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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고됐다. 대체 왜? 이유가 궁금했다.
 나는 해고됐다. 대체 왜? 이유가 궁금했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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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에서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일터를 떠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지난 8월 28일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으니 40여 일이 지난 셈이다. 한 달에 4번밖에 못 쉬는 아르바이트로 3개월을 일하고 '담당'이라 불리는 '홈플러스 비정규직 직영사원'이 된 지 1년 만의 일이다('담당'이 되면 주 5일 근무로 바뀐다).

홈플러스에서는 '무기계약 비정규직 직영사원'이 되려면 6개월짜리 계약서에 4번 서명해야 한다. 홈플러스에서는 이 절차가 '관례'처럼 굳어져 있다. 하지만, 나는 두 번 만에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것이다. 나는 이를 해고라고 생각한다. 대체 나는 왜 '해고'됐을까.

지난 1년 동안 나는 '홈플러스 인터넷 쇼핑몰'에서 고객들이 주문한 물건을 대신 장을 보는 일을 했다. 하루 종일 매장을 걷고, 일이 많은 날에는 배송 시간을 맞추기 위해 뛰다시피 하면서 주문된 물건을 찾아 담았다. 10kg이 넘어가는 생수, 20kg짜리 쌀 포대를 하루에도 수십 개씩 들어서 바구니에 담다 보면 허리가 제대로 펴지지도 않았다.

정해진 배송 시각은 오전 11시·오후 2시·오후 5시 총 3번. 하지만 내가 근무했던 홈플러스 영등포점은 주문 건수가 일하는 직원의 수에 비해 많아 매번 배송 시각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퇴근은 오후 4시 반이었지만, 거의 매일 오후 6~7시였다. 저녁이면 다리는 항상 퉁퉁 부어있었고, 발바닥이 너무 아파서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이 와중에 나는 해고를 당했다. 나는 일을 못하지 않았다. 1년 이상 일하면서 지각 한 번 한 적 없다. 물건을 잘못 담아 배송이 잘못된 적도 없었고, 고객 응대를 잘못한 적도 없었다. 되레 '일을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고, 직접 주문고객을 응대하는 전화업무까지... 시키는 일은 다했다. 내가 해고당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해고된 뒤 상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재계약 불가 사유를 물었다. 그는 본인이 입사한 후 두 번 계약한 직원을 재계약하지 않은 게 처음이라고 했다. 점장에게도 물었다. 점장도 "이상하다"며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되돌아온 것은 '홈플러스 이커머스의 매출 부진에 따른 인력 감축 계획이 있었다, 배송 차량을 줄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인력이 남게 되니까'라는 답변 뿐이었다. 홈플러스 영등포점 인사과의 한 관계자는 "해당 부처(이커머스)의 실적이 떨어져 매출이 감소되고 있었다"며 "인력 감축은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나는 그렇게 일자리를 잃었다. 남은 직원들은 '쫓겨난 직원'의 빈자리를 메워가며 또다시 매일매일 연장 근무 중이다. 내가 해고된 뒤에는 '추석 특수가 코앞인데 인원이 부족하다'며 아르바이트생 3명을 보충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해고사유는 '옳은 말'한 것뿐

홈플러스 인터넷 쇼핑몰에 게시됐던 사진
 홈플러스 인터넷 쇼핑몰에 게시됐던 사진
ⓒ 홈플러스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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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홈플러스의 '모델'이었다. 홈플러스 누리집에서 인터넷 쇼핑을 위해 상품을 클릭하면 화면에 내 사진이 나왔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주문된 상품을 쇼핑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 속에는 내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홈플러스 이커머스 직원 대표로 YTN과 인터뷰도 했다. 홈플러스를 위해 나는 얼굴까지 팔았다. 하지만, 해고된 이후에도 내 얼굴은 그대로 누리집에 걸려 있었다.

지난 9월 9일, 억울하게 해고된 것도 분한데 내 얼굴을 그대로 놔두는 게 화가 나 블로그에 글을 썼다. 이후 확인해 보니 사진이 교체돼 있었다. 내게 연락만 없을 뿐, 홈플러스는 나를 매시간 주목하고 있는 듯했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왜 해고됐을까. 실제 홈플러스 측은 내 해고 사유를 "근무평가 결과 최하위로 평가, 근무함에 있어서 직근 상사인 세일즈 매니저의 정당한 업무지시나 방침에 수시로 반발하는 등 부적절한 언행을 상습적으로 해왔다"며 "여러 차례 고객들로부터 불친절 등의 사유로 컴플레인이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내가 해고 당한 것은 바로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이야기해서였다. 나는 그동안 '연장근무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점' '명절근무자 급여지급 기준이 바뀐 것에 대해 직원들에게 사전 공지가 없었던 점' '나중에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자 관리자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한 점' 등을 지적했다. 그 지적은 나를 '회사에 불만이 많은 문제 직원'으로 낙인찍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공짜 '연장'. 직원들의 근무 시간은 30분 단위로 쪼개 놓으면서(정규직을 제외한 홈플러스 비정규직 직원들은 7.5시간, 6.5시간 등 30분 단위로 근무 계약을 한다) 30분 연장은 연장근무로 쳐주지도 않는다. 사실 법리적으로 따지면 30분도 연장근무 시간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인데, 관리자는 대놓고 '30분 연장은 연장근무로 치지 않는다'고 통보했다.

내가 홈플러스에 일하러 다닐 때의 일과는 이랬다. 오전 8시까지 출근. 하지만 출근시간 10분 전에 미팅이 진행됐다. 미팅 전에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주임은 지각을 운운하며 잔소리를 했다. 7.5시간 근무 시간 중 무급 휴게시간은 점심시간 1시간, 유급 휴게시간은 30분이었다. 하지만 유급 휴게시간은 고사하고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점심 시간마저도 1시간을 채우지 못하기 일쑤였다.

일주일에 12시간 이상 연장근무를 할 수 없게 돼 있었지만, 일이 많다는 이유로 주 12시간 이상 연장근무를 시키기도 했다. 불법이라 12시간 이상 연장근무를 해도 쳐주지 않으니 당연히 연장수당도 없었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 인사과 관계자는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연장 근무를 한 적은 없다"며 "지급해야 할 수당은 다 지급했다"고 항변했다.

추석 앞두고 감행한 1인 시위

추석 연휴 전인 지난 9월 28일 홈플러스 영등포점 앞에서 진행한 1인 시위
 추석 연휴 전인 지난 9월 28일 홈플러스 영등포점 앞에서 진행한 1인 시위
ⓒ 김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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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를 잃고 나서 40여 일 동안 홀로 외롭게 억울함을 외쳤다. 같이 일한 동료들에게 내 억울함을 호소하는 메일을 보냈으나 반송되기도 했다. 회사는 나와 대화하려고 하기보다는 동료들의 입단속에 급급했다. 내가 일하던 부서에는 안마기가 들어왔고, 다른 부서는 회식이 계속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혼자여도 계속 싸우리라고 결심했다. "다시 일하게 해달라"고 애원해도 대답없는 홈플러스 앞에서 추석 연휴 전날 1인 시위를 했다. 손님들만 관심을 둘 뿐, 회사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또다시 무시 당한 것. 하지만 이제는 무시 당해도 다시 일할 수 있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을 뭐든 다 해볼 생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월급이 100여만 원밖에 안 돼도, 매일 같이 손님들에게 무시당하는 감정노동에 시달려도 '일'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누군가가 다시는 나와 같이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홈플러스가 잠깐 아르바이트하는 직장이 아닌 평생 다니고 싶은 즐거운 직장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태그:#홈플러스, #비정규직,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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