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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을 줄 세우는 나라, 어떤 분야든 순서를 매기는 나라다. 초등학교의 일제 고사, 경찰의 실적평가, 대학의 순위 매기기, 과외 광풍, 수능 과외, 대학입시, 토플시험을 본다. 스펙을 쌓는다. 취직한다. '경영이 합리화된 회사'에서 숨 쉴 틈 없이 '월급 값'을 해야 한다.

 

귀가하면 녹초가 된다. "가정은 없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섰고, '절대 빈곤'에서 벗어난 지 오래되었다고 하지만, 민초의 행복한 모습이 꼴사나웠는지 정치인이든, 행정 관료든, 언론에서든 우리 사회의 리더들은 전 국민을 들볶으면서 '상대적 빈곤감'을 심어주려고 애를 쓴다.

 

모든 것을 비교하게 만든다. 온 국민이 불행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제도를 개혁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낙오자라고 착각할 때까지, 힘없는 사람이 자포자기할 때까지…… , 대한민국이 '자살 강국'인 이유가 이에 있다. -본문 160쪽-

 

한 불교 학자가 직시하며 진단한 대한민국의 현실, 대한민국이 '자살 강국'인 이유입니다. 참 통렬합니다. 귀퉁이 근육이 욱신거리고, 머릿속이 멍해질 만큼 아프던 썩은 이빨을 후벼 파내는 것만큼이나 아프면서도 후련합니다.

 

<김성철 교수의 불교 하는 사람은……>의 저자,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부에 재직 중인 김성철 교수는 서울대학교 치의학과를 졸업해 치과의사였다는 이색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저자는 치과의사의 일이 본궤도에 올랐을 즈음 동국대 대학원 철학과에 입학하며 불교 학자의 삶을 시작합니다.

 

<김성철 교수의 불교 하는 사람은……>는 저자가 <불교신문>을 통해  2011년 한 해 동안 '실천불교'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매주 한 번씩 연재하였던 글과 각종 지면에 기고하였던 글들을 모은 내용입니다.

 

불교, '하는 것'

 

저자는 책머리에서 '분량에 제한이 있었기에 각각의 주제보다 글들이 압축적이고 호흡이 밭긴 하지만, 뻔한 내용을 담은 글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말로 글들의 내용과 흐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뻔한 불교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부정과 비리에 병든 정치와 경제적 부조리, '왕따''학교폭력''자살'... 등으로 무너지고 있는 사회와 가정을 신랄하게 투영하고 있습니다. 

 

유태교나 가톨릭, 이슬람교나 개신교와 같은 셈족의 종교(Semitic Religion)의 경우는 그 신자들에 대해서 '믿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믿음이 좋은 사람' 등과 같이. 그러나 불교에 대해서는 우리들은 좀 다른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불자들은 스스로에 대해서 '불교 하는 사람'이라고 부를 때가 많다. "불교 하는 사람이 그럴 수가 있나?""불교 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역시 달라" 등등. 무심코 던지는 말이지만, 불교에 대해서 "믿는다"는 표현과 함께 "한다"는 표현이 자주 사용이 이유는 많은 불자들이 불교가 단순히 믿음의 종교를 넘어선 '실천의 종교'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본문 12쪽-

 

책 제목의 배경이기도 하지만, 불교의 본성은 '하는 것', '실천'임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말로만 하는 불교, 실천이 전제되지 않는 불교는 진정한 불교가 아니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세 살 아이도 다 아는 것이지만 여든 살 어른도 어려운 게 실천입니다. 경전 속 부처님 말씀은 거룩하고, 스님들께서 법당에서 하는 법문은 오묘하리만큼 고귀합니다. 게다가 불자들 사이에서 회자하는 불교는 이상적이라 할 만큼 고상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이 한국불교의 현실입니다. 사회적 불의에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개인적 부정에 방관하거나 동조하기조차 하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시대적 현실에서 <김성철 교수의 불교 하는 사람은……> 침묵과 외면, 방관과 동조를 후려치는 장군죽비 같은 지적이자 내용입니다.

 

저자는 경전과 법당에만 머무는 불교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속에서 살아있는 불교, 실천하는 불교를 강조합니다. '힘의 우열에 따라서 서열이 매겨지는 짐승의 사회'를 경계하고,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불교 하는 사람'의 해야 할 역할을 제시합니다.

 

사회운동에 앞장서라는 것이 아니라 병든 사회를 외면하지 않는 불교를 하는 사람의 역할,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으로 구현해 나갈 세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롭게 한다는 말씀을 하십니까? 오직 어짊[仁]과 의로움[義]이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를 말씀하시면 이 사회의 리더[大夫]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을 이롭게 할까 말하며, 일반백성[士庶]들은 어떻게 하면 내 몸을 이롭게 할까 말할 것이니 위와 아래가 서로 이익을 취하려고 하면 나라는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본문 173쪽-

 

맹자의 말을 빌려서 하는 말이지만 '실용'을 주창한 MB 정권의 실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실용'을 주장하니 관료들은 '실적'을 주장하고, 사회는 스스로 매기고 있는 순위에 목이 졸려서 질식사에 직면한 현실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를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회학자보다 날카롭게 지적하고, 여느 비평가보다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어느 부분은 호소문 같고, 어느 부분은 웅변 같지만 저자는 지적하고 비난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불교도들이 나갈 바를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불교적 신념체계의 확립과 조직적 사회참여를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자들의 사회참여가 활발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해봤습니다. 그리고 신념체계의 부족에 기인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신념체계 자체가 구성돼 있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있었던 사회참여를 할 수 있도록 이론적 틀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교적 신념체계를 굳건히 세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247쪽-

 

모든 공덕을 회향하는 실천의 글

 

저자는 책머리에서 '법보시의 공덕이 있다면 그 모두를 불교시대사 전(前) 사장 고 고광영 거사님의 영전에 바칩니다'라는 글로 <김성철 교수의 불교 하는 사람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자신이 아닌 누군가, 더구나 명운을 달리한 고인에게로 회향한다는 것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 모두'를 회향한다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거룩하고 아름다운 실천입니다. 말과 글에만 머물지 않고 실천을 약속하는 글로 열어가는 불교 하는 사람이기에 저자의 주장과 글이 더없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덧붙이는 글 | <김성철 교수의 불교 하는 사람은……>┃지은이 김성철┃펴낸곳 불교시대사┃2012. 7. 10┃값 13,500원┃


김성철 교수의 불교 하는 사람은

김성철 지음, 불교시대사(2012)


태그:#김성철 교수의 불교 하는 사람은……, #불교시대사, #김성철, #회향, #공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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