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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 폴리테이아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변했다. 최근에 출간된 그의 저서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이하 <상처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도서출판 폴리테이아가 <경향신문>에 연재한 최 교수의 정치칼럼을 묶어 책으로 펴냈다.

변화는 두 가지 면에서다. 하나는 립셋이나 쉐보르스키 등 정치학자들의 이론을 앞세운 정교하고 딱딱한 글쓰기 방식이 '말랑말랑'해졌다는 것. 이른바 '참여 관찰'을 통해 '현장'을 경험한 탓이다. 최 교수는 이 책의 바탕이 된 칼럼을 위해 2011년 8월부터 연구실을 벗어나 10개월간 성남의 새벽노동시장과 전주의 자활센터, 그리고 울산의 현대자동차 공장까지 전국의 노동현장을 찾았다.

일용직 노동자와 봉제공장 여성 노동자, 기초생활 수급자와, 농민, 그리고 청년 비정규직까지. 책에는 최 교수가 현장에서 만난 우리 사회의 중하층계급의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겼다.

다른 하나는 최 교수가 청년 세대에게 보내는 애정 어린 시선이다. 2008년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비롯하여 반값등록금 집회까지, 청년들의 거리 정치의 한계를 지적했던 그였다. 최 교수는 <상처들>에서 청년 세대의 노동문제에 천착한 청년 유니온의 활동을 "개방적이고 현실감각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또한 지방대 학생들과의 만남에서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난 '안철수 현상'에 공감하는 한편 민주주의에서 정당의 역할을 인정하는 학생들의 정치적 성숙과 균형감각도 격찬했다.

최장집 교수가 강연중이다.
 최장집 교수가 강연중이다.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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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1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후마니타스 책다방에서 <상처들>의 저자 최장집 교수와의 만남의 자리가 열렸다. 후마니타스가 주최하고 50여 명의 독자가 함께했다.

올해로 칠순을 맞이한 백발의 노교수는 '노동현장' 방문을 통해 "연구자로서 그들보다 나은 처지에서 모순적으로 연구 활동을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행사는 책 관련 질문에 대한 최 교수의 강연과 청중의 질의응답으로 이루어졌다. 최 교수가 솔직담백하게 집필과정의 뒷이야기를 풀어내 유쾌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러나 노동하는 사람들을 대표하지 못하는 정당의 한계와 그로 인해 오작동하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를 지적하는 최 교수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박상훈(이하 박): 집필동기를 이야기해 달라.
최장집(이하 최): 경향신문 칼럼을 청탁 받았다. 원래 200매 원고지 10장이 기본 분량인데, 20매를 요구하더라. 보통 칼럼처럼 논리중심으로 가면 독자가 지루해 할 것 같아 스토리를 넣기로 했다. 때 마침 고려대 노동연구소 실사팀이 장위동 봉제공장에 실사를 간다고 하더라. 그 참에 따라 가서 쓴 첫 칼럼이 장위동 봉제공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박: 1장에서 새벽시장 일용직 노동자들과 3장에서 봉제공장 여성 노동자를 만났다. 최 교수님의 박사 학위 논문에 당시 청계피복 노동자들을 다뤘다. 30년이 지난 지금 소감이 어떤가?
:  청계 피복 노동자들은 1세대 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결혼과 맞벌이를 거쳐 자식들을 대학 보내고 다시 재취업한 곳이 봉제공장이다. 공장은 임대료가 싼 장위동 주변에 밀집되어 있는데 이 산업은 거의 종착 수준이다.

그래도 산업화로 혜택을 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성남의 새벽시장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들은 70~80년대 중동에서 건설경기를 타고 일을 했던 건설역군들이다. 지금은 일용직으로 성남지역의 반지하 등에서 거주하며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의 자녀들은 경기권의 지방대를 다니고 다시금 취업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경제발전에 기여한 만큼 현실에서 혜택을 누리고 있지 못한 대표적 사례다.

우스갯소리로 비정규직들은 이렇게 말한다

박: 2장에서 현대자동차 공장의 모듈화된 첨단기술과 현장의 비정규직의 열악한 근로환경에 대해 언급하셨다. 여담이지만 보람 없는 노동으로 불량률이 많지 않을까 걱정하셨는데?
: 현대차 노조는 민주노조의 산실이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조 사무실은 공장 밖에 있다. 작업복 색깔도 다르고 생산라인에서 힘든 일은 거의 비정규직이 한다. 2년 전에 비정규직 최(병승)씨가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는데 회사는 당사자만 정규직화를 하겠다고 한다.

