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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좋다. 이유는 튀어 나온 배를 점퍼로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난 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좋다. 이유는 튀어 나온 배를 점퍼로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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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말이죠, 젊었든 늙었든 배가 나왔다는 건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면 될 것을 그것도 못한대서야 무엇을 하겠습니까!"

나를 빗대어 한 이야기가 아니란 건 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볼록 나온 배를 밀어 넣기 위해 배에 힘을 주었다. 얼마 전 어느 술자리에서의 '배 나온 남자' 이야기를 누가 꺼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친구 녀석이 같은 또래라고 데려온 이 사람의 말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걷자! 대책없이 나온 '이놈의 배'도 해결되리니...

부끄럼을 무릅쓰고 올린다. 어느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혼숙을 하고 난 후 드디어 내 배에도 '왕'자가 생겨난 것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이것이 정상적인 王자가 되는 날까지 운동을 계속 해야 한다.
 부끄럼을 무릅쓰고 올린다. 어느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혼숙을 하고 난 후 드디어 내 배에도 '왕'자가 생겨난 것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이것이 정상적인 王자가 되는 날까지 운동을 계속 해야 한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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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내일부터 오전 6시에 나 좀 깨워줄래.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얼씨구~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작심삼일도 못 갈 거라면 애시당초 그만두시지."

그랬구나! 몇 달 전에도 똑같은 소리를 했다가 6시에 일어나 겨우 운동장 한 바퀴 돌고 그 다음날 비 온다고 쉬고, 아침날씨가 너무 덥다고 쉬고, 컨디션이 안 좋다고 지금까지 쉬었던 기억이 난다. 이것뿐이 아니다. 영어공부 한다고 일찍 깨워 달래 놓고서는 깨운 사람에게 신경질을 냈던 적도 있었구나!

그런데 집사람은 다음날 정확히 6시에 나를 깨웠다. 순간 '괜한 부탁을 했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집사람에게 약점을 잡힐까봐, 또 어제 들었던 '배나온 것은 게으름이 원인'이란 말이 생각나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켰다.

난 늦잠이 좀 심한편이다. 8시나 되어야 대충 씻고 출근을 한다. 어떨 땐 5분만 더 하다가 씻지도 못하고 출근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니 아침밥은 거른 지 오래다. 밥보다 잠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아침밥을 먹지 않는데도 배가 나온다.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비몽사몽간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매일 운동장을 열 바퀴만 걷자. 그러면 한 바퀴가 400m니까 4km를 걷는 셈이다. 그렇게 몇 달만하면 '왕'자는 생기지 않더라도 이 대책없이 나온 배가 좀 들어가겠지.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열 바퀴 돌고나니 뭔가 뿌듯함이 밀려온다. 상쾌한 기분도 든다. 이 작은 행복을 왜 잠으로 소비했을까!

다음날은 걷는 폼을 교정하기로 했다. 난 의식하지 못하겠는데 주위에서 '넌 걷는 자세가 좀 특이하다' 또는 '채신머리없는 폼으로 걷는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던 기억이 난다. '왜 그 사람들이 그런 말을 했을까'라는 생각에 스스로 걷는 폼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앞꿈치부터 지면에 닿는 것. 이것이 원인인 듯하다. 그래서 걷는 폼이 으쓱거리는 것처럼 보였는지 모를 일이다. 의식적으로 운동화 뒤꿈치가 땅에 먼저 닿도록 걸었다. 역시 내겐 익숙하지 않은 걸음걸이다. 그런데도 고집스레 그렇게 걷다보니 자세가 똑바른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런 식으로 어떤 목표를 갖다보니 집사람이 염려했던 작심삼일은 이미 지난 지 오래고 벌써 한 달째 오전 6시에 일어나 규칙적으로 운동장을 열 바퀴 돌고 있다.

"와~ 아빠 배 많이 들어갔네"... '작은삼촌'은 되지 말자

운동장 돌기. 집 앞 화천 공설운동장에서 매일 아침 10바퀴 돌기를 한 달째 계속하고 있다.
 운동장 돌기. 집 앞 화천 공설운동장에서 매일 아침 10바퀴 돌기를 한 달째 계속하고 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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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년생인 딸아이가 방학과 동시에 시작한 서울에서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한 달 만에 집에 오는 날이다. 통닭을 시켜놓고 파티를 할 요량으로 일찍 귀가해 윗옷을 갈아입는 내게 딸아이가 한마디 한다.

"어! 아빠 배 많이 들어갔네, 무슨 운동하는 거 있어?"
"응, 아침에 일어나서 걷기를 하는데, 정말 그런 거 같니?"
"그럼, 와~ 우리 아빠 대단하다." 

그런데 나는 안다. 한 달 만에 표시가 날 정도로 들어갈 배는 아니다. 오늘 아침에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면서 거울을 통해 들여다봤는데 그대로였다.

아마 집사람이 딸아이에게 "이따 아빠 오면 그렇게 말해, 그래야 니네 아빠 신나서 매일 걷기 운동을 한단다'라고 이야기를 한 것임에 틀림없다.

어느 초등학교 시험문제에 이런 문제가 났었단다. "'단단히 먹은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결심이 굳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무엇이라고 할까요? 빈칸을 채우세요. 작□삼□."

답은 '작심삼일'인데 어떤 아이는 '작은삼촌'으로 썼단다. 얼마나 작은삼촌이 스스로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으면 어린 조카가 그렇게 썼을까! 내 조카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일이다. 그래서 내일 또 운동장을 또 열 바퀴 돌아야 한다.       


태그:#화천, #운동장 10바퀴 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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