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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기다리셨는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거 아니냐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자신도 '먹을 것 없는 잔치'라고 느꼈던 걸까. 세법 개정안 작업을 총괄 지휘했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멋쩍었는지 브리핑을 마치며 이렇게 덧붙였다.

정부는 8일 일자리 늘리기와 내수 활성화, 서민 생활 안정과 재정건전성 확보 등을 기본 방향으로 하는 2012년도 세법 개정안을 내놨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나온 세법 개정안으로 2013년에 1900억 원, 앞으로 5년 동안 1조6600억 원의 세수 증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발표된 정부 세법개정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발표된 정부 세법개정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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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활성화와 재정 건전성, 두 마리 토끼 잡기

기재부는 세법 개정안 배경으로 유럽발 재정위기를 꼽았다. 유럽에서 비롯된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수출길이 막히고 실업율이 느는 등 전반적인 경기 상황이 좋지 않으니 우선 국가 '곳간'을 채우고 재정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수출 부진을 내수시장 활성화와 서민 생활 안정으로 극복하고 동시에 국가 성장 동력은 유지한다는 것도 개정안의 주요 목표로 지목했다.

세수를 확대하는 방안으로는 우선 대기업 최저한세율을 14%에서 15%로 인상하는 안을 제시했다. 최저한세란 어떤 면세나 감세 혜택을 받든 최소한 내야 하는 세율을 말한다. 기재부는 과세표준이 1000억 원을 초과하는 기업의 최저한세를 1%포인트 올리는 것으로 약 1000억 원의 세수 증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을 현행 4000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낮추는 안도 제시했다. 이자나 배당 등의 방법으로 버는 돈이 연간 3000만 원이 넘으면 금융소득을 다른 소득과 합산해서 6~38%의 종합소득세율에 따라 누진적으로 세금을 매기겠다는 의미다. 이 안이 실현되면 3만여 명이 추가로 소득세를 부담하게 돼 1200억 원 정도 세수가 늘어나게 된다.

개정안에는 3년 유예기간을 두고 파생상품 거래세를 도입하는 안도 포함됐다. 과세대상은 '코스피 200 선물·옵션' 등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장내파생상품이다. 이 안이 통과되면 2016년부터 선물 거래를 하는 사람은 약정금액의 0.001%를, 옵션 거래시에는 거래금액의 0.01%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저소득층 가구가 일해서 버는 소득만큼 정부가 지원해주는 근로장려세제는 홀몸 노인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내용을 수정키로 했다. 현재 근로장려세제는 배우자 또는 18세 미만의 부양자녀가 없으면 근로장려금 신청이 불가능하다. 변경되는 안에 따르면 부양자녀가 3인 이상이고 가구 소득이 2500만 원 미만이면 최대 연 200만 원까지 근로장려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세금 감면 혜택 대부분 연장... 말로만 '재정건전성 확보'

이날 '깜짝' 소식은 개정안의 세부 내용이 아니었다. 굵직한 내용들은 대부분 지난 1일 여당인 새누리당과 한 당정 협의에서 미리 논의를 거친 후 공개됐기 때문이다.

당정 협의 후 알려졌던 개정안의 세수 증대 효과는 연 1조 8000억 원. 그러나 박 장관은 모두 발언을 마치고 이 부분을 바로잡았다. 이번 개정안의 세수 증대 효과가 5년간 1조 6600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는 게 박 장관의 설명이었다.

항목별로는 ▲ 고용 창출 투자세액공제 개선(2800억 원) ▲ 금융소득종합과세기준금액 인하(1200억 원) ▲ 파생상품 거래세 과세(1000억 원) 등에서 모두 합쳐 2조 5700억 원 세수가 증가한다. 반면 ▲ 재형저축·장기펀드 세제 지원(-2000억원) ▲ 대중교통비 소득공제 확대(-900억 원) ▲ 근로장려세제 적용 확대(-900억 원) 등의 항목에서는 9100억 원의 세수가 감소된다는 계산이다.

