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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들이 정책에 관한 얘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경제민주화, 복지, 정치개혁 중심으로 논의가 되고 있지만, 다른 의제들에 대해서도 논의는 시작됐다. 그런데 경제민주화, 복지, 정치개혁으로는 차별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박근혜 후보도 조금씩은 얘기하고 있는 주제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차별성이 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유권자들이 구별하기 어렵다.

사실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박근혜 후보와 가장 차별화할 수 있는 정책은 경제민주화나 복지, 정치개혁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탈핵(탈원전) 문제이다.

아직 미흡한 탈핵 입장

녹색당 이유진 후보(비례 1번)와 당원들이 지난 3월 27일 오전 여의도 새누리당사앞에서 최근 심각한 고장사고를 일으키고 있는 고리1호기 원전 수명연장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새누리당 비례후보 1번 민병주 후보 규탄 및 고리1호기 폐쇄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녹색당 이유진 후보(비례 1번)와 당원들이 지난 3월 27일 오전 여의도 새누리당사앞에서 최근 심각한 고장사고를 일으키고 있는 고리1호기 원전 수명연장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새누리당 비례후보 1번 민병주 후보 규탄 및 고리1호기 폐쇄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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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탈핵(탈원전)은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10일에는 한국 최초로 탈핵을 주제로 한 대규모 집회가 시청광장에서 열렸다. 1만여명이 참여한 이 행사를 통해, 한국에서도 핵발전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올해 3월 4일에는 녹색당이 창당을 했다. 비록 총선을 거치면서 등록취소가 되었다가 지난 10월 13일 재창당을 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정치의 영역에서 탈핵을 본격적으로 주장하는 정당이 등장한 것은 큰 변화이다. 녹색당은 2030년까지 탈핵을 하는 로드맵을 제시하고, 탈핵을 위한 첫 걸음으로 '탈핵 및 에너지전환기본법'을 제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녹색당은 이번 대선에서 탈핵을 관철시키기 위해 유력 야권후보들에게 탈핵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들을 제안하고 있다. 필요하면 정책을 갖다 쓰라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기존의 정당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기존에는 '적정 수준의 원자력발전을 유지'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당론이었지만, 작년 12월 민주당은 '원전 전면재검토'로 입장을 바꿨다. 그리고 유력한 야당 대선후보들인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탈핵(탈원전)이라는 입장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제시되지 않거나(안철수), 탈핵을 하는 시점을 너무 늦게 잡아서(문재인) 비판을 받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정책비전발표를 통해 탈핵을 하겠다고 하고,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아직 세부적인 정책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는 탈핵입장을 표명했지만, 2060년까지 탈핵을 하겠다고 얘기를 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 탈핵에 대한 각 대선후보들의 입장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언급없음. 다만 핵발전 확대정책에 찬성하는 것으로 추정됨

* 배경
- 원자력은 완벽히 안전할 수도 없고, 영원할 수도 없는 에너지원
-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세계가 탈원전을 위한 본격적인 노력을 시작

* 정책방향
- 원자력확대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
- 자연친화적인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획기적으로 확대

* 정책과제
- 신고리 5,6,7,8 및 신울진 3,4호기의 건설중단
- 2030년 전력수요를 수요전망치 대비 20% 감축
-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확대
- (가칭) 동북아 평화에너지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추진
- 전국 각 지역마다 신재생에너지단지 건설
- 에너지산업분야에서 좋은 일자리 50만개 창출

 *공급 위주의 에너지 정책에서 수요관리 중심의 정책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
- 전동기와 가전기기 등에 <최저효율기준>을 적용하여 에너지 절약
- 사회적 형평성, 환경성, 지속가능성의 기준으로 서민들의 부담이 커지지 않는 범위에서 전기요금체계 개선

* 전력공급의 안정성을 해치지 않고 원전을 단계적으로 줄일 수 있는 국가 청사진 마련
- 새로운 원전 건설을 중단하고,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겠음.
- 가동 중인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평가해 국민들에게 공개
- 한·중·일은 물론 북한까지 포함하는 동아시아 방사능 및 환경오염 감시네트워크 구축

*전체 에너지 공급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2030년까지 20% 이상(발전비중 30%)이 되도록 지원확대


