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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앞 'V홀'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공지영의 <의자놀이> 북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탁현민 교수, 정혜신 박사, 한상균 쌍용차 전 지부장, 소설가 공지영씨, 김조광수 감독.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앞 'V홀'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공지영의 <의자놀이> 북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탁현민 교수, 정혜신 박사, 한상균 쌍용차 전 지부장, 소설가 공지영씨, 김조광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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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28일 오후 4시 51분]

그가 웃었다. 지난 3년 동안 한 달에 20일은 말없이 지내느라 말투가 어눌해졌고, 플라스틱 숟가락만 쓴 탓에 쇠숟가락이 무거웠다던, 한상균 전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이 활짝 웃었다. <의자놀이> 북 콘서트장에 모인 300여 명에게서 '공감'을, '함께'라는 희망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수많은 사람들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책 <의자놀이>의 북 콘서트가 지난 27일 오후 8시 서울 홍익대 브이(V)홀에서 열렸다. 2009년 쌍용차 노동자 가운데 맨 앞에 서 '함께 살자'고 외쳤던 한 전 지부장이 옥쇄파업 후 3년간의 감옥살이를 마친 지 꼭 20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는 "사실 교도소에는 콩밥이 없다"며 "사회에서 콩밥과 가족과 함께 그리움을 달랠 수 있게 된 지 20일 됐다"고 힘차게 인사했다.

옥쇄파업 후 3년간의 감옥살이를 마친지 20일이 된 한상균 쌍용차 전 지부장.
 옥쇄파업 후 3년간의 감옥살이를 마친지 20일이 된 한상균 쌍용차 전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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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일간의 옥쇄파업이 끝나고 3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 22명이 숨졌다. <의자놀이>는 죽음의 행렬을 멈추고 '함께 살자'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재능을 모아 소설가 공지영씨가 쌍용차의 기록들을 엮은 책이다. 공씨 자신도 인세 전액을 기부했을 뿐 아니라 출판사 휴머니스트도 10만 부까지 수입 모두를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인세와 판매수익금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 전해질 예정이다.

쌍용차 정리해고 후 22명 사망... 현실과 닮은 잔인한 게임 '의자놀이'

책 제목이기도 한 '의자놀이'는 사람 수보다 적은 의자를 가져다놓고 노래를 부르다가 심판이 호루라기를 부는 순간 의자에 앉는 사람은 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탈락하는 게임을 뜻한다. 공씨는 이날 콘서트에서 "(누군가는 떨어져버린다는 점 때문에) 항상 그 게임이 싫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가 이 제목을 택한 이유는 '의자에 앉지 못하는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죽음에 이르게 되는 현실'과 비슷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2009년 여름,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의자놀이'는 고통 그 자체였다. 많은 사람들이 옥쇄파업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쌍용차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심리치료를 하고 있는 정혜신 박사가 무대에 올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심리치료를 하고 있는 정혜신 박사가 무대에 올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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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심리치료 해 온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사람은 고통을 거스르고 싶은 본능이 있는데, 그걸 거스르는 용기를 낸 이들이 쌍용차 분들"이라며 "그들의 고통을 듣고 반응하는 과정에서 저 또한 더 밝아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은 유일하게 가해자가 있는 정신과 질환"이라며 "가해자들이 누구인지 분명히 규명되고, 그들이 책임져야 치유가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가해자가 있습니다."

공지영씨는 그 '가해자'를 찾고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찾기 위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 문재인·손학규·김두관·정세균 민주통합당 의원에게 책을 보냈다. 공씨는 "안철수 원장에게서 맨 처음 연락이 왔다"며 "'아직 대선후보로 확정되지 않아 (북콘서트 방문은)은 좀 이른 것 같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

문재인 의원 역시 비슷한 답변을 트위터 쪽지로 보냈고, 정세균 의원은 27일 콘서트장을 찾았다. 나머지 세 사람에게선 답이 없었다. 공씨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쌍용차문제를 꼭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받으려 했다"며 몇몇 후보들의 방문이 이뤄지지 않은 점을 아쉬워했다.

전남 장성군에서 올라온 여학생들이 편지글을 낭독하고 있다.
 전남 장성군에서 올라온 여학생들이 편지글을 낭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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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웃음이 쉴 새 없이 번갈아 터져 나오는 특이한(?) 콘서트였다. 한상균 전 지부장과 공지영씨가, 정혜신 박사가 돌아본 지난 날들이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면,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올라온 두 소녀는 청중들을 함박웃음 짓게 했다.

최수민(18·고2) 학생은 한 시사주간지에서 <의자놀이>에 관한 기사를 접한 뒤 자꾸 눈길이 갔다고 했다.

그는 다음날 책을 구입해 단숨에 읽은 뒤 짝꿍 김예훈 학생에게 건넸단다. 책을 읽은 두 사람은 학교의 허락을 받지 못한 채, 몰래 기차를 타고 이날 콘서트장을 찾았다.

최수민 학생은 준비해온 편지에서 "저희 같은 아이들이 있다는 걸 알려 조금이라도 (쌍용차 분들에게) 위안이 되고 싶었다"며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을 늘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자가 부족하면, 나란히 의자 붙이고 자리 좁혀 함께 앉자"

<의자놀이>를 읽고 후기를 올린 윤성희씨.
 <의자놀이>를 읽고 후기를 올린 윤성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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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엄마 윤성희씨가 <의자놀이>를 읽는 내내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역시 엄마였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 올라온 윤씨는 "(쌍용차 출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남겨진 두 아이들의 이야기에 감정이입이 됐다"며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재능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의자놀이>를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지영씨는 윤씨가 한 인터넷 서점에 올린 후기의 마지막 대목이 "정말 놀라웠다"며 객석에 소개했다.

"여기 10명의 사람이 있고, 7개의 의자가 있다. 그리고 이 10명의 사람이 손을 잡고 빙빙 돌고 있는데 누군가 호루라기를 분다. 사람들은 일제히 의자를 차지하려고 상대방을 밀쳐내고 있다. 누군가는 의자에 앉고 누군가는 밀쳐진다. 의자에는 '삶'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고, 내쳐진 사람 속에서 나의 아빠, 나의 남편, 나의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순간 <의자놀이>는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 되어버린다. 비참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상상을 한다. 여기 10명의 사람이 있고, 7개의 의자가 있다. 그리고 이 10명의 사람이 손을 잡고 빙빙 돌고 있는데 누군가 호루라기를 분다. 사람들은 일제히 7개의 의자를 나란히 붙이고, 자기의 자리를 좁히고 모두가 함께 앉고 있다. 의자에는 '함께'라는 이름표가 걸려 있다."

이날 콘서트 무대에 오른 인디밴드 '제8극장'은 비틀즈의 < All you need is love >(모두에게 사랑이 필요하다)를 개사해 "쌍차 need is love"라고 노래했다. '카피밴드'는 "내일은 해가 뜬다(<사노라면> 중에서)"고 했고, '일단은 준석이들'은 "웃자"고 외쳤다. 한상균 전 지부장과 쌍용차 노동자들, 그리고 시민들은 "쌍용차에게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해 뜰 날을 기다리며 웃자"고 약속했다.

북콘서트에 참석한 정세균 민주통합당 대선경선 후보가 무대에 올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북콘서트에 참석한 정세균 민주통합당 대선경선 후보가 무대에 올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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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앞 'V홀'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공지영의 <의자놀이> 북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앞 'V홀'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공지영의 <의자놀이> 북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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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쌍용차, #공지영, #의자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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