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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에서 펼쳐진 정조대왕 능행차 재현
 안양에서 펼쳐진 정조대왕 능행차 재현
ⓒ 최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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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2대 정조대왕(正祖·1776~1800년 재위)의 화산능 행차가 안양의 대표적 전통문화축제인 제27회 안양만안문화제의 일환으로 지난 14일 오후 안양여고 앞을 출발해 안양8동 명학공원에 이르는 안양 중앙로 일대에서 재현됐다.

정조대왕은 능 행차를 통해 국왕의 지위를 강화하고 백성의 현실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이날 재연에는 조선시대 당시 화려하면서도 위엄 있었던 당시의 행렬을 비록 규모는 작지만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기 위해 복장과 장비를 갖추는 등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특히 이날 행렬에는 수도군단 장병 250여 명이 참여했다. 수도군단은 지역사회와의 유대 및 문화예술에 대한 의식 고취를 위해 지난 2007년 처음 능행사 시연에 군 장병들을 참여시켜 큰 호응을 얻자 연대장을 정조대왕역을 맡는 등 장병들이 옛 복장과 분장을 하고 매년 화성 능행사의 주역으로 참여해 오고 있다.

능행차 행렬이 지나가는 안양 만안구 구도심의 중앙시장과 대형 빌딩과 육교 위에서는 시민들이 운집해 모처럼의 볼거리를 만난 듯 카메라와 스카트폰에 담느라 바빴다. 특히 교통 통제로 인해 차량 소통이 지연되는 등 적지않은 불편이 있음에도 버스 승객들과 승용차 탑승객들도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구경하는 모습도 보였다.

정조대왕 화산 능행차 재연
 정조대왕 화산 능행차 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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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 능행차 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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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 능행차 재연
 정조대왕 능행차 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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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 능행차를 보기 위해 육교위에 올라선 시민들
 정조대왕 능행차를 보기 위해 육교위에 올라선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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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 능행차 재연
 정조대왕 능행차 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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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만안교는 정조대왕의 효심을 보여하는 대표적인 홍예석교
정조대왕의 능행사 재현을 환영하는 시민들
 정조대왕의 능행사 재현을 환영하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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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조대왕은 1789년 아버지 사도세자 묘소를 화산(花山)으로 이장한 후 모두 13번에 걸쳐 화성을 방문하는 능행 거둥길(임금의 나나들이길)에 나서 처음에는 남태령과 과천을 지나 안양의 인덕원을 지나는 과천로를 이용하다가 즉위 20주년을 맞는 1795년 6차 원행부터 시흥과 안양 석수동을 거쳐 구 군포사거리를 지나는 시흥로(현 만안로)를 이용했다.

특히 1795년 능행차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원행을 떠나 당시 상황은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고스란히 기록돼 동행한 사람은 1807명이고 말이 796필이었으며, 행차의 전 과정에 동원된 사람은 5661명, 말이 1417필이었다고 한다.

정조대왕의 능행차시 왕의 숙박과 휴식을 위해 '행궁'을 지었으며 다리를 놓기도 했다. 현재의 안양역 인근인 안양1번가 골목길에는 안양행궁이 있었다. 안양행궁은 현재 그 터 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그 자리에는 표지석을 세워 위치만을 확인할 수 있다.

안양시 석수동에 있는 만안교 역시 정조의 행차를 위해 지어진 건축물이다. 만안교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위해 새로운 시흥대로를 만들면서 석수동의 개천을 편히 건너도록 하기위해 축조한 조선 후기 대표적인 홍예석교(虹霓石橋)다.

만안교는 1795년(정조 19년)에 당시 경기관찰사(京畿觀察使) 서유방이 왕명을 받들어 전국의 석수쟁이들을 불러모으고 인근 삼성산 일대의 돌을 채취하여 3개월의 공역 끝에 이를 완성하였다. 현재는 도로 확장으로 약 200여 미터 아래로 이동하여 다시 축조되었다.

정조대왕이 능행차시 건넜던 만안교(안양 석수동)
 정조대왕이 능행차시 건넜던 만안교(안양 석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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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안양, #화산능행차, #정조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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