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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득세 감면? 현장의 생리를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죠. 장관이나 실무자가 강남권 부동산 서너 군데만 다녀도 알걸. 3개월? 무슨 장난 하나?"

'쌓인 게' 많은 목소리였다.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M아파트 상가의 한 부동산 중개소. 이곳 대표인 유진환(가명)씨는 기자가 손님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 속사포처럼 정부의 부동산 정책 비판을 늘어놨다.

취득세와 양도소득세 감면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9.10 주택거래 활성화 대책의 법률 처리가 임박했지만 시장 밑바닥 반응은 대체로 냉랭했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었다"면서 "나중에 다시 조이더라도 부동산 관련 세제를 더 풀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취득세 혜택 묻는 문의전화도 한 통 없다"

정부는 지난 10일 주택거래 활성화를 위해 올해 말까지 취득세를 50% 감면하기로 했다. 이 방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9억 이하 1주택자는 현행 2%이던 취득세가 1%로 줄고, 9억 초과 주택 보유자나 다주택 보유자는 4%씩 내던 세금을 2%만 내게 된다. 이 정책의 수혜자로는 강남의 중·대형 아파트들이 꼽혔다. 주택 가격이 비쌀수록 더 많은 세금 경감 효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선 부동산 중개업소 분위기는 '썰렁' 했다. 유진환씨는 "취득세 관련 혜택을 문의하는 전화도 한 통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취득세 감면 방침에 따르면 대치동 인근의 10억 원짜리 아파트를 샀을 때 받을 수 있는 세금 혜택은 2000만 원 정도.

유씨는 "집 값이 더 떨어질 거라고 보는 사람이 많은데 2000만 원 세금 혜택은 별 이점이 못 된다"면서 "지금 시장 분위기라면 정책이 국회를 통과해도 시장 활성화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이미 이 정도 정책으로 변화를 줄 수 있는 시기가 지났다는 것이다. 유씨는 "정책 내놓는 공무원들이 현장을 와봤다면 이런 실효성 없는 정책을 내놓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상가 같은 층의 ㄱ부동산 이장현(가명)씨도 마찬가지 의견이었다. 이씨는 "지금 부동산 시세가 2008년 9월, 미국 리먼브라더스 파산할 때 즈음의 가격"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에 대한 시장 기대심리가 그만큼 낮다는 얘기다.

이씨는 사람들의 인식 문제도 꼽았다. 정부는 이번 조처를 '감면'이라고 할지 몰라도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는 "2003년부터 거의 7년간 정부가 취득세 50% 감면 정책을 썼었다"면서 "그 때문에 많은 고객들이 원래 취득세가 2%이고 잠시 높아졌던 취득세가 다시 본래대로 돌아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향후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 해도 영향은 저가 아파트로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어 9억 원 이상의 고가 아파트는 거래가 없겠지만 저가 아파트의 경우 이사를 하려는 실수요자 위주로 반응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강남은 고가 아파트들이 많아 정부의 9.10 대책 수혜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은마 아파트.
 강남은 고가 아파트들이 많아 정부의 9.10 대책 수혜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은마 아파트.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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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활성화? 좀 더 과감한 세금 혜택을 설정해야"
같은 상가 ㅈ부동산 대표 이미희(가명)씨도 "반짝 거래가 있을 수는 있지만 시장 활성화는 무리"라는 의견이었다. 이씨가 말하는 '반짝 거래'란 다른 목적으로 원래부터 주택 구매 의사가 있던 사람들이 취득세 감면 기간에 몰리는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씨는 "이 동네는 원래 학군 수요가 있는 곳이라서 올해 안에 전입을 마쳐야 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다"면서 "정부 방침대로 연말까지 취득세 감면을 해준다면 그 사람들이 국회 통과 직후에 몰릴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물량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씨는 "이런 물량은 그야말로 몇 건 정도"라면서 "시장 활성화로 이어가고 싶다면 좀 더 과감한 세금 혜택을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번 정책을 변환할 때 시장에 충격을 줄 만한 강한 신호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연말까지로 정해진 이번 취득세 감면의 '유통기한'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집 하나 계약하면 잔금 치르는 데까지 적어도 두 달은 걸린다는 것이다. 이씨는 "9월 말은 추석이 껴 있어서 실질적으로 남은 기간은 두 달 정도인데, 집을 사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시간이 촉박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 정부 들어 부동산 정책들이 자주 나오기는 했는데, 매번 미미한 수준이라 효과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곳 상가에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만 20개가 넘는데 거래는 7월에 1건, 8월에 1건, 9월에 1건 성사된 게 전부"라면서 "취득세, 양도소득세를 전액 면제해주는 수준의 '강한 정책'이 나오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고 덧붙였다.

18일 오후, 서울 강남 대치동 M 아파트 상가. 이 상가에는 약 20개의 부동산 중개업소가 영업을 하고 있다.
 18일 오후, 서울 강남 대치동 M 아파트 상가. 이 상가에는 약 20개의 부동산 중개업소가 영업을 하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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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깎아줘 봐야 400만 원... 그거 깎인다고 아파트 사겠냐"

상대적으로 저가 주택이 많은 강북 지역도 별 반향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울시 중랑구 신내동D아파트 인근의 ㄷ부동산 대표 이유진(가명)씨는 "애당초 취득세 감면으로 주택거래가 활성화된다고 보는 건 무리"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취득세 감면을 해준다고 해서 갑자기 없는 돈이 생기는 게 아니지 않느냐"면서 "원래 돈이 있는 사람들이야 득실을 따져볼 수도 있겠지만 고작 몇 백만 원 비용 주는 걸로는 실수요자가 따라붙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몇 건이 성사되는 분위기이긴 한데 그건 '눈물의 가격'에 나온 급매물이라 그렇지 취득세 감면의 영향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D부동산 대표 류만영씨도 비슷한 의견을 밝혔다. 류씨는 "강북 아파트는 대부분 취득세가 2%에서 1%로 줄어 든다"면서 "1% 깎아줘 봐야 200~400만 원 정도인데 그거 깎인다고 아파트 사겠냐"고 반문했다.

이러한 시장 반응은 사실 정부 일각에서도 예견한 것이다. 10일 열렸던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기획재정부가 취득세 감면 방안을 주장하자 행정안전부는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한 주택거래 취득세 감면 관련 검토' 보고서를 제출했다.

행안부는 이 보고서에서 이명박 정부가 3차례에 걸쳐 실시했던 주택거래 취득세 감면 직후의 주택거래량 추이를 분석했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취득세 감면 후 주택 거래량은 잠시 증가하다가 대부분 1~2개월 사이에 곧바로 감소했다. 이를 근거로 행안부는 "취득세 감면을 해도 거래 활성화 효과는 없거나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은 18일 국회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가 발표한 취득세·양도세 감면 조치가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관련 법률 개정을 조속히 처리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양도세 감면안은 19일 기획재정위원회에, 취득세 감면안은 20일 행정안전위원회에 각각 상정될 예정이다.


태그:#강남, #대치동, #9.10대책, #취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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