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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장애아'라고 하면 '불쌍하다' '안 됐다' 등의 말이 따라붙곤 합니다. 하지만 여기, '행복하다' '네 덕분에 산다'며 미소 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입니다. 사회의 편견을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사랑으로 사는 그들. <오마이뉴스>와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www.miral.org)이 이들을 만나러 갑니다. [편집자말]
더스틴 호프만의 명연기가 돋보이는 <레인맨>, 동물학자 템플그랜딘의 실화를 그린 <템플그랜딘>, <카드로 만든 집> <말아톤> 그리고 <맨발의 기봉이>까지... 모두 자폐성 장애인을 다룬 영화들이다.

영화에서 종종 자폐성 장애인들은 비범함을 드러내 보이기도 하고 일정 부분에 남다른 능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몸은 성인이지만 생각과 행동은 5세에 머물러 있는 덩치 큰 아기. 잘 가르치고 치료하면 인지와 소통도 가능할 것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자폐아들은 영화에서 그려지는 것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내가 만난 몇몇 자폐장애아의 엄마는 영화 <레인맨>이나 <말아톤>을 보고 감동하는 대신 상실감과 답답함만 느꼈다고 했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것과 같은 특별한 재능을 지니거나 수행할 수 있는 아이들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건만 모든 자폐장애아들이 그들과 비슷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되레 상처가 된다는 것이다. 

몸집은 성인이지만 정신은 서너 살인 아이

자폐성장애란...
자폐성장애는 36개월 이전에 발생하는 장애로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기술 발달의 어려움, 제한된 행동과 관심을 나타내는 발달장애이다.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자폐 성향의 특성이나 발달정도가 다양하기 때문에 자폐스펙트럼장애라고 부른다.

자폐성장애를 지닌 사람(자폐인)들은 사회적 상황을 인식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 결함을 보이는 특성이 있다. 또 말을 비롯해 몸짓, 표정을 이용한 의사소통을 잘 안 하는 경향이 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하상장애인복지관에서 만난 영규(이영규·21·자폐성장애1급) 역시 전형적인 자폐 장애를 보이는 친구다.

오후 5시가 되자 주간보호센터 프로그램을 마친 영규가 엄마(도경미씨·51)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엄마 손을 잡고 있지만 몹시 불안해 보이는 영규. 프로그램이 끝나면 선생님과 함께 센터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야 하는데 달라진 일정 때문에 영규의 불안이 커지고 있었다.

"영규야, 오늘은 엄마 차 타고 집에 가는 거야. 그런데 저기 공원 있지? 거기서 엄마랑 사진 찍고 가자. 선생님들이 우리 영규 사진 예쁘게 찍어주신대. 괜찮지?"
"..."

엄마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영규. 머뭇거리는 몸짓과 잠시도 멈추지 않는 시선이 극도의 불안을 말해주고 있다. 영규를 너무나 잘 이해하는 엄마는 영규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영규야 우리 저기 앞 공원에 한번 가보자. 지난번에 엄마랑 갔었잖아. 기억하지? 그때 영규 참 좋아했었는데... 어때 선생님들하고 한 번 더 가 볼까?"

갑자기 나타난 낯선 얼굴들에 더욱 불안을 느낀 영규는 시선을 피하며 굳은 얼굴로 엄마 손을 잡아당겨 차에 타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상황에 익숙한 듯 침착하고 안정된 목소리로 계속해서 영규를 설득했다. 영규가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다.  
 
"영규야, 맞아 오늘은 엄마 차 타고 집에 갈 거야. 그런데 가기 전에 저기 공원에 잠깐만 가 보는 거야. 저기 가서 엄마랑 사진 찍고 잠깐 놀다 가자."

