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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엑스포 박람회장 지도
 여수엑스포 박람회장 지도
ⓒ 여수엑스포 조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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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 환상적인 '빅오(Big-O)쇼'에 잔뜩 취했나 보다. 놀란 듯 일어나 시계를 보니 오전 6시 30분, '1빠'로 입장하려 했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 아침식사도 거른 채 고양이 세수를 하고 한달음에 달려가 출입문에 다다랐다. 겨우 오전 7시를 갓 넘긴 시간이었는데도, 이미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오늘도 땡볕에 줄 서다 끝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그나마 아침 해를 가린 구름 가득한 하늘에 간간히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위로가 돼주었다. 그때 어디선가 드럼 비트에 트럼펫과 트럼본 소리가 실린 브라스밴드의 경쾌한 연주가 들려왔다. 지루함을 달래주는 파란 눈 예술가들의 배려였다.

곳곳에서 박수소리와 함께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바로 곁 엑스포역에서 수백 명의 인파가 둑이 터진 밀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멀게는 서울에서, 가까이는 순천 등지에서 밤새 기차를 타고 내려온 관람객들이다. 입장하기도 전 이곳 출입구에서 대기한 사람만 해도 2천, 3천 명은 족히 돼보였다.

오전 8시. 팡파르와 함께 2012 여수 엑스포 마지막 날(12일)을 맞았다. 여수에서 연속 사흘째다. 지난 5월 중에도 한 차례 다녀갔으니, 나름 제대로 만끽해보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기실 엑스포는 특정한 주제로 당대 최고의 기술력을 대내외적으로 뽐내는 국제적인 행사이니 만큼, 수박 겉핥기로 둘려보려 해도 하루 이틀 정도로는 어림없다.

입장과 동시에 곳곳은 관람객들로 뒤덮였다. 전시관마다 대기열이 뱀 꼬리마냥 구불구불 늘어섰고 급기야는 대기열마다 얽히고 설킨 나머지 어느 곳의 줄인지 물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볼 만하다고 입소문을 탄 아쿠아리움이나 일부 기업관 등 인기 전시관의 경우에는 기본 2시간은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할 지경이었다.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관광객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유모차를 탄 아이들은 그나마 낫지, 예닐곱 살배기 아이들은 덩치 큰 어른들 사이에서 줄을 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역이다. 칭얼대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한두 시간을 버텨야 하는 부모의 얼굴에서 엑스포 관람의 기대와 설렘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새치기가 우려된다며 아이고 어른이고 대기열에 서 있다가 화장실에 갈 때조차 도우미들의 확인 스탬프를 받으라며 안내방송만 매몰차게 해댔다. 개장 이후 스무 번도 더 왔다는 한 관람객은 "7월 중순 이후 인기 없는 몇 개 전시관을 제외하면, 한두 시간 이상 줄서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야말로 온통 인산인해였다.

두 시간 기다려 20분 관람... 땡볕 아래 '사서 고생'

아쿠아리움 수중터널
 아쿠아리움 수중터널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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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도 거른 채 달려왔건만 첫 번째 찾아간 전시관에 오전 10시가 돼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불과 관람시간은 20분, 내용은 충분히 감동적이었지만, 그 시간을 위해 무려 세 시간을 기다렸다고 생각하니 허탈했다. 다음 찾아보기로 마음먹은 전시관은 아예 관람을 포기해야 할 지경이었다.

"두 시간 반은 감안하셔야 합니다."

줄을 서기도 전에 이런 짤막한 안내방송을 들어야 했다. 설마 그럴까 싶어 대기열에 뛰어들었다. 또 다시 지루한 기다림이 시작됐다. 선선했던 아침과는 달리 구름이 걷혔고, 입추가 지났는데도 햇빛은 이글거렸다. 더군다나 얄궂게도 대기열에는 햇빛을 막아줄 건물과 차양은커녕 나무 한 그루 없었다. 한 시간 가량 지나자 땀이 비 오 듯했지만, 지금까지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오기가 발동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 두 번째 관람을 마치니 어느덧 오후 2시가 훌쩍 넘었다. 가까운 푸드코트에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국제관의 두어 개 나라 전시관을 대충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하루해가 짧았다. 새벽부터 서둘렀지만, 하루 종일 고작 기업관 두 곳과 마실 다니듯 국제관 몇 곳 들러보는 것으로 끝난 셈이다.