5년간 90조 원의 세금을 줄였던 '화끈한' 정부가 재정건전성 확보를 전면에 내걸고 작업한 개정안치고는 약소한 모양새다. 이는 정부가 그동안 공언해온 것과는 달리 올해 말로 일몰시한이 끝나는 비과세·감면 제도 중 80% 가량을 연장시켰기 때문이다.

비과세·감면 제도란 정부가 특정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개인이나 기업이 부담해야 할 세금을 감소시켜 주는 제도를 말한다. 현재 유지되는 비과세·감면 제도는 총 201개. 연 32조 원 규모다. 이 중 103개의 일몰시한이 올해 말 끝날 예정이었다.

이들 항목이 모두 일몰될 경우 연간 약 8조 원 가량의 세수가 확보된다. 기업에 지원하는 연구 및 인력개발비에 대한 세액 공제만도 2조 5994억 원에 이른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을 통해 연구 및 인력개발비를 포함한 79개 비과세·감면 제도의 일몰시한이 연장되며 5개 제도는 추가로 신설될 계획이다.

기획재정부가 8일 발표한 세법개정안의 기본방향과 추진전략. 기획재정부는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비과세·감면을 축소하겠다고 밝혔지만 개정안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가 8일 발표한 세법개정안의 기본방향과 추진전략. 기획재정부는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비과세·감면을 축소하겠다고 밝혔지만 개정안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 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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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과세·감면 제도가 대부분 살아남으면 당장 내년도 정부 목표였던 균형재정 실현에도 먹구름이 낀다.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세금 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마당에 마땅히 세원이 나올 곳은 없기 때문이다. 

통상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 국가의 세금 수입도 줄어들게 된다. 전체 세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이 경기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산정책처에서는 지난해 '2012 예산안 쟁점분석' 보고서에서 내년도 국세탄성치를 1.04 수준으로 전망했다. 경제성장률이 1% 떨어질 때마다 국세 수입은 1.04% 떨어진다는 의미다.

정부가 균형재정을 천명하며 예상했던 올해 경제성장률은 연 4.5%. 그러나 한국은행이 지난 7월 밝힌 올해 상반기 경제성장률은 2.6%다. 하반기 경기가 나아져 올해 경제성장률이 3%를 기록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거칠게 계산하면 올해 줄어들 것으로 추정되는 국세 수입은 약 3조 원 정도다.

그러나 개정안에 따르면 2013년에 기대할 수 있는 세수 증대 효과는 고작 1900억 원. 이정도 수준의 개정안으로는 '재정건전성 제고'는커녕 균형 재정에 의미있는 기여를 하기도 어렵다.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부동산 시장 살아날까?

한편 기재부는 이날 개정안이 서민과 중산층, 중소기업에 2400억 원의 세금을 덜어주고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1조 6500억 원 추가 세금을 부과하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개정안에 담긴 86개의 항목을 요목조목 뜯어보면 여전히 '부자감세'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내용도 적지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회원제 골프장 개별소비세 감면이다. 기재부는 해외골프 수요의 국내 전환 등을 위해 회원제 골프장에 대한 개별 소비세 등을 2014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면제하는 방안을 내놨다. '부자감세' 논란을 빚으며 지난 2일 새누리당에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정책이지만 기재부가 밀어붙였다.

논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상식적으로 1만2000원에 불과한 개별소비세를 감면해줬을 때 해외로 골프치러 가는 사람들이 국내로 발길을 돌릴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집을 여러 채 가진 이가 주택을 팔 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던 양도소득세 중과 제도의 폐지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2010년 기준으로 이 제도의 혜택을 볼 수 있는 다주택가구는 전체 가구수 중 8.3%에 불과하다. '부자감세'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기재부는 주택시장 거래를 활성화시킨다는 명목으로 2014년까지 취득한 주택에 대해서는 1년 내에 되팔아도 기본세율(6~38%)로 과세한다는 방안을 내놨다. 비사업용 토지는 60%의 세금을 물리던 중과 제도를 폐지하고 기본세율을 적용키로 했다.

이날 공개된 세법개정안은 8~9월 중 입법예고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칠 예정이다. 기재부는 9월 말경 정기국회에 세법개정안을 제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태그:#세법개정안, #박재완, #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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