여기서 영규가 엄마 말에도 아랑곳없이 집에 가자고 차에 매달렸다면 더 이상의 취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폐아의 특성상 스트레스가 어느 선에서 멈춰지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분노·자해·가해 등 문제 행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몸집은 스물한 살 청년이지만 정신은 자라지 않고 서너 살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 아이. 자기 안에 갇혀 그 무엇과도 소통하지 못하는 외로운 아이. 영규는 세 살 무렵 자폐성장애 1급 진단을 받은 중증 장폐장애인이다.  

"우리 영규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1초도 쉬지 않고 의미 없는 소리들을 내고,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고, 길을 갈 때도 앞으로만 가야지 절대 유턴을 해서도 안 되고, 일의 순서가 조금만 달라져도 폭발하듯 화를 내고,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불편하면 제 몸을 물어뜯고 피가 나도록 자해하고, 엄마를 물고 때리기도 하고... 영규도 제 손을 물어서 엉망이지만 한때는 저도 영규에게 물려 온몸이 멍투성이였어요." 

초등학교부터 장애인 특수학교인 밀알학교를 다니며 특수교육을 받았던 영규. 고등학교 과정까지 무사히 마치고 졸업을 한 지 2년이 다 돼 가지만 뒤돌아보면 어찌 지냈는지 모를 정도로 파란만장했던 날들이었다.

"학교가 집에서 가까웠지만 때로는 천리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화를 내며 땅에 구르다 학교까지 굴러간 일도 있었고, 한겨울에 영하 20도 추위에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학교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 거울 같이 얼어붙은 도로를 넘어지고, 미끄러지며 간 적도 있고... 영규와 하루하루 보내는 일들이 너무 힘들었기에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오늘 하루만 있다고, 그러니 최선을 다 하자. 스스로 최면을 걸며 살았습니다."

"아이가 소리를 냈어요... 정말 행복했습니다"

영규 어머니 도경미씨(51)
 영규 어머니 도경미씨(51)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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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있지만 너무나 멀리 있는 아이.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울지도 웃지도 말하지도 않는 아이.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그 어떤 방법으로도 아이와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은 엄마를 절망케 했다. 더욱 기운 빠지는 것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지만, 아이는 요지부동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었다. 다른 가족도, 집안 살림도 다 팽개치고 그저 하루에 목숨 거는 순간들. 그것이 지금까지 살아온 엄마의 삶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인 것 같아요. 영규를 태우고 올림픽대교를 건너고 있는데 뒤에서 난리가 난 거예요. 뭔가를 달라는 것 같은데 말을 못하니 답답하기만 했죠. 그런데 얼마나 절실했던지 차 바닥을 열심히 뒤지더니 뭔가를 눈앞에 바짝 들이대는 거에요. 그 많은 차들이 다니는데 눈을 가리니 얼마나 위험했겠어요. 나중에 보니 컵라면 뚜껑에 붙어 있는 포장지 반쪽이더라고요... 그 상황에 얼마나 화가 났던지 다리를 건너자마자 갓길에 차를 세우고 마구 때렸어요."

영규를 태우고 하루에도 네 번 이상 한강을 오고가야 했던 힘든 시기. '핸들을 조금만 꺾어도 영규와 함께 갈 수 있을 텐데'라는 유혹이 늘 마음 한가운데 있었지만 정작 위험을 경험하고 나니 죽음에 대한 부질없는 환상이 사라졌단다. 영규가 삶의 귀중함을 깨닫게 해준 것이다.

"영규를 데리고 여행을 하던 중이었어요. 뒷자리에서 영규가 '싯싯' 소리를 내는 거에요. 조금 열려있던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 소리를 흉내 내고 있었던 거지요. 얼마나 놀랍고 반가웠던지요. 그 자리에서 당장 시옷이 들어가는 문장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시옷이 들어 있는 노래는 다 불러줬어요. 시옷을 발음할 수 있으니 다른 발음도 낼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하다 보면 말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태어난 지 16년 만에 기적적으로 말문을 연 영규. 하지만 대부분의 자폐아들이 그렇듯 언어를 의사소통의 기구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꾸준한 반복 학습을 통해 자신의 요구(필요)를 전달하는 도구로서 몇 가지의 단어를 사용하는 정도일 뿐이다. 전혀 소리를 내지 않아 청각장애를 의심했던 아이. 그 아이 입에서 처음으로 '음성'이 나오던 순간을 엄마는 잊지 못한다.   

