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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치매' 수준입니다. 방송뉴스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너무 과격한 표현 아니냐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과격한 표현 맞습니다. 그런데 'MB 내곡동 사저 매입 의혹'과 관련해 특검을 거부한 청와대 입장을 앵무새처럼 읊조리기만 하는 방송뉴스에는 이런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보도한 내용마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수준 이하의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추석 연휴가 끝난 즈음인 3일 청와대는 '대통령 내곡동 사저 터 매입 의혹' 특별검사로 추천된 김형태, 이광범 변호사 임명을 사실상 거부했습니다. 청와대는 그러면서 여야 협의를 거쳐 민주통합당이 특별검사를 추천하기로 한 당초 합의대로 특검 추천 문제를 다시 논의해 달라고 여야에 촉구했습니다.

'협의'와 '합의' 혼동한 청와대... 모른 척 하는 방송3사

어이가 없습니다. 특검 조사대상인 청와대가 사실상 수사기관이나 마찬가지인 특검의 변경을 요청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는 청와대의 일방적 요구와 주장이라는 얘기입니다. 민주통합당이 청와대의 특검 거부를 '초법적 발상'이라며 비판하는 것도 이런 배경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청와대가 3일 밝힌 입장을 자세히 뜯어보면 '논리비약'과 '자가당착'이 얼마나 심각한 지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여야 협의를 거쳐 민주통합당이 특별검사를 추천하기로 한 당초 합의대로 특검 추천 문제를 다시 논의해 달라"는 청와대 요구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한겨레 2012년 10월4일자 6면
▲ 한겨레 한겨레 2012년 10월4일자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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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4일) 한겨레가 지적했지만, 애초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민주당이 특검을 추천하고, 이 과정에서 여야가 협의한다'고 합의했습니다. "누구를 특검으로 추천할지, 여야가 합의한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민주당의 특검 추천'만 명기된 특검법이 지난달 3일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는 생뚱맞게(!) "여야 협의를 거쳐 민주통합당이 특별검사를 추천하기로 한 당초 합의대로 특검 추천 문제를 다시 논의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여야 협의를 거쳐 민주통합당이 특별검사를 추천하기로 한 당초 합의대로 특검을 추천했는데, 청와대는 "여야 협의를 거쳐 민주통합당이 특별검사를 추천하기로 한 당초 합의대로 특검 추천 문제를 다시 논의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지금 무슨 말장난 하는 것도 아니고… 협의와 합의의 개념조차 모르는 걸까요.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그래도 대한민국 최고의 기관 가운데 하나인데 이런 기본개념조차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청와대가 생뚱맞은 '특검 임명거부'를 결정한 배경은 뭔지 그리고 속내는 어떤 것인지 짚을 필요는 있습니다.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청와대가 대승적으로 특검을 수용하겠다고 한 지가 엊그제인데 갑자기 '특검 임명거부'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방송3사를 비롯해 언론이 이와 관련한 분석기사를 내놓아야 하는 것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박용진 대변인이 3일 논평을 낸 것처럼 갑작스런 청와대의 특검 임명거부가 "특검의 무력화와 정쟁화를 통한 진상규명 방해가 아닌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보도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혹은 '모른 척 하는' 방송3사

그런데 대한민국 언론들 특히 그 중에서 방송3사는 정말이지 상황이 좀 심각합니다. 앞서 언급한 과격한 표현을 다시 한 번 사용해서 죄송합니다만 '치매에 걸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자신들이 과거에 보도한 내용마저 기억하지 못한 채 무비판적으로 청와대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한번 보시죠.

2012년 10월4일 KBS <뉴스9>
▲ KBS 2012년 10월4일 KBS <뉴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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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정치권이 특검범을 합의한 것과 달리 민주통합당이 일방적으로 특검을 추천한 것에 대해 우려를 밝혔습니다 … 하(금렬 대통령) 실장은 특히, 여야 정치권이 국민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며 여야가 진지하게 협의해달라고 강조했습니다" (2012년 10월3일 KBS  <뉴스9> '청와대 '여야 합의로 특검 재추천'요구)

"위헌 논란속에서도 내곡동 사저 특검법을 수용한 데에는 여야가 협의해 특검후보를 추천한다는 합의가 있었는데, 이 합의정신이 사실상 깨졌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2012년 10월3일 MBC <뉴스데스크> '청, 여야 특검 재추천 요구')

"청와대는 여야 협의를 거쳐 민주통합당이 특별검사를 추천하기로 한 당초 합의대로 특검 추천 문제를 다시 논의해달라고 여야에 촉구했습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여야에 합의정신 이행을 촉구한 것이라며 재추천 여부는 정치권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2012년 10월3일 SBS <8뉴스> '특검 후보자 재논의 촉구…청, 정무수석 사의')

방송3사 가운데 특히 KBS는 "여야 정치권이 국민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며 여야가 진지하게 협의해달라고 강조"한 하금렬 대통령 실장의 발언까지 리포트에 포함시키더군요. 마치 여야 정치권이 국민과 한 약속을 어겨서 청와대가 특검 임명을 거부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풍기게 하고 있습니다. 이거 사실일까요. 사실이 아닙니다. 근거를 대라구요. 대겠습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방송3사가 메인뉴스에서 보도한 리포트에 모든 것이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여야 합의로 국회 통과' 일제히 보도한 방송3사 … 지금은 기억이 안 난다?

