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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온 한문 공부를 하는 사람. 올레길 여행 갔다가 머무른 제주 강정마을에서 삶이 변하게 되었고, 그 후 쌍용자동차 분향소에서 들은 이야기로 공장노동자에 대한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생산직 여성 노동자의 삶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직접 공장에 취업했습니다. <기자 말>

3주차가 되자 일이 손에 익었다. 어떻게 생산라인이 돌아가는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계돌아가는 소리에 사람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었다. 잘해주셨지만 마음은 주지 않으셨던 이모들도 3주차가 되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는 영순이모(가명)는 중환자실 면회시간이 하루에 두 번 뿐이기도 하고 남편의 병원비가 많이 들어가서 일을 안 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아들과 딸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기숙사에서 살면서 일하고 있다는 조장이모, 아들의 병역문제로 마음고생이 심한 순자이모(가명)등 이모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마음이 아팠다.

"조금만 일찍 끝났으면 좋겠어. 들어가면 애들은 자고 있고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애도 엄마가 너무 곤하게 자니까 날 깨우질 못하고 나도 들어가면 애들이 자고 있고. 이게 뭔지 모르겠어."

딸이 중학생이라는 미숙이모(가명)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맞벌이 부모가 있는 자녀들은 부모와 대화하기 어렵다. 특히 부모가 모두 생산라인에서 일을 할 경우 부모가 학교 행사에 참여하려면 하루 일을 쉬어야 한다. 하루 휴가는 바로 한 달 수입에서 감해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생업과 아이와의 생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손 다섯 바늘 꿰매고도 출근..."저럴 때 쉬어야 하는데"

'산재사망대책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이 지난 4월 26일 '2012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열었다(자료사진).
 '산재사망대책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이 지난 4월 26일 '2012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열었다(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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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만약 사고를 당할 경우 산재처리가 되지 않으면 병가를 내기도 어렵기 때문에 수입과 직결되는 문제가 생긴다. 물량이 줄어 특근, 잔업을 하지 못하면 가정수입에 타격을 준다.
생리휴가와 월차가 있지만 생리휴가를 쓰게 되면 만근수당은 그 주에 지급되지 않는다. 토요일 근무를 빠지면 특근 근무수당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당장 생활비가 줄어들게 된다. 또 내가 쉰 만큼 다른 공장사람들에게 노동강도를 지우게 된다. 악순환이다.

나는 저번 주 토요일과 이번 주 토요일에 출근하지 않았는데 월요일에 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가공조에서 일하는 남자직원이 일을 하다가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사이가 찢어졌다고 했다. 다섯 바늘을 꿰맸지만, 남자직원은 그 다음 날 출근했다. 일을 쉬면 수입이 줄어드니까 일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모들은 "저럴 때 쉬어야 되는데..."라며 마음 아파하셨다. 그리고 그날 잔업은 밤 10시에 끝났다. 남자 직원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일을 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빨리 일이 끝난 수요일 저녁 내가 소속되어 있던 아웃소싱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퇴근 후 사무실로 들러달라는 문자였다. 그래서 들어가봤더니 파견업체로 들어왔던 맛살 포장조의 도연이와 들어온 지 4일된 이모들이 앉아있었다. 업체 직원은 말했다.

"물량이 많이 줄어서 당분간 쉬시는 걸로 공장에서 연락이 왔어요."

처음에 근로계약서에 일하는 날짜를 공란으로 비워두란 얘기가 이건가 싶었다. 물량이 많아서 밤 10시가 지나서만이 퇴근했던 사람들에게 물량이 줄어서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다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6개월 이상 꾸준히 일해서 정직원이 되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소기업이 인력난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물량이 줄어들면 파견 노동자부터 해고하는 식이었다. 구조조정이구나 싶었다.

만약 이 일로 생계를 꾸리는 분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떨까 싶었다. 나중에 사무실에서 나와 우연히 만난 조장이모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모르는 이야기라며 바로 과장에게 연락을 했다. 조장이모는 물량이 적고, 인력이 많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라며 다시 사람이 필요하면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전했다.

3주의 짧은 공장체험기는 그렇게 끝났다

한 갓김치 공장 모습(자료사진).
 한 갓김치 공장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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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3주가 안 되는 기간에 짧은 공장체험기는 끝이났다. 기업이 인력난을 이야기 하지만 그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과연 하고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노동자에게 강도높은 노동으로 짐을 지우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청년실업해소를 이야기하면서 해결방안으로 나오는 복리후생 등의 문제는 사무직에만 국한되지 않나 생각했다.

국가와 기업에서 계속 청년층에게 눈을 낮추라고 하면서 중소기업을 권유하는데 과연 안정적인 실업해결에 도움이 되고 있는가에도 의문이 든다. 만약 눈을 낮춘 청년실업자가 취업을 했을 경우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사회에서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는다면 청년실업, 사회 경제불안, 나라 경제에 대한 불만은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또 왜 이곳의 근로자인 이모들과 삼촌들은 당신들의 노동환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시급제보다 안정적인 월급제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람이 더 많아져서 2교대로 근무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물었지만 그럼 그만큼의 개인할당될 물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돌아왔다.

짧은 공장체험동안 나는 알펫이라는 소독약을 손에 계속 뿌려야 했고 그 결과 손톱이 갈라졌다. 박스를 들고 뛰느라 부딪혔던 오른쪽 새끼발톱은 깨져서 뽑아버렸다. 손마디마다 멍든 곳은 아직도 욱신거린다. 팔을 들 때마다 근육통이 괴롭힌다.

"너무 힘들어. 좀 사람을 많이 뽑았으면 좋겠어."

회식할 때 조장이모가 했던 푸념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 전날 노사협의회가 있다는 공고가 있었다. 노사간의 대화가 있던 시간은 5시 30분. 그 날 이모들과 나는 야간근무를 하였고 그 다음 날 나는 해고됐다.


태그:#여성,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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