"그땐 정말 너무나 행복했어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어요. 제가 늘 그랬거든요. 영규가 말만 하면 모든 것을 다 해 줄 거라고요. 하늘의 별도 따 줄 거라고요."

삶의 초점이 오직 영규에게만 맞춰진 엄마에게 영규의 작은 변화와 반응은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힘이다. 하지만 엄마가 영규에게 자신의 온 삶을 쏟는 동안 또 다른 가족은 많은 것을 희생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느 날 문득 남편의 양복이 다 해져 있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아내에게 옷 챙겨 달라고 할 형편이 못되니 눈에 보이는 것 하나만 죽어라 입고 다녔던 모양이에요. 원래 (남편이) 아내 손을 많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는데 아들 때문에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았던 거죠. 순간 남편이 너무 불쌍한 거예요. 우리에게 울타리가 돼주고 힘이 돼주는 감사한 사람인데... 제가 아무것도 해준 게 없었어요."

어디 남편뿐이랴. 엄마는 네 살 터울의 영규 누나도 너무 안쓰럽고 미안하다. 한참 엄마 품에서 사랑받고 귀여움을 받을 나이에 동생에게 모든 사랑과 관심을 빼앗겨버린 딸. 어느새 딸은 성인이 돼 누구보다도 든든한 영규의 지원군이 됐지만 어린 마음에 남겨졌을 상처를 알기에 엄마는 딸에게도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영규 엄마 경미씨는 세상 모든 것에 미안한 엄마다. 영규의 장애가 엄마의 책임인 것처럼 느껴져 영규에게 미안하고, 영규를 돌보느라 관심을 가져주지 못한 영규 아빠에게도 미안하고 아픈 동생 때문에 어리광 한번 제대로 부려보지 못하고 자란 영규 누나에게도 미안하다. 또, 영규로 인해 불편과 불안을 느꼈을 이웃들에게 미안하고, 불편한 아이를 사랑으로 돌봐 주시는 선생님들께도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하지만 '정작 영규 엄마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 본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영규 때문에 겪는 가족과 이웃의 불편과 어려움을 이해하지만 엄마인 자신은 아픈 자식을 위해 너무나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기에 늘 씩씩하고 당당하게 감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라고 어찌 늘 씩씩하고 당당하기만 할까. 목까지 눈물이 차올라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지만 어금니를 깨물며 참아왔던 설움들이 왜 없었을까. 

세상 끝자락에서 마주한 은행잎

하상사회복지관 주간보호센터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영규군(21)
 하상사회복지관 주간보호센터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영규군(21)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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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4년 동안 공동 육아를 위해 포천을 오간 적이 있었어요. 영규 치료에만 온 신경을 쏟을 때였죠. 어느 날 광릉 숲을 지나오는데 노란 은행잎이 가슴에 팍하고 박히는 거예요. 순간 번개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이 있었죠. 아! 은행잎이 저런 노란색이었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 막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4년을 매일 다니던 길이었는데 해마다 가을이면 물들었을 은행잎을 처음으로 본 거예요. 그 동안 무엇을 하고 지냈나. 마음속에 바람이 지나가더라고요." 

