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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유니온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계자들이 지난해 2월 8일 오전 서울 강남에 위치한 도미노피자 본사에서 가진 '30분 배달제' 폐지 요구 공개서한 발표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청년유니온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계자들이 지난해 2월 8일 오전 서울 강남에 위치한 도미노피자 본사에서 가진 '30분 배달제' 폐지 요구 공개서한 발표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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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

콜센터에서 주문이 내려온다. "위잉" 하는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티켓 인쇄기에서 주문 명세서가 빠져 나온다. 다음 배달은 기용이(가명, 19세) 차례. 컴퓨터 시스템은 배달 순서를 미리 정해 놓았다. 자기 차례임을 아는 기용이는 피클과 소스를 챙긴다. 피자를 만드는 테이블 위에서는 나름의 곡예가 펼쳐진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소스가 발리고, 토핑을 얹은 도우는 오븐으로 들어가 피자가 된다.

피자가 나오면 기용이는 이제 출발한다는 뜻으로 주문 목록에 '기사 지정'을 누른다. 이 모든 정보는 본사 컴퓨터에 기록된다. 주문을 받은 시점부터 액정 화면의 주문 목록에는 '30'이라는 숫자가 뜬다. 고객과의 약속 시간이다. 피자 업체마다 다르지만, 우리는 주문 시점부터 배달 출발까지 10~12분, 목적지 도착까지 30분, 배달 복귀까지 10분이라는 규칙이 정해져 있다.

이 모든 것은 달성률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된다. 이 달성률은 매장을 평가하는 데 주요한 요소로 쓰인다. 기용이는 피자를 포장해서 오토바이에 싣는다. 그리고 달린다.   

지난해(2011년) 2월 주요 피자 배달 업체들은 스스로 '30분 배달제'를 철폐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30분 내에 배달을 못할 시 매장이나 배달 사원에게 부과되는 페널티만 줄였다고 하는 것이 맞다. 여전히 배달은 30분 내에 이뤄져야 하고, 모든 시스템도 거기에 맞춰 작동하고 있다.

30분 안에 배달을 해야 하는 것은 이 시스템 안에 있는 배달 직원에겐 당연한 전제다. 시간을 확인할 틈도 없을 정도로 바쁠 때는 그러지 않지만, 좀 늦었다 싶으면 자기도 모르게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게 된다. 약속 시간(주문 시점으로부터 30분)을 넘겼는지 안 넘겼는지 보는 것이다.

주문 명세서가 나오는 순간부터 '30분' 타이머는 돈다 

가을. 요즘 같은 때에 피자 가게 매출은 상승한다. 물론 사회 문화적인 원인을 파악하긴 힘들다. 점장에 따르면 여름에 저점을 찍고 9월, 10월로 갈수록 매출이 상승한다고 한다. 특히 토요일과 일요일, 정오를 지나 오후 9시까지 피자집에는 불이 난다.

주문 티켓은 계속해서 "삑!" "삑!" "삑!" 혀를 내밀 듯 쏟아지고, 티켓은 복잡한 주방과는 별개로 순서대로, 질서 정연하게 포장 탁자 위에 있는 홀더에 걸린다. 주문 티켓의 긴 줄이 사라질 때까지 배달 직원들은 배달-복귀, 배달-복귀를 반복한다.

내가 일하는 곳의 점장은 좋은 사람이다. 언제나 직원들의 안부를 묻고, 종종 고기를 사주며 항상 따뜻하게 대해준다. 또한 바쁠 때를 대비해 최대한 많은 사람을 일하게끔 스케줄을 짠다. 하지만 정말 바쁠 때는 그러한 배려가 소용없다. 주방과 배달 모두 정신없이 돌아간다. 점장은 사장 밑에 있고, 어떻게든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배려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정말 바쁠 때, 다섯 명이 배달을 한다. 점장은 말한다.

"야! ○○점은 세 명, 심할 때는 두 명에서 하루 종일 돌아."

행복과 불행은 상대적이라고 했던가. 그래 비록 여기도 바쁠 때는 힘들지만, ○○점보다는 낫구나. 주문이 밀리면, 결국 내가 달리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는 더 빨리 달려야 한다. 다른 누군가가 빨리 달리지 않으면, 내가 더 빨리 달려야 한다. 

지난 8월 MBC <뉴스데스크>는 '400원에 목숨 건 배달'이라는 제목으로 심층보도를 했다. 제목만 봐서는 배달 건당 수당 400원 때문에 배달원들이 빨리 달릴 수밖에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뉴스의 내용도 거의 '400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이다.

주문이 뜨면 30이라는 숫자가 표시되고 곧 29가 된다. 그렇게 0을 향해 달려 간다. '-4'는 30분이 지나고도 4분이 더 흘렀음을 나타낸다.
▲ 배달 시스템 화면 주문이 뜨면 30이라는 숫자가 표시되고 곧 29가 된다. 그렇게 0을 향해 달려 간다. '-4'는 30분이 지나고도 4분이 더 흘렀음을 나타낸다.
ⓒ 이홍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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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수당 때문에 죽음의 질주를? '400원'의 진실

피자 체인의 배달 직원의 임금은 대부분 시급제로, 시급 얼마에 건당 얼마가 붙는다. 4500원에서 5000원 사이의 기본 시급에 건당 400에서 500원. 업체마다 또 매장마다 차이가 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시급 4600원에 배달 건당 400원이다. 정해진 시간 동안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이라면 당연히 빨리 달리겠지만, 빨리 달린다고 해서 많은 돈을 더 벌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 빨리 달려서 자기 앞에 배달을 나선 직원보다 빨리 복귀한 경우, 정해진 횟수보다 한 번 더 배달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400원을 더 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하루에 몇 번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하루에 9~10시간 정도 일하면서 배달을 많이 하면 40건까지 한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앞 사람보다 빨리 복귀하는 경우는 많아야 4~5번 정도. 하루 종일 '죽음의 질주'를 한 대가 치고 2000원은 너무 적다.