사흘간의 강행군으로 너무 지친 나머지 폐막식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또 몇 시간씩 줄서고 관람객들끼리 오가며 어깨 부딪힐 일을 생각하면 큰 아쉬움은 없다. 그런데, 엑스포를 뒤로 하고 출구를 나서려니 그 늦은 시간에도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하려는 관람객들이 적잖이 눈에 띈다. 오로지 폐막식을 보러온 외지 관람객들이다.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여수 시내 곳곳에 '엑스포 성공 개최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나부끼고 있다. 하긴 모든 신문과 방송이 앞 다퉈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는 뉴스를 내보내고 있는 걸 보면 그렇긴 그런 모양이다. 그러나 이상하리만큼 그동안 만났던 관람객들 누구도 언론에서 떠드는 만큼 성공한 축제였다고 말하는 이는 없었다.

대기열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동안, 자연스럽게 전국 각지에서 온 이들과 함께 '엑스포 토론장'이 마련됐다. 개인적으로 며칠간의 여수 생활과 관람 기간 동안 가장 즐거웠던 일이다. 정부와 언론의 천편일률적인 보도가 아닌, 관람객들끼리 허물없이 나눈 토론과 공감이 외려 엑스포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일지 모른다.

우선, 전시관 별 콘텐츠가 훌륭했다는 점은 모두가 공감했다. 아쿠아리움을 비롯해 최첨단 기술력을 자랑한 기업관과 해양 생물 보전을 위한 각국의 노력을 보여준 국제관 등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다고 입을 모았다. 되레 이번 엑스포의 상징이라는 '빅오쇼'로 인해 다른 볼거리가 묻혔다는 하소연이 나올 정도였다.

'800만 달성' 위한 무리수... "공짜표 때문에 엉망"

여수엑스포 스카이 타워
 여수엑스포 스카이 타워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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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운영 면에서는 하나 같이 독설에 가까운 얘기를 쏟아냈다. 누적 관람객 800만 명을 달성하기 위한 무리수를 두다 보니 제대로 된 운영을 기대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5월 개장 때부터 7월 초까지만 해도 흥행부진을 우려할 만큼 관람객 수가 적어 운영상 별 무리가 없었는데, 막상 7월 중순부터 공짜표와 '땡처리' 입장권이 남발되면서 모든 게 엉망진창이 돼버렸다.

당장 제값 주고 표를 구입한 사람만 바보가 돼버렸다. 더 많은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해 정기권이든 일일권이든 시나브로 가격이 내려가더니 급기야 1/10로 떨어졌고, 폐막을 앞둔 며칠 전부터는 아예 '초청권'이라는 이름으로 공짜표가 삐라 뿌려지듯 곳곳에 살포됐다. 여수시와 조직위원회 차원의 800만 명 달성을 위한 '올인'이었던 셈이다.

줄선 사람들 중 구입한 카드형 입장권을 손에 들고 있는 이들보다 '여수시민 감사의 날', '인근 지자체 감사의 날' 등의 도장이 찍힌 공짜표를 쥐고 있는 관람객이 더 많았다. 다른 사람에게 얻었다며 개중에는 외지인이면서 공짜표로 입장한 경우도 있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시는 것 아니냐"며 줄선 이들 중 자신을 '동원된' 관람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엑스포 기간 내내 여수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한 분은 7월 중순이 고비였다고 지적했다. 그 전만 해도 이렇게 혼란스럽지는 않았다고 했다. 곧,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것인데, 학생 관람객들이 한꺼번에 몰리고 뒤이어 매일 케이팝(K-pop)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지면서 난장판이 돼버렸다고 분석했다. 공짜 관람객이 쏟아져 들어온 건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라는 것이다.

하긴 광주광역시의 경우만 봐도, 7월 중반 이후 초중학교 모든 학생들을 의무적으로 엑스포를 관람하도록 했고, 유명 가수들 얼굴 본다고 방학 중에 가겠다는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으니 그의 얘기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선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 '동원'은 필수불가결한 성공의 조건이 됐다.