다행히도 영규 엄마는 깊은 우울에 빠지기 직전 자신을 발견했다. 대부분 장애아들의 엄마는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지지 않는 아이, 아이로 인해 생기는 또 다른 가족과의 갈등, 아이를 바라보는 세상의 불편한 시선들, 아이의 평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끝없이 들어가는 치료비로 인한 경제적 압박과 아이로 인해 가중되는 육체적 피로와 고통, 자괴감, 실패감, 절망감... 문제는 이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 아이와 함께 세상을 버리는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저는 조금씩 제 시간을 가지려 노력했어요. 다른 가족도 있는데 다 죽을 수는 없잖아요. 자폐아를 키우는 다른 엄마들과 잠깐씩 만나 차를 마시며 속의 말을 털어놓기도 하구요. 모여서 같은 취미 생활을 하며 가능하면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어요. 요즘엔 아이를 기다리는 토막시간들을 이용해 헝겊 인형을 만드는 걸 취미로 삼고 있어요. 여럿이 모여 바느질을 하다 보면 잡념도 사라지고 때로는 만든 인형을 팔아 아이들을 위한 일에 사용하기도 하니 보람도 있지요."

장애아를 가진 엄마의 걱정이 언제 끝날까? 아마도 눈을 감는 순간이 그 걱정을 놓는 순간이 아닐까. 어리면 어린 대로 크면 큰 대로 아이에 대한 걱정은 끝이 없다. 영규 나이 스물하나. 힘들게 교육을 마치고 학교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왔지만 고난은 이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인 장애인을 위한 치료나 보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관들이 많지 않아 이런저런 곳을 기웃거리다 결국엔 집안에 방치되거나 홀로 남겨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마주 잡은 이 손, 놓지 않을 겁니다

영규와 엄마의 손, 평생 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영규와 엄마의 손, 평생 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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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 같은 아이는 그룹홈에서 받아주지도 않겠지만 적응하기도 어려울 거예요. 사회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같이 사는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에게 피해만 주겠지요. 그래서 영규와 같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몇몇이 돈을 모아 함께 살 수 있는 생활시설을 만들어보자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아무튼 지금이야 어떻게든 영규를 돌보겠지만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는 거예요."

영규 엄마는 딸에게까지 그 책임을 넘기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동생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아이인데, 그 아이에게 동생의 삶까지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규엄마는 오늘도 마음이 편치 않다. 오늘 하루만 있다고 생각하며 매일 죽을 듯 열심히 살지만 문득 몇 년 뒤, 몇십 년 뒤를 생각하면 너무나 암담해 숨이 막히고 가슴이 조여 오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영규와 함께할 수 있을까. 평생을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언제쯤 영규를 떼어 놓겠다는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한 가지는 약속했다. 영규의 엄마와 아빠 중 한 사람이 큰 병에 걸리게 되면 그때는 영규와 헤어지자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평생 영규를 위해 살았으니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병에 걸리면 그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기로 했어요. 그 사람을 위해 남은 평생을 바치기로요. 하지만 영규를 데리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그런 때가 오면 영규와 헤어지자고 했지요. 서로에게 그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규와 영규 어머니
 영규와 영규 어머니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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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영규를 떼어 놓겠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엄마와 아빠 중 어느 한 사람이 중병에 걸려 쓰러지지 않는 한 평생 영규를 돌보는 일을 멈추지 않을 거라는 다짐과도 다르지 않다.

사진 촬영을 하는 짧은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영규. 몇 장의 사진을 찍는 동안 불편함을 참아주는가 싶더니 아무 말 없이 엄마의 손을 잡아당긴다.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는 것이다.

엄마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버린 영규. 영규는 엄마 손을 잡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영규를 모든 위험과 모든 어려움으로부터 구해주는 작고 예쁜 엄마 손. 지금도 그렇지만 엄마는 더 작고, 더 약해지고, 더 늙고 보잘것없어지는 날까지도, 어쩌면 숨을 거두는 그날까지 영규가 잡은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영규는 영원한 엄마의 외사랑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장애인가족에게 격려와 사랑을 전달해 주세요. 이 기사를 읽고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후원하고 싶은 분들은 밀알복지재단 누리집(www.miral.org)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실 수 있습니다.



태그:#자폐성장애, #발달장애, #밀알복지재단, #이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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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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