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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한민국. 21세기 세계 어느 문명국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코미디 같은 일이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다.

지난 4일 용산구 국방부 국방회관에서는 '종북세력의 실체와 대응책'이라는 세미나가 열렸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국방부 장관이 축하화환을 보내고, 행정안전부가 이 세미나의 후원을 맡았다고 한다. 이 세미나에서 정호용 전 내무부장관 등 참석자들은 '국회에서 종북 주사파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종북' '주사파' 운운하는 쿠데타 세력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정호용이 누구인가. 그는 12·12 군사 쿠데타의 주역으로 5·18 광주 민주화항쟁 당시 특전사사령관이었다. 그는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한 혐의가 있어 내란목적 살인죄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인물이다.

뿐만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일은 더 있다. 얼마 전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 등이 측근들을 데리고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을 사열하는 일이 보도된 바 있다. 또, 우리 근현대 정치사를 쥐락펴락했던 군대 사조직(하나회) 출신의 강창희(새누리당) 의원은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에 뽑혔다.

군사 쿠데타 주범들이 활개 치는 것도 모자라 우리 사회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세력들을 '종북' '빨갱이' '위헌 세력'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탄압하고 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정말로 그들이 말하는 종북세력이 있는 지도 의문이다. 나아가 북의 주장에 동조한다고, 혹은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주장한다고 형사 처벌을 받는 사회, '빨갱이 국회의원을 몰아내야 한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사회가 과연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미국에도 공산당이 있고, 청소년 공산주의 모임도 있다

우리 보수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의 모국이라 생각하는 미국에도 공산당이 있다. 미국 공산당은 역사가 100년이 넘었으며 지금도 버젓이 당원을 모집하고 있으며, 거리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주장하는 선전지를 나누어주고 있다. 미국이 공산주의 국가인가?
▲ 미국 공산당 누리집 우리 보수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의 모국이라 생각하는 미국에도 공산당이 있다. 미국 공산당은 역사가 100년이 넘었으며 지금도 버젓이 당원을 모집하고 있으며, 거리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주장하는 선전지를 나누어주고 있다. 미국이 공산주의 국가인가?
ⓒ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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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공산당이 중국, 쿠바, 베트남, 라오스, 북한, 러시아 등 소위 말하는 공산주의 국가들에만 있다고 잘못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진실은 이런 우리 국민들의 상식과는 달리 거의 모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공산당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 다음 중 공산당이 없는 나라는?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스웨덴, 핀란드, 브라질,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대만, 태국, 인도...

한 정답은 '없다'이다. 우습게도 미국을 비롯해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국가' '문명국가'로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나라들에 공산당이 있다. 소위 자유와 민주를 내세우는 거의 모든 나라, 흔히 문명국가로 일컫어지는 나라에는 크고 작고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공산당이 있다.

그 나라들에 공산당이 있는 것은 좌우 이념적 대립을 겪지 않아서가 아니다. 또, 공산주의에 찬성하기 때문 역시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은 사상과 이념의 자유다. 찬반을 떠나서 '공산주의'라는 사상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현재 '종북' '주사파' '빨갱이' 타령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 보수세력들은 미국을 자유민주주의의 종주국 또는 모국(母國)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미국에도 공산당이 있고, 심지어 청소년 공산주의자 조직까지 있다.

미국 공산당(Communist Party USA)은 1910년대에 생긴 이후 매카시즘 등으로 탄압을 받기는 했지만,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합법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산하에는 10대와 20대 청소년들로 이뤄진 청소년공산주의자동맹(The Young Communist League)이라는 조직도 있다. 이들이 거리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주장하는 유인물을 뿌려도 어느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는