관람객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그에 대한 면밀한 대응은 찾아볼 수 없었다. 출입구별 관람 동선은커녕 당일 행사 안내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고, 사전 예약제도 실시와 폐지, 재실시를 오락가락하며 혼선을 부추겼다. 결국 어디든 '2시간 대기 20분 관람'이 정착됐다. 천안에서 밤차를 타고 왔다는 한 분은 종일 줄만 서다가 고작 기업관 두 곳 봤는데 다시 밤차로 올라가야 한다며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명작은 디테일'... 호들갑 떨기 전에 냉정한 평가부터 

여수엑스포 빅오쇼
 여수엑스포 빅오쇼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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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용 운행 허용 문제도 널을 뛰었다. 개장 초기에는 버스 등 대중교통만 이용하도록 계도했고, 여수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교통체증과 주차문제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등 모범적인 사례로 추어올려졌는데, 이내 전면 허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엑스포 기간 동안 시내 상권이 극심한 피해를 입는다는 이유에서다.

자가용이 다시 허용되니 엑스포장과 가까운 이면도로 곳곳이 주차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덩달아 시 외곽에 만들어 둔 환승주차장도 제 구실을 못하게 되는 등 적잖은 문제가 노출되었다. 숙박시설 및 음식점 등의 바가지 문제가 차라리 지엽적인 것으로 치부될 정도였다. 시와 조직위는 개장 전 충분한 공청회와 시뮬레이션을 거쳤을 텐데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예측하고 대비한 게 없었다는 거다.

이러한 혼선은 고스란히 관람객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땡볕 아래 줄서다 지친 한 관람객은 이렇게 말했다.

"200만 명에 걸맞은 운영 매뉴얼에 800만 명을 맞추려다보니 생긴 혼선이에요. 굳이 평점을 매긴다면, 기술력은 1류, 전시 공연 기획은 2류, 홍보 및 운영 능력은 3류. 이게 정답입니다."

아울러, 나름의 대안 제시가 이어졌다.

"출입구별 관람 동선을 주제별로 세분화해 홍보하고, 출입구별 입장권을 따로 마련했다면 관람객들이 우왕좌왕하며 어깨를 부딪치는 일이 적었을 거예요."
"어차피 장맛비나 땡볕을 예상했을 텐데, 줄서서 기다리는 대기열을 감안해 지을 때부터 회랑을 갖추거나 적어도 차양을 충분히 준비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어요."
"도우미 숫자만 많았지, 전문성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물어도 제대로 답해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조리 돌리듯 저기에 가서 물어보라는 식으로 서로 떠넘기기 일쑤였어요. 특히 노인 관람객들은 제대로 안내를 받지 못해 매우 힘들었을 겁니다."

'명작은 디테일'이라는 말이 있다. 적어도 이번 엑스포가 대단한 성취라고, 나아가 몇몇 언론의 호들갑처럼 '기적'이라고 부르려면, 운영이 어떠했는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말하자면, 관람객들을 무작정 오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편안하고 즐거운 관람을 위한 섬세한 배려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그들은 목표 달성을 위한 숫자를 채워주는 '봉'이 아니다.

국제관 한쪽 귀퉁이 일본관에 갔더니, 별도로 입장 시간표를 배부했다. 여기서 줄서서 기다리느니 다른 곳을 두루 관람하고 시간에 맞춰 오라는 것이다. 물론 전시관 내 콘텐츠의 질이 우선이겠지만, 이런 소소한 배려가 관람객들을 웃음 짓게 만든다. 일자별 입장객 수는 실시간으로 파악하면서 그로 인해 나타날 문제에 대해서는 손 놓고 있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함께 얘기를 나눈 한 분은 "여수시민으로서 엑스포는 유치 자체로 성공"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국민이 낸 십시일반 세금과 멀리서 온 관람객들의 쌈짓돈이 모여 남쪽 끝 이 작은 도시에 KTX도 들어오고, 자동차 전용도로도 깔리고, 웅장한 다리도 놓였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죠. 엑스포가 아니었다면 국민들이 여수에 눈길이나 줬겠어요?"


태그:#2012 여수 엑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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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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