너무 조심스러운 문재인·안철수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너무 조심스럽다. 안철수 후보의 경우에는 "전력공급의 안정성을 해치지 않고 원전을 단계적으로 줄이겠다"는 표현을 쓰는데, '전력공급의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너무나 당연한 말을 굳이 쓰는 것을 보면 자신감이 부족해 보인다. 탈핵과정을 밟고 있는 독일같은 나라에서도 전력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전기수요를 관리하고, 가스발전을 일시적으로 늘리기도 한다. 54개의 원전을 가동하다가 지금은 2개만 가동중인 일본도 가스발전으로 부족한 전력을 메우고 전기수요를 관리해서 전력공급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에는 신규원전 건설을 중단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착공하기 전의 원전만 중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신월성2호기, 신고리3,4호기, 신울진 1,2호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러나 신울진 1,2호기같은 경우에는 아직 공정율이 30%대에 불과하다. 충분히 중단시킬 수 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같은 나라는 다 지은 원전도 가동을 하지 않았던 사례가 있다. 원전을 가동하기 시작하면 20만년을 보관해야 하는 고준위 폐기물(사용후 핵연료)이 양산된다. 또한 핵연료를 장착해서 가동을 시작하면, 발전소 자체가 거대한 방사능폐기물 덩어리가 되기 때문에 나중에 뒤처리를 해야 한다.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따라서 보다 과감하게 공사중인 핵발전소도 건설을 중단시켜야 한다. 원전이 위험해서 중단하겠다고 하면서, 공사중인 원전은 그대로 지어 40년 이상 가동하겠다는 것은 일관성도 없는 일이다.

박근혜 후보는 핵발전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있지만, 핵발전 확대에 찬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1번으로 당시에 원자력계에 있던 민병주 의원을 정한 것만 보더라도 박근혜 후보는 핵발전 확대 입장이다.  따라서 야권후보로서는 박근혜 후보와 가장 차별화할 수 있는 정책이 바로 탈핵이다. 어차피 탈핵을 할 것이라면 조용히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광장에서 당당하게 소신을 밝히는 것이 옳다.

이제 한국에도 원전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식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원전이 경제적이지도 않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조사결과들을 통해 밝혀졌다. 재생에너지가 원전보다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든다는 것도 밝혀졌다.

문제 핵심은 산업용 전기수요...탈핵은 가능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단체 소속 회원들이 지난 6월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명다한 노후원전인 고리1호기의 재가동을 반대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이들은 "고리1호기는 35년이 넘은 우리나라 최고령의 핵발전소이며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는 그 자체로 치명적이다"며 고리1호기의 폐쇄를 주장했다.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단체 소속 회원들이 지난 6월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명다한 노후원전인 고리1호기의 재가동을 반대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이들은 "고리1호기는 35년이 넘은 우리나라 최고령의 핵발전소이며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는 그 자체로 치명적이다"며 고리1호기의 폐쇄를 주장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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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을 하려면, 전기수요를 억제하고 줄여야 하는데, 이것은 인기없는 정책 아니겠느냐' 는 얄팍한 계산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우리와 미래세대의 안전이 걸린 문제를 그런 얄팍한 계산으로 따진다는 것도 문제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근거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탈핵을 하면 가정에서 전기를 못 쓰는 것아니냐?" 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핵발전을 하지 않는 국가들도 가정에서도 다 전기쓰고 산다.

문제의 핵심은 가정용 전기가 아니다. 산업용 전기수요가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전기의 53%는 산업용으로 쓰이고 있고, 그 중에 매우 큰 부분을 일부 에너지다소비 대기업들이 쓰고 있다. 전기를 많이 쓰는 10대 기업이 국내전기의 10% 이상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들이 이렇게 전기를 많이 쓰는 것은 원가이하로 싸게 전기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다른 에너지를 써도 될 일에 전기를 쓰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부터 바로잡으면 된다. 그러면 산업용 전기수요를 줄일 수 있다. 물론 가정용 전기수요도 관리해야 하지만, 우선순위로 보면 산업용 전기수요를 줄이는 게 우선이다.일부 기업들은 이윤이 줄어들 지 모르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원전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독일처럼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에너지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여러 가지 정책들을 동원하면 된다. 탈핵은 특이한 정책방향이 아니라, 여러 국가와 지역에서 이미 현실로 만들고 있는 대안이다.

탈핵을 위한 여러 조직들의 연대기구인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이 문재인, 안철수, 박근혜 후보에게 정책질의서를 보냈다. 구체적인 질문들이 담긴 질의서이다.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는 이 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통해 탈핵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진정성있는 입장을 밝히기 바란다.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의날' 행사가 20일 오후 2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진행된다.
▲ 태양과 바람의 나라를 꿈꾸다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의날' 행사가 20일 오후 2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진행된다.
ⓒ 행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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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일(토) 오후 2시 서울 청계광장에 탈핵을 바라는 시민들이 모인다. 문화제를 하고 퍼레이드도 할 예정이다. 일본처럼 20만명이 모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지방에서도 버스가 올라올 예정이다. 이 가을에 이렇게 모이는 이유는 그만큼 탈핵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이날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가 청계광장에 와서 자신의 탈핵 정책을 당당하게 밝히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바란다.  


태그:#탈핵,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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