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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현장 풍경
 건설 현장 풍경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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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여름은 너무 뜨겁다.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35도씨가 넘는 날씨에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도 힘겨워하고 있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든 일이기 때문에 해변이나 계곡, 워터파크 등 시원한 곳에서 여름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으로 사무실과 집 한구석에서 수박을 먹으며 버티기도 한다.

하지만 무더운 날 속에서도 하루의 밥벌이를 하기 위해 땡볕에 건설 현장에서 노동을 하는 노동자도 있다. 무더운 여름, 건설 현장에서 여름을 보내는 노동자들의 삶을 나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긴 옷 입고, 안전화 신고 삽질... 순식간에 '멘붕' 상태

벽돌과 시멘트 등을 담는 손수레
 벽돌과 시멘트 등을 담는 손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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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부터 아는 분의 소개로 건설 현장 일을 용돈벌이 겸 돕기로 했다. 처음에는 하루 일당이 높아 시작한 일이었지만 건설 현장의 일이라는 게 쉽지 않았다. 봄에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7월이 넘고 유례없는 폭염이 이어지는 날씨가 계속되자 당장이라도 도망가버리고 싶은 마음이 십 분마다 한 번씩 들 정도로 힘들었다.
보통 일이 오전 7시에 시작하는데 현장까지 출근하기 위해서는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야 한다. 6월까지만 해도 새벽 날씨가 쌀쌀했기 때문에 긴 바지에 반팔 티셔츠 차림에 가벼운 바람막이를 걸치고 출근을 했다. 하지만 7월 유례없는 폭염이 닥치자 새벽부터 28도를 훌쩍 넘는 날씨가 이어져 긴 옷을 벗어버리고 반팔, 반바지, 샌들 차림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을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30~35도에 이르는 날씨에 긴 옷을 입고 두툼한 안전화를 신고 있으면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주룩주룩 흐른다. 내가 하는 일은 조적으로 벽돌, 시멘트, 모래 등을 손수레에 담는 일이다. 시멘트 한 포대는 쌀 20kg의 두 배인 40kg이다. 40kg나 되는 포대를 들고 손수레에 담는 일을 30분하다 보면 사경을 헤매며 "내가 걷는 게 걷는 게 아니야" 라는 노래 가사가 현실로 벌어진다. 

시멘트를 손수레에 담는 일보다 더욱 끔찍한 것은 30도를 넘는 땡볕에 모래를 담기 위해 삽질을 하는 것이다. 봄에는 날씨가 선선했기 때문에 서투른 삽질로 힘이 들었어도 익숙해지니 괜찮았다. 하지만 폭염의 날씨 속에 삽질은 사람을 초주검으로 만든다. 삽질을 한 번 할 때마다 이렇게 해서라도 용돈벌이를 해야 하는가 라는 고민에 빠졌다. 일을 당장 그만두고 실내에서 하는 일로 바꾸면 일당은 적더라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건강하게 보낼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도 들었다. 한 마디로 땡볕에 삽질을 계속하니 절로 '멘붕(멘탈 붕괴)' 상태가 됐다.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함께 일하던 50대 아저씨는 나에게 "덥지? 너야 대학도 다녔고 이거 그만두고 어디 갈 때도 많고 오래할 일도 아니잖아, 근데 난 애들과 집 사람 생각하면 삽 던지고 그만둘 수 없어"라고 말하셨다. 일상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더운 날씨 속에서도 노동을 포기할 수 없는 건설 노동자의 묵묵함에 가슴이 아팠다.

폭염 속 건설 현장에 필요한 3가지는?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도 일상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폭염 앞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한 건설 현장 노동자들의 노하우가 있었다. 실내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야 더위를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차가운 음료, 아이스크림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건설 현장에서는 에어컨은커녕 작은 선풍기를 튼다고 더위를 물리칠 수 없다.

건설 현장에서 더위를 물리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얼음이다. 현장 식당에 여름이 되자 얼음이 가득 담겨 있는 대형 아이스박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얼음은 물통에 가득 담으면 시원한 물이 되고 이것은 뜨거운 땡볕에 살아남기 위한 생명수이다. 얼음물이 다 떨어지면 정말 사막에서 홀로 오아시스를 찾아 걷는 행인과 같은 기분이 든다. 다시 얼음을 채우면 되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치열한 얼음 쟁탈전이 오전에 벌어지기 때문에 오전 9시 식사 시간 전에 모든 얼음이 동이 나게 된다.

식염 포도당
 식염 포도당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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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아이템은 소금이다. 오래 전 학교 체육시간 때 땀을 많이 흘려 체력이 고갈되었을 때 소금을 먹으면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소금을 일상에서 먹을 일은 음식물을 통한 섭취 말고는 없다. 현장에서는 소금이 특별히 제작되어 나온다. 그냥 소금 한 포대를 놔두고 먹는 것이 아니다. 식염포도당이라고 불리며 작은 알약처럼 생겨 쉽게 섭취할 수 있게 제작되어 있다. 알약을 한 알 먹으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체력이 회복되어 1~2시간 바짝 더위를 잊고 일을 할 수 있다. 이것 또한 식당에 배치가 되어 있는데 점심이 지나면 동이 나기 때문에 오전 9시에 3~4알을 챙겨둬야 한다. 

마지막으로 신기한 풍경은 대형 선풍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꼭 건설 현장뿐만 아니라 사람 많은 공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건설 현장에는 대형 선풍기와 마루를 배치해 휴게실로 만들어 노동자들이 햇볕을 피해 잠시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마치 농촌에서 농사를 짓다가 정자에 누운 기분과 같이 시원한 공간이다.

뜨거운 여름에도 건설 현장 노동자들은 얼음, 소금, 대형선풍기 등에 의지해 더위를 이겨나가고 있다. 이들은 휴가도 제대로 없고 더운 여름 하루도 쉬지 않고 묵묵히 일을 해야 한다. 옆에 있는 노동자 분에게 휴가는 언제 가시냐고 물었다.

"휴가는커녕 하루라도 더 벌어 살림에 보태야해. 휴가 낸다는 개념이 우리 같은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있겠어. 남들 놀 때 일해야 남들 사는 만큼 따라 가지." 

건설 현장에서 뜨거운 여름을 보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든 50~60대 노동자, 이주 노동자, 20대 청년들이었다. 다른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어 일용직 노동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불안정노동이었다. 하루하루 밥을 벌어먹고 사는 이들에게는 휴가는커녕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휴식조차 주어지기 힘든 현실이었다. 이들도 휴식을 하고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삶, 우리 모두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건설 현장, #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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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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