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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는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늙어가는 기술이 뭐 있겠어? 나이 들어서도 안 죽으면 그게 늙어가는 기술 아니야?"

연극 보러 가는 길, 연극 제목이 <늙어가는 기술>이라고 했더니 스무 살 딸아이가 종알거린다.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아 대충 얼버무렸다. "글쎄, 그런가... 아무튼 연극 보고 늙어가는 기술이 뭔지 알아올게." 

여전히 미숙하고 철없는 50대

포스터
▲ 연극 <늙어가는 기술> 포스터
ⓒ 경기도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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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때밀이 생활 18년 차인 남자 '순옥'과 그에게 때를 밀어달라고 하지만, 거절당하는 건달 '승갑'. 순옥은 사채업자 '찬봉'에게 빚 독촉을 받고는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 '무칠'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종격투기 선수인 '창수'와 트레이너 '철동'의 입씨름. 스무 살 쯤 나이 차가 나는 연상녀 '옥녀'와 연하남 '길섭', 건달 승갑을 따라다니는 '춘기', 찬봉의 아내이며 우울증 환자인 '현순'. 그리고 강한 척 하는 '태분'.

이 아홉 명의 남자와 세 명의 여자. 이들은 각자 떨어져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서로 연결돼 있다. 예를 들면 찬봉은 태분을 좋아하지만 태분은 창수에게 마음이 기울어 있고, 현순과 무칠은 초등학교 동창이다. 무칠과 태분은 또 모종의 관계가 있다. 아무튼 모두가 서로 스치고 지나며, 설사 모르는 사이라 해도 어딘가에 작더라도 접점이 존재한다.

중년을 넘긴 이들의 삶은 그리 편하지 않다.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피 끓는 청춘의 때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사랑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는 아파하고 힘들어 한다. 이다음에 나이 서른이 되면, 마흔이 되면, 쉰이 되면... 마치 욕정도, 고민도 다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던 저 어리고 젊었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나이는 착실하게 빼놓지 않고 먹었지만 여전히 삶에 부대끼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댄다. 담담한 물이 되기는커녕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요동친다. 도대체 나이는 어디로 먹었는가 말이다.

연극 속에서 여러 번 나오는 말. "나도 나를 잘 몰라!" 맞다. 정말 모르겠다. 쉰 초반으로 젊음과 늙음의 중간쯤 와 있다고 느끼는 나 자신에게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어느 때는 젊었을 때보다는 그래도 조금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가도, 여전히 철없고 미숙하기 짝이 없는 한심한 모습이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두루마리 휴지에 걸려 있던 정답

극장 로비에 설치돼 있는 작품.
▲ 작품 <늙어가는 기술> 극장 로비에 설치돼 있는 작품.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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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작가의 말처럼 늙어가는 기술은 기술이 아니며,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음을 인정한다. 졸저 <마흔에서 아흔까지>(2005·서해문집)의 책 표지에 '나이 듦의 기술'이라는 뜻으로 'Art of Aging'이라고 적어 놓은 처지지만 그 기술을 잘 모르기는 매한가지다.     

연극 속 마지막 대사에 백배 공감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사는 게 뭐 있겠어요. 그냥 살아가는 거지요!"

극장 로비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기둥에 붙여놓은 연극 포스터 액자 앞에 풀린 두루마리 휴지. '웬 휴지를 놔뒀지'라고 생각하며 다가가 자세히 보니 <작품명 : 늙어가는 기술>이라고 적혀 있다.

나이 들어서도 안 죽으면 그게 바로 늙어가는 기술이라고 명쾌하게 이야기했던 스무 살 딸아이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이번에도 명쾌하게 답한다.

"그거 봐. 두루마리 휴지가 다 풀려서 없어질 때까지 사는 게 늙어가는 기술이라는 뜻이잖아."

아, 젊음의 단순명료함이여!

덧붙이는 글 | 연극 <늙어가는 기술> (작, 연출 : 고선웅 / 출연 : 이승철, 류동철, 김미옥, 김종칠, 이태실, 서창호, 이찬우, 박현숙, 강성해, 양진춘, 김길찬) ~ 9/28 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태그:#늙어가는 기술, #늙음, #나이 듦, #중년, #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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