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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가끔씩 외롭고 심심해, 어디 가서 동생 하나 데려오면 안 될까? 어느덧 훌쩍, 아빠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는 내 하나뿐인 딸에게 동생 대신 이 시집을 바친다."

김륭(金隆51·본명 김영건) 시인이 최근 펴낸 동시집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문학동네 간, 노인경 그림)에서 첫 장에 써놓은 글이다. 아빠가 딸한테 주는 시집인 만큼, 얼마나 정갈하게 썼을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다.

최근 동시집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를 펴낸 김륭 시인.
 최근 동시집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를 펴낸 김륭 시인.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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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난만하고, 엉뚱하거나 기발한 상상력이 무궁무진한 아이들의 세계가 그려져 있다.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숱한 '사물'과 '경험'이 그려져 있는데, "어떻게 이런 상상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파트 단지로 쳐들어온 트럭에서 군인들이 통통 뛰어내렸어요. 꾸벅꾸벅 졸고 있던 경비 아저씨 허겁지겁 뒤를 쫓지만 꼼짝마, 움직이면 쏜다!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용감한 군인들의 포로가 되었어요. 번쩍,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어요. 화단에 핀 해바라기와 나팔꽃도 파르르 겁에 질렸어요. 눈 깜빡할 새 아파트를 점령한 군인들이 807동 504호 우리 집까지 쳐들어왔어요. 투항하라, 투항하라, 너희들은 독 안에 든 쥐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던 엄마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어요. 피-웅 피-웅 하늘에서 불화살 쏘아 대던 태양마저 백기를 들었어요. 수박이 왔어요! 달고 시원한 수박이 왔어요! 아파트 단지 구석구석 생쥐처럼 숨어 있던 여름이 몽땅, 잡혀가요."(동시 "수박" 전문).

여름철 아파트에서 트럭에 수박을 싣고 와 확성기를 켜놓고 파는 모습이 그려진다. 수박의 세로 줄무늬를 군복 얼룩무늬로 연결한 것이다. 경비원이 수박장수를 내쫓으려 하고, 꽃들도 움츠러들 정도로 확성기 소리는 쩡쩡 울리는 것이다. 그러나 수박을 먹으면 무더운 여름이 달아나는 시원함도 그려진다. 수박과 군인의 연결이 자연스럽고, 시를 읽는 재미도 있다.

김륭 시인이 동시집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를 펴냈다.
 김륭 시인이 동시집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를 펴냈다.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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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동시집 속에는 가족의 단란함이 녹아 있다. 엄마·아빠의 사랑싸움이라든지, 부모가 아이들한테 하는 잔소리도 동시의 주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술 먹고 늦게 들어온/아빠는 모른다//속상한 엄마가 깬 접시 하나/맞은편 아파트 꼭대기에/걸려 있다는 걸"(동시 "조각달" 전문).

"어제 빌린 동화책 반납하러/도서관에 간다//공부는 안 하고 컴퓨터만 한다고/꿀꿀, 돼지처럼 먹고 놀기만 한다고/시냇물처럼 졸졸, 따라다니던/엄마 잔소리도 동화책처럼/옆구리에 끼고 간다//국어책보다 재미없는 엄마/반납하러 간다"(동시 "도서관 가는 꿀돼지" 전문).

여느 가정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감칠맛 나는 비유로 풀어놓았다. 밤늦게 집에 들어온 엄마의 속상함을 '조각달'에 비유해 놓았고, 엄마의 잔소리까지 도서관에 반납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진다.

엄마의 잔소리는 동시 "헬리콥터"에 잘 묘사되어 있다. 엄마의 잔소리는 아빠한테도 가해진다. 엄마의 잔소리는 헬리콥터 가는 '굉음'처럼 들릴 때도 있다.

