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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부산 서면 특화거리 대청소에 참가한 자원봉사자들이 거리를 청소하고 있다.
 10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부산 서면 특화거리 대청소에 참가한 자원봉사자들이 거리를 청소하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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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최대 번화가 서면의 D상가에서 청소 일을 하는 김옥자(가명)씨. 그는 쓰레기를 '원수'라고 표현했다. 하루 종일 상가 앞을 쓸어도 사람들은 그가 치우는 양의 곱절을 버리고 간다.

아침이면 상가 앞에 지린내가 진동하고 토사물이 그득하다.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는 학생들에게는 "여기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어르고 달래도 봤다. 손자뻘 학생들에게서 돌아오는 건 '니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냐'는 식의 적반하장이다.

그는 그럴 때마다 눈이 뒤집힐 거 같지만 어금니를 꽈악 깨물고 참는다고 했다. 어찌나 어금니를 갈았던지 아래턱이 내려앉는 턱관절 이상까지 생겼다. 그는 "쓰레기 때문에 내가 죽을 판"이라고 한숨을 쉬고 비질을 계속해나갔다.

이 문제는 비단 김씨의 문제만이 아니다. 전국 여느 대도시의 번화가처럼 부산 서면의 쓰레기 문제는 심각하다 못해 절망적이다. 결국 참다 못한 구청이 칼을 빼들었다. 서면을 관리하는 부산진구청이 지난 주말 동안 시민들의 자성을 바라는 마음에서 청소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관련기사 : <부산 서면 쓰레기에 뿔난 구청 "안 치우겠다">)

전단지가 바닥에 장판처럼... "우린 시민의식, 이것밖에 안 되나"

10일 아침 부산 서면 특화거리의 모습. 구청이 주말동안 가로 청소를 하지 않자 거리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있다.
 10일 아침 부산 서면 특화거리의 모습. 구청이 주말동안 가로 청소를 하지 않자 거리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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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아침 나가본 서면은 마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전날 밤 비가 온 탓에 바닥에 들러붙은 전단지와 아무렇게나 던져진 음료수컵, 양주, 맥주, 소주 등 주종을 가리지 않는 술병, 주인 잃은 슬리퍼까지. 그럼에도 주민들은 전날 비가 온 탓에 쓰레기가 없는 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면 특화거리 공사를 하고 있다는 인부 노태용(58)씨는 "오늘은 평소에 비하면 적은 편"이라며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전단지가 바닥에 장판처럼 깔린다"고 말했다. 조국환(62)씨는 "밤에 한번 나와보라, 말도 못한다"며 혀를 찼다.

노씨는 "세금 수십억 들여 특화거리 공사를 하면 뭐하나? 이렇게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데"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들은 자신들이 땀 흘려 만들어놓은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 "속이 뒤집힌다"고 입을 모았다.

출근길 쓰레기 더미를 본 시민들은 착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서면에서 업소를 운영하는 이경호(60)씨는 "쓰레기 더미를 보니 마음이 불편하다"며 "우리의 시민의식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 사실이 너무나 아쉽다"고 말했다. 이씨 이외에도 출근길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쓰레기 더미를 피해 지나갔다.

출근 인파가 잦아든 오전 10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대대적 청소에는 구청 직원과 자원봉사자 등 200여 명이 동원됐다. 1시간 동안 군사작전을 벌이듯 비질을 하고 포대자루로 쓰레기를 나르자 거리는 깨끗함을 되찾았다. 4.5톤의 쓰레기가 치워진 거리에는 쓰레기 냄새 대신 사람들의 땀 냄새가 퍼졌다.

청소를 마친 한기승(63) 바르게살기운동 부산진구 회장은 "경제규모가 10위권이라고 하는데 우리들의 시민의식은 30위도 안 될 것 같다"며 "품격 높은 도시를 위해서는 시민들의 동참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10일 오전 10시부터 200여명이 동원된 부산 서면 특화거리 청소에 참가한 자원봉사자들이 쓰레기를 치우고있다.
 10일 오전 10시부터 200여명이 동원된 부산 서면 특화거리 청소에 참가한 자원봉사자들이 쓰레기를 치우고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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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빼든 부산진구청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부산진구청을 이번 대청소를 시작으로 오는 20일까지 야간 기초질서 위반행위 집중단속에 나설 예정이다. 불법주정차와 불법 전단지 배포 및 부착, 쓰레기 투기, 과다 소음 발생업소 등이 주요 단속 대상이다.

하지만 여러 주민들은 열흘간의 단속으로 실효성 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에 의문을 품었다. 현장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하계열 부산진구청장에게 이런 우려를 전하자 그는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하 구청장은 "도시 미관을 생각해 구청이 쓰레기를 치워주다보니 버리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생겼는데 이번에 그런 인식을 바꾸어 놓겠다"고 말했다.

"이번을 시작으로 점차 청소하지 않는 날을 늘려가는 동시에 강력한 단속을 시행하겠다"고 말한 하 구청장은 "올림픽 5위보다 세계에서 5번째로 깨끗한 나라가 되는 데 시민들이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고질적이라며 모두가 고개를 흔들고 있는 도심 쓰레기와 전쟁에 막이 올랐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번 전쟁의 승리가 누구에게 돌아갈지 관심의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태그:#서면,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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