배달 횟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빨리 달리는 것보다는 운이 좋아야 한다. 배달 순서가 정해져 있고 그 순서에 따라 주문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먼저 출발한 사람이 10분 거리에 있는 배달지를 배정받고, 그 뒤에 출발하는 사람이 바로 옆 건물 또는 2분, 3분이면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배달지를 배정받는 경우라면 뒤에 간 사람이 순서를 뒤집을 수 있게 되고 한 번 더 배달을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400원이라는 돈에 대해 갖는 생각이 모두가 다르다. 달랑 400원이지만, 쌓이면 큰돈이 된다고 생각하는 배달원이 있는가 하면, 몸을 해치면서까지 400원을 더 벌 필요에 대해 의문을 갖는 배달원도 있다. 전자의 경우라면, 즉, 죽기 살기로 모아야겠다고 달리는 사람이라면 400원 때문에 죽음의 레이싱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후자가 더 많은 듯하다.

며칠 전, 피곤해 보이는 동료에게 대신 배달을 가줄까 물었더니 흔쾌히 승낙했다. 그는 오전 11시부터 근무 중이었고, 오후 2시에 출근한 나는 밤 9시 퇴근을 앞두고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보고 동료들은 '배려'라는 말까지 써가며 나를 칭찬했다. 400원 때문에 더 빨리 달린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냉장고에 붙은 '안전수칙 5계명'이 안전교육의 전부

오토바이 배달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대형 음식 체인에 소속돼있지는 않다. 동네에 널린 치킨 집과 동네 피자집도 배달을 한다. 동네 업체들은 특정한 배달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다. 주문 음식이 나오면 대기하고 있던 사람이 가는 것이고, 대기하고 있던 사람이 없다면 막 배달에서 돌아온 사람이 가는 것이다.

이런 소규모 배달 업체는 건당 400원이라는 제도를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30분 내 배달"이라는 구호를 외쳤던 적도 없다. 그래도 동네 가게 소속의 배달원도 빨리 달리고, 신호를 위반하며, 가끔씩은 곡예 운전을 한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배달 시스템이 위험 운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적인 이유라고 할 수는 없다. 대형 배달 업체와 동네 업체의 배달원들이 위험 운전을 하는 것, 둘을 아우르는 이유는 '교육 부족'이다.

나는 지금 두 달이 조금 넘게 이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안전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마음씨 좋은 점장의 말이 교육의 전부다. 오토바이 배달은 언제나 위험하긴 하지만, 어둡거나 비가 오는 날 특히 위험하다.

점장은 이 위험한 때가 오면, 위험한 곳을 일일이 알려준다. 또 위험한 지역이 있으면 다른 동료에게 알려주라고 말한다. 그래서 내가 일하는 지점에서는 몇 년째 큰 사고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과연 다른 가게의 운영자들도 이곳의 점장만큼 안전 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안전 교육이 정기적으로,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면, 점장의 안전의식을 물을 필요도 적어진다. 작년에 오토바이 배달원 사망 사고가 이어지자, 해당 업체들은 대대적인 시스템 개편에 나섰다. 한 업체는 보호구 강화, 안전 운전에 대한 캠페인, 그리고 이를 담은 공익광고까지 실으며 안전에 대한 투자를 했다.

당연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안전에 대한 투자가 배달 업계 전체로 확산되는 일이 시급하다. 내가 일하는 곳에는 냉장고에 붙은 안전 수칙 5계명이 유일한, 공식적인 안전 교육이다.

자장면 배달 나가는 노동자
 자장면 배달 나가는 노동자
ⓒ 양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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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빠르게'가 아닌 '더 안전하게'를 위하여

회사의 이익도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의 몸과 생명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 그런데 회사의 이익을 위한 시스템은 확고하게 존재하면서 사람의 생명을 위한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볼라벤이 서울을 지나가던 날, 나는 배달 현장에 있었다. 나는 하루 동안 놀라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피자를 시켜먹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를 걱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다들 "조심히 운전하세요",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등의 말로 나를 격려해 주었다. 마음 속 끝까지 걱정을 했다면 배달을 시키지 않았어야 옳지만, 주문을 한 사람들의 말과 태도에 충분히 감동을 받았다.

태풍경보가 내린 그날은 평일 치고는 장사가 잘되었다. 그래도 늦은 배달은 없었다. 만약 우리 가게의 배달원 중 누군가가 한 시간 늦은 배달을 했다고 해도 누구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을 것이다. 태풍이 왔으니까.

매일 볼라벤 같은 태풍이 온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히 뭔가를 빨리 배달한다는 문화는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의 의식에는 '빠름'보다 '안전'이 더 중요하게 자리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배달을 하는 사람도, 배달을 받는 사람도 말이다. 안전 교육이 아무리 강화된다고 해도 오토바이 배달 사고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업체 사장에게, 배달 직원에게, 손님에게, '더 빠르게'가 '더 안전하게'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남아 있는 이상 말이다.


태그:#배달, #오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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