받은 곽 교육감이 박명기 교수에게 2억 원을 준 것은 사전에 박명기 후보를 매수하여 금품을 주기로 한 약속을 사후에 이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2억 원이라는 큰 돈이 오갔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후보자 매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원심이 확정된 9월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교육청에서 곽 교육감이 청사를 나서며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후보자 매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원심이 확정된 9월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교육청에서 곽 교육감이 청사를 나서며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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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법원은 일관되게 사전 매수에 의한 금품 제공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사퇴에 대한 사후 대가로 보아서 유죄를 선고했고, 사후매수죄 위헌 주장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매수죄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232조는 후보매수에 대해서 7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에서 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제230조(매수 및 이해유도죄)에서 말하는 "금전·물품·차마·향응 그 밖에 재산상의 이익이나 공사의 직을 제공하거나 그 제공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그 제공을 약속한 자"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곽노현 사건에 적용된 후보매수죄를 검찰과 법원의 잣대로 문-안 단일화에 적용해보면 어떻게 될까?

둘 중의 한 명이 대통령 후보가 되고 다른 한 명이 총리가 된다면(또는 약속만 하더라도) 사후매수죄에 걸릴 수 있다. 왜냐하면 공직선거법 제232조에 의해 후보사퇴를 대가로 '공직'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명이 사퇴하고 대통령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도 매수죄에 걸릴 수 있다. 공직선거법 제232조는 후보사퇴를 대가로 공직뿐 아니라 '사적인 직'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후매수죄가 존재하는 한(위헌이 아니라면) 후보단일화와 공동정부는 환상에 불과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사후매수죄, 과연 타당한가

최근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 측은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피 말리는 접전을 벌였던 경쟁 후보 힐러리 클린턴에게 선거 운동 도중에 국무장관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하며 사퇴를 압박했다. 우리 검찰 기준으로 하면 명백한 후보매수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더 큰 일도 있었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그야말로 돈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후보 선출 과정에서부터 본 선거에 이르기까지 기간도 길고, 천문학적 액수의 비용이 투입된다. 그런데 지난 2008년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서 승리한 오바마는 상대 후보인 힐러리에게 선거 운동 기간에 그녀가 진 빚을 대신 갚아 주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장관에 임명됐고, 오바마 1기 임기 내내 그 자리를 지키다가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하자 사의를 표명했다. 우리 식으로 하면 금품과 공직 제공을 대가로 한 후보매수일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작년 당선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경우는 더하다. 연임 제한 규정 때문에 출마를 할 수 없게 된 푸틴은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으로 내세우고 자신은 총리가 되었다. 다시 작년 선거에 대통령으로 출마하였고 대통령 경쟁 상대였던 메드베데프에게 총리직을 제안하며 결국 후보에서 사퇴하게 했다. 역시 명백한 후보매수이지만 러시아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최근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올랑드 사회당 후보와 박빙의 접전을 펼치던 사르코지 대통령이 80만유로(한화 약 11억원)를 주기로 약속하고 보수적인 기독민주당 크리스틴 부탱 후보를 사퇴시켰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우스운 것은 사퇴한 부탱 후보가 공개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후보매수라는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 왜 약속한 돈을 주지 않느냐는 채무불이행, 즉 '빚 독촉'이었다. 우리 돈 11억원인 80만 유로가운데 48만 유로만 받고 32만유로를 떼일 위기에 처했다면서 빨리 채무를 이행하라는 것이었다.

사르코지 측에서도 그런 약속을 인정하면서도, 현 시기에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반박했다 우리 나라 같으면 (사후매수죄가 아니라) 사전매수죄로 감옥에 갈 일인데 그들은 도덕성 논란은 있을지 몰라도 법적·정치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사후매수죄라는 조항은 우리나라에서만 서슬 퍼렇게 살아있다. 이 법조항이 있는 일본도 이 조항이 사문화된 상황이다. 사퇴해서 매수할 후보가 없는데 무슨 사후매수냐는 항변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언어학적으로도 사후매수는 형용모순이다.

헌법재판소 왜 위헌심판 미루나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있는 헌재 로고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있는 헌재 로고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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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매수죄는 곽노현 교육감에게 유죄선고를 내린 재판부도 위헌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하라고 할 정도로 법적으로 논란이 되는 조항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지난 1월 27일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였으니 헌법재판소 선고기한 180일을 계산해 보면 헌법재판소는 7월 26일 이전에 선고를 해야 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규정한 헌법기관이며, 헌법재판소법 제38조(심판기간)는 "헌법재판소는 심판사건을 접수한 날부터 180일 이내에 종국결정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 다만, 재판관의 궐위로 7명의 출석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그 궐위된 기간은 심판기간에 산입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과 법률의 최고 수호 기관인 헌법재판소가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100일 이상 기일을 초과하고 있는 상태이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민주통합당 서영교 의원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왜 곽노현 사건 위헌 소송에 대한 선고를 하지 않느냐고 헌법재판소를 질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조속한 선고를 촉구하는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고, 국회에는 이 조항에 대한 법률 개정안까지 제출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헌법재판소는 계속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일까?

이번 대선에서 최대의 화두 중 하나는 단일화이다. 그런데, 사후매수죄에 대한 헌재의 결정이 계속 미루어지고 있어 검찰이 문재인-안철수의 단일화에까지 곽노현에게 던졌던 사후매수죄의 올가미를 던진다면 대통령 후보까지 감옥으로 가는 불행한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사후매수죄에 대한 입장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하루 속히 사후매수죄에 대한 위헌 여부를 선고해야 한다. 정치적 사건이라도 정치적 판단으로 결정을 계속 미룬다면, 헌법재판소는 존재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태그:#문-안 단일화, #곽노현, #사후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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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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