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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노년 생활을 즐기는 유럽의 노인들. 한낮엔 수영장 비치의자에 누워 오수를 즐기거나 독서, 수다로 시간을 보낸다.
 여유로운 노년 생활을 즐기는 유럽의 노인들. 한낮엔 수영장 비치의자에 누워 오수를 즐기거나 독서, 수다로 시간을 보낸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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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제공하는 뷔페식을 먹으러 가기 위해 서둘렀습니다. 전날 장거리 여행으로 많이 지쳐있던 아이들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침 시간을 놓치면 밖에서 사먹어야 하기에 남편과 난 열심히 애들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서둘러서 간신히 아이들과 함께 1층에 있는 식당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습니다.

오래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습니다. 원피스를 편하게 입은 할머니와 반바지를 입고 허리가 약간 굽은 할아버지가 타고 있었습니다. 약간 멈칫했습니다. 뜻밖의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가까이서 백인 노인들을 만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 조금 특별하게 여겨졌습니다.

우리가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할머니가 웃으면서 반겼습니다. 우리도 미소로 답했습니다. 다음 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서고 할아버지 한 사람이 탔습니다. 그 다음 층에서도 노인들이 타고, 계속해서 엘리베이터가 설 때마다 노인들이 탔습니다. 그들은 서로 아는 사인지 인사를 나누었으며, 대화를 했습니다. 영어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의 놀라움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1층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서면서 아주 깜짝 놀랐습니다. 식당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전부 백인 노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순간 기둥 뒤로 숨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노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 가족에게로 쏠렸기 때문입니다. 난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를 못했습니다. 누군가의 구경거리가 돼야 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처신하지를 못하는 편이어서 마음 같아서는 식당을 얼른 나오고도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도 있고, 남편도 있는데 혼자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어 애써 용기를 냈습니다.

우리가 식당 안으로 들어갔을 때 우리들만큼이나 유럽 노인들도 놀란 표정을 지은 채 잠시 먹던 걸 멈추고 하던 말을 잊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순대국밥집에서 순대국을 홀짝홀짝 먹다가 백인 가족이 갑자기 들어왔다고 하면 한순간 놀라움을 느낄 텐데 바로 그런 상황인 것 같았습니다.

후아힌은 한국인이 거의 찾지 않는 태국의 휴양지인 듯했습니다. 그 유명한 팟타야는 여기가 한국인지 착각을 일으킬 만큼이라고 하는데, 다들 그리로 몰려가고 후아힌은 아직은 한국인에겐 낯선 곳이었습니다. 후아힌은 유럽 노인네들의 독무대 같았습니다. 그런 무대에 갑자기 낯선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했으니 노인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주목을 받는다는 건 조금 불편했습니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음식을 날랐습니다. 음식 사진도 찍었습니다. 촌스럽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서양 노인들에게 그 아침이 일상이겠지만 우린 특별한 날이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계란 프라이에 빵과 야채를 한 접시 담아와 오렌지 쥬스와 함께 먹었습니다. 오믈렛도 있고, 여러 종류의 볶음밥과 수프, 다양한 종류의 고기 요리가 있었지만 여전히 음식에 대해서 까다로운 난 생야채와 과일을 빵에 싸먹는 것으로 아침을 대신했는데, 이란에서도 늘 먹었던 이런 종류의 아침이 무척 맛있었습니다.

호텔 창문으로 희한한 바람이 불어왔다. 마법의 약이라도 섞인 것처럼 마음을 마냥 행복하게 만드는 바람이었다.
 호텔 창문으로 희한한 바람이 불어왔다. 마법의 약이라도 섞인 것처럼 마음을 마냥 행복하게 만드는 바람이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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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노인들은 우리에게 관심을 거두었습니다. 우리가 옆 테이블로 앉자 음식을 먹다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곧 자신들이 하던 일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 쪽에서 그들을 몰래 관찰했습니다.

옆자리 사람들처럼 부부만 와서 별 말 없이 조용히 아침을 먹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사람이 한 테이블에 앉아 카페에서처럼 끝없는 수다를 떠는 부류도 있었습니다. 어떤 쪽이든 부러웠습니다. 주부 입장에서는 식사 준비에서 해방된다는 것이 부럽고, 매일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비롯해 맛있는 뷔페식 아침을 실컷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많이 부러웠습니다. 우리에겐 오랜 시간 별러 마련한 특별한 아침이지만 노인들의 분위기로 봐서는 일상처럼 느긋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특별한 일상을 매일 즐기는 노인들이 진심으로 부러웠습니다.

후아힌의 날씨는 더운 열대지방이긴 하지만 바닷바람은 정말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을 갖고 있고, 열대지방의 여유로움이 공기 속에 있었습니다. 만사가 좋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공기가 대기를 채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대화도 나누고 여유를 즐기면서 사는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즐거운 대화를 나누면서 천천히 아침을 먹고, 한낮에는 호텔 수영장 비치의자에 누워 오수를 즐기거나 독서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과 난 수영을 못하기 때문에 해변을 산책하러 갔지만 아이들은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는데, 수영장을 내려다봤더니 노인들이 모두들 수영 보다는 비치의자에 누워서 책을 읽거나 잠을 자거나 아니면 옆 사람이랑 한가롭게 수다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말에 의하면 수영장 비치의자에 누웠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바다에서 몰려오는 바람의 느낌이 행복한 기분에 빠지게 했다고 했습니다. 한낮에 거리를 걸으면 여전히 땀이 차고 눈을 크게 뜰 수 없을 정도로 햇빛이 강렬하고, 굉장히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수영장 비치의자는 행복한 기분에 빠지게 하는 상쾌한 바람이 분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의 말을 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객실에서 바다로 난 창문을 열어 놓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 그런 기분이 좀 들었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와 기분을 행복하게 했습니다. 아마도 후아힌에서 가장 그리운 것을 들라고 하면 아마도 이 바람의 느낌일 것 같고, 후아힌을 다시 찾는다면 이 바람이 그리워서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럽에서 온 백인 노인들은 매일 이런 바람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즐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부럽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리고 또 밤이 되면 친구들과 어울려 바에 앉아서 맥주 한 잔을 놓고 흘러간 팝송을 들으면서 끝나지 않을 수다로 후아힌의 밤을 즐기고 있는 노인들은 아마도 복이 많은 노인들일 것 같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는 노년의 모습이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태그:#후아힌, #백인노인, #노년생활,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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