법은 보편적이어야 한다. 나머지 수천 명이 각각 재판을 받으라는 논리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 노조출입자를 감시하는 모습이 80년대와 너무도 닮았다. 민주주의 하에서 권위주의적 통제 그리고 작업에 인간의 정성이 담길 수 없는 환경에서 만들어진 차가 품질이 좋을 수 없다. 우스갯소리로 비정규직들은 내가 만든 몇 월, 몇 일 몇 시에 생산된 차는 사지 않을 것이라고 하더라.

박: 4장에서 전주의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들을 만났다.
: 전주 덕진구에 기초생활수급자등을 대상으로 하는 자활센터가 발달되어 있다고 해서 자활센터와 복지센터등에서 자활훈련을 하는 노인들을 만났다. 사회복지 대상자들이 열패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았다. 수급 대상의 선정 등 행정이 기계적이고 관료적이라는 느낌도 많이 받았다. 자활센터에서 꽃꽂이나 빵굽기 등의 교육이 이루어지는데 실효성이 없다고 하더라. 화려한 외관의 복지센터에는 퇴직공무원들이 멋있게 차려입고 드나들지만 정작 못사는 이들은 부담스러워 오지 못한다. 선거에서 각 정당들이 내세우는 복지 이야기는 좋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박: 공덕동 재래시장을 방문했다. 서민들에게 싼 가격에 일용품을 공급하다가 재벌의 진입으로 대표적으로 주변화된 집단인데.
: 공덕시장을 방문하기 전에 나는 원래 이마트와 하이마트도 구분 못했다. 현장을 방문하고 나서 확실하게 구분이 가능해졌다(웃음). 재래시장과 재벌 대기업의 이해관계가 적나라하게 충돌하는 곳이었다. 대기업 마트가 진출하면 재래시장의 생존이 유지되기 어렵지 않나. 문제는 법적으로 재래시장을 보호하는 기제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성장 정책이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지며 나타나는 문제다.

부작용에 대한 피해보상에 관심이 없이 알아서 하라는 정부의 성장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중앙정부 정책, 시청, 구청 등의 형식적 법과 조항은 있지만 실제 작동하지 않더라. 구청장이 민주당으로 바뀐 후에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사례와 극명하게 비교되더라. 일본에서는 재래시장 보호법이 이미 30년대에 만들어졌다. 통산성이 의지를 가지고 재벌 기업의 진입을 규제한다. 그래서 뒷골목 자영업이 살아있다.

후마니타스 책다방에서 열린 최장집 교수 저서 저자와의 대화
 후마니타스 책다방에서 열린 최장집 교수 저서 저자와의 대화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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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대화 후에는 독자들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드러난 문제에 대한 해답이 뭐냐는 어느 독자의 질문에 최 교수는 "자신의 권익을 자신의 목소리로 주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 유니온을 모범적 사례로 든 최 교수는 "법만 바뀐다고 노동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며 "비정규직이 노조를 만드는 것처럼 현장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중요한 대선 의제 되야"

또한 최 교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와 사회운동의 주체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한국정치와 사회운동이 학생운동 출신의 중산층 엘리트에 의해 지배되면서 사회경제현실과 동떨어져 이념화되고 급진성을 띄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18대 대선에서도 단일화나 NLL문제 등을 의제화하려는 정치권에게 정책대결을 주문했다. 최 교수는 "각 후보들이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이원적 노동시장의 문제해결을 가장 중요한 의제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교수님께서는 대의 민주주의와 정당의 한계를 지켜봤다. 정당 정치의 실패와 좌절이 이 책을 쓴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정당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는 이유가 뭔가?"

저자와의 대화 말미에 배진(43)씨가 최 교수에게 던진 질문이다. 최 교수는 "모바일 투표 등으로 직접민주주의 요소가 정치에 대한 대중 참여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있지만 사회적 약자를 구분하기 어렵다"며 "정당은 대표되지 않는 사회적 약자를 조직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는 만큼 태생적으로 진보적"이라고 다시금 정당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덧붙이는 글 | 이동철 기자는 시민기자 대선특별 취재팀입니다.



태그:#최장집,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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