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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미국이 그어 놓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미국이 그어 놓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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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중국과 미국(형식상은 유엔)이 체결한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에서는 육상 경계선만 규정했을 뿐, 해상 경계선은 따로 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직후, 미군 사령관(형식상은 유엔군 사령관)인 마크 클라크는 북한과의 합의도 없이 서해의 해상 경계선을 일방적으로 설정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이렇게 생겨났다.

미군은 이런 사실을 북한에 공식적으로 통보하지 않았다. 미국의 행동은, 한밤중에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칼로 금을 긋고는 상대방이 알아서 준수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로부터 근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서해 바다는 수없이 출렁거렸고 거기에는 그 어느 것도 옛것 그대로인 것이 없다. 그런데도 미국은 여전히 그 바다 위에 금이 그어져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도대체 어디에 그런 금이 있느냐고 비웃고 있지만, 미국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씨춘추>는 진시황 때 재상인 여불위가 약 3000명의 지식인을 동원하여 편찬한 고대 중국의 역사서다. 이 책의 '신대람' 편에 유명한 각주구검(刻舟求劍) 고사가 있다. 미국의 NLL 설정 조치를 연상케 할 만한 이야기다. 

"초나라 사람 중에 강을 건너는 이가 있었다. 그의 검이 배 안에서 물속으로 떨어졌다. (그는) 급한 나머지, 배에 글을 새겼다. '여기는 내 검이 빠진 곳이다.'

배가 (육지에) 도착했다. 그는 (배 안의) 글자가 새겨진 곳에서 물에 뛰어들어 검을 찾았다. 배가 움직였는데, 검이라고 움직이지 않았을까! 이렇게 검을 찾으니, 어찌 어리석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야기의 이어지는 부분에서 이 고사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옛날 법으로 나라를 통치하는 것은 이와 똑같다. 시간은 움직이는데 법이라고 안 움직이겠는가? 이렇게 다스리면, 어찌 위태롭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각주구검 고사는 흘러간 옛것에 얽매여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위정자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행동하라는 메시지다. 

배를 타는 중국인들. 중국 광주(광저우)의 옛 항구인 황포고항의 모습.
 배를 타는 중국인들. 중국 광주(광저우)의 옛 항구인 황포고항의 모습.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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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일방적 경계선 고수... 60년이 지났지만

미군 사령관이 임의로 만든 NLL은 오늘날 그 효용성을 의심받고 있다. 북한이 끊임없이 이 선을 무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미국의 일방적 조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경계선이란 것은 원칙적으로 양측의 합의에 기초하는 것이다. 물론 합의가 없어도 경계선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경계선을 긋는 쪽의 파워가 압도적으로 우세해서 상대방이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때를 전제로 한다.

NLL은 그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북한이 지속적으로 이 선을 무시하고 있는 데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당사자들의 합의를 전제로 하는 사안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미국은 60년 전에 일방적으로 그어 놓은 경계선을 고수할 뿐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 방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변화하는 상황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자신이 탄 배가 칼이 빠진 곳으로부터 이미 멀리 떨어졌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그러니 초나라 사람의 각주구검 고사를 미국 정부에도 적용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은 그믐날 밤바다에다 몰래 금을 긋고 돌아간 뒤 그 선의 유효성을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 금이 지난 수십 년간 파도(북한의 무시와 한국 내 비판)에 노출되었으니, 아직까지도 온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바닷물보다 단단한 것으로 그릇이 있다. 고체인 그릇도 언젠가는 원형이 변하고 만다. 그렇다면 액체인 바다는 훨씬 더 빨리 변할 수밖에 없다. 사서삼경 중 하나인 <서경>의 '반경' 편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사람은 옛사람을 찾고, 그릇은 옛것을 찾지 말고 새것을 찾으라."

미국이 일방적으로 그은 NLL '한물 간 것들'

마크 클라크.
 마크 클라크.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영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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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클라크가 일방적으로 그어 놓은 NLL 역시 '한물 간 것들'이다. 그것은 오래되어 망가진 상태로 남아 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서해 바다의 평화를 보장하기는커녕 항상 분란의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대통령선거에서도 이로 인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NLL이 얼마나 말썽거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노자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성자는 상심(常心)이 없어서 백성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는다"고 했다.

'상심'의 상(常)은 불변적이고 고정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상심이란 것은 과거에 집착하는 고집스런 마음을 가리킨다. '백성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는다'는 것은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비추어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재정립해야 한다는 의미다.

상심을 버리고 세상의 흐름에 잘 대처해야 성자가 될 수 있다는 노자의 말은, 미국이 앞으로도 계속 세계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다면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할 메시지다.

북한이 NLL을 존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국 대선에서도 이것이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은, 미국이 이제는 이 문제에 대해 현실적인 사고를 해야 함을 의미한다. 미국은 서해 바다에서 더 이상 각주구검을 하지 말아야 한다.


태그:#NLL, #북방한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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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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