"오늘도 헬리콥터가 날아올라요//부-다-다-다다-/언제 어디서나 헬리콥터는/빙빙//밥보다 치킨이 먹고 싶은 내 머리 위를 맴돌아요. 꾸벅꾸벅 졸다 책상과 박치기하는 이마 위로 부-다-다-다-다 내려앉아요//아무도 못 말리는 헬리콥터/아프지도 않아요. 천하무적 헬리콥터는/늙지도 않아요//게임방에 가고 싶어 잔머리 굴리는 내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 부-다-다-다-다 하늘 높이 날아올라 꽁꽁 폭탄을 투하하는 헬리콥터, 대형 트럭을 몰고 다니는 아빠마저 꼼짝 못하는 천하무적 헬리콥터가 떴어요. 부-다-다-다-다//엄마가 떴다!"(동시 "헬리콥터" 전문).

김륭 시인.
 김륭 시인.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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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동시를 읽으면서 이런 엄마의 잔소리는 자꾸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짜증이 섞인 잔소리가 아니라 삶에서 사랑과 행복이 듬뿍 실려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빠가 곰돌이 인형 하나 사 가지고 왔다/나는 엄마에게 인형 하나를 더 사달라고 했다/또 무슨 인형을 사 달라고 하니?/버럭, 화를 내는 엄마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내가 학교에 가고 나면 곰돌이는 얼마나 외로울까?/인형 가게 친구들이 보고 싶어 엉엉 울 것이다/곰곰 생각해 보면 아빠 때문이다/아니, 나 때문에 곰돌이는 혼자가 됐다/나는 곰돌이를 꼭 안아 준다/곰돌이가 내게 속삭인다/곰순아, 고마워"(동시 "곰돌이 인형" 전문).

아이들은 인형을 친구 대하듯 한다. 곰돌이 인형을 하나 더 갖고 싶어하는 아이의 마음이 잘 녹아 있다. 이 집에서나 저 집에서나 일어나는 일상을 그려놓았다.

생각이 기발하다. 여느 집의 밥상에 오르는 "김"을 '바다에서 온 엽서'라고 표현했다. 그 엽서에 바닷속 생물들의 '수다'가 묻어 있다고 본 것이다. 김이 까매진 것은 오징어 먹물이란다.

"바다가 엽서를 보냈어요/고래에서 멸치까지 제각기 품고 있던 이야기/깨알같이 받아 적은 그림엽서/깊고 푸른 바닷속 물고기들의 수다가/우리 반 아이들보다 심한 걸까/우르르 떼 지어 몰려다니는/고등어와 멸치들의 수다가 시끄럽다며/오징어가 찍― 먹물을 뿌렸는지/엽서가 까맣다"(동시 "김" 전문).

장옥관 계명대 교수(문예창작과)는 "구름 공장 공장장이 쓴 동시"라는 제목의 해설에서, "동시는 말이라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다. 밥맛이 쌀 안치는 솜씨에 의해 좌우되듯이 좋은 동시는 시인의 말 다루는 솜씨에 의해 빚어진다"며 "김륭은 목수 아저씨가 먹줄을 튕기듯 말을 아주 정확하게 제자리에 놓으면서 또한 흥겹게 갖고 논다"고 평했다.

이어 장 교수는 "좋은 동시의 잣대는 얼마나 독특한 상상을 자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김륭의 동시는 상상이 참 기발하다, 구름이 언제 부풀고 어디로 달려나가는지 알 수 없듯이 그의 상상력이 어떻게 번져 나갈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김륭의 동시는 사물과 사물에서 닮음을 찾아내 기발한 상상을 이끌어 낸다, 서로 전혀 다른 사물이 김륭의 상상으로 하나로 맺어지는 게 참 신기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김륭 시인은 2007년 강원일보(동시)·문화일보(시) 신춘문예에 당선했고, 그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을 받았으며, 김달진지역문학상과 박재삼사천문학상 등을 받았다. 그는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등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l 문학동네 동시집 23 |김륭 (지은이) | 노인경 (그림) | 문학동네어린이 | 2012-06-04



태그:#김륭 시인,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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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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