이른바 '내곡동 사저 특검법'은 지난달 3일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통과됐고, 이명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이를 수용해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도 통과가 됐습니다. 당시 방송3사는 메인뉴스에서 이를 어떻게 보도했을까요. 한번 보시죠.

"내곡동 사저 특검법안이 통과됨에 따라 대통령은 민주당이 추천하는 2명의 후보자 가운데 한 명을 특별검사로 임명하게 됩니다." (2012년 9월3일 KBS <뉴스9> '내곡동 사저 특검법 통과)

2012년 9월3일 KBS <뉴스9>
▲ KBS '뉴스9' 2012년 9월3일 KBS <뉴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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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까지 가는 진통 끝에 법사위를 통과한 특검법안은 본회의에서 표결처리 됐습니다. 특별검사는 민주당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며 이달 말 수사를 개시해 빠르면 다음 달 말, 수사기간이 연장되면 11월 중순 수사 결과가 나옵니다." (2012년 9월3일 MBC <뉴스데스크> '내곡동 사저 특검법 통과')

2012년 9월3일 MBC <뉴스데스크>
▲ MBC 2012년 9월3일 MBC <뉴스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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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결 끝에 법사위를 통과한 특검법안은 본회의에서 찬성 146, 반대 64표로 가결됐습니다." (2012년 9월3일 SBS <8뉴스> '내곡동 사저 특검법' 통과 … 신경전)

법사위를 통과하고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처리 된 법안을 청와대가 어제(3일) '여야 합의정신'이 깨졌다며 특검 임명을 거부합니다. 청와대의 이 같은 주장이 말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방송3사는 자신들이 이렇게 보도해 놓고도 청와대의 주장과 요구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습니다. 제가 방송3사 뉴스를 향해 '치매 수준'이라고 비판하는 이유입니다. 이 정도만으로는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방송뉴스를 조금 더 추가로 보여드릴까 합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이번 특별검사는 국회의장이나 대한변협에서 추천해왔던 과거와는 달리 사상 처음으로 야당이 추천합니다 … 특별검사는 민주통합당이 추천하는 변호사 2명 가운데 1명을 대통령이 다음달 5일까지 임명해야 합니다." (2012년 9월21일 KBS < 뉴스9> '쟁점과 절차')

2012년 9월21일 KBS <뉴스9>
▲ KBS 2012년 9월21일 KBS <뉴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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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특검법 처리시한인 오늘(21일) 오전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지난 3일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내곡동 사저 특검법을 수용했습니다 … 여야는 모두 이 대통령의 특검법 수용을 환영했습니다 … 이 대통령은 민주통합당이 2명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사흘 안에 그 가운데 1명을 특별검사로 임명합니다." (2012년 9월21일 SBS <8뉴스> '내곡동 사저 특검법 "수용")

'여야 합의로 사상 처음 야당 추천' 방송3사 일제히 보도

'이번 특별검사는 사상 처음으로 야당이 추천하고, 특별검사는 민주통합당이 추천하는 변호사 2명 가운데 1명을 대통령이 다음달 5일까지 임명해야 한다' - 방송3사는 지난달 3일과 21일 메인뉴스에서 분명히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내곡동 사저 특검법을 이명박 대통령이 수용했다고도 보도했습니다. '여야 합의' '특검 야당 추천' '이명박 대통령 특검 수용' 모두 방송3사가 보도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청와대가 어제(3일) '여야 합의정신'이 깨졌다며 특검 임명을 거부하니까 자신들이 보도한 내용마저 기억하지 못하고(?) 청와대 입장만 되풀이합니다. 가치판단도 없고, 비판정신도 없습니다. 오늘자(4일) 한겨레가 지적한 것처럼 "(청와대가) 겉으로는 '여야 합의'라는 절차를 문제 삼고 있지만, 실제론 민주당 추천 특검 후보들에 대해 '반새누리당 성향'이라는 불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특검 임명을 거부한 것이 눈에 보이는 데도 방송3사는 이를 모른 척 합니다.

청와대의 말이 안 되는 억지도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방송3사의 '치매뉴스'를 보는 것도 힘드네요. 도대체 방송뉴스가 정상화 되는 날은 언제일까요. 참 … 그러고 보니 '안철수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해 뭇매를 맞았던 MBC는 여전히 해명이나 사과를 하지 않고 있네요. 요즘 방송뉴스, 인내심을 가지고 보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홈페이지에도 올렸습니다.



태그:#MB사저, #특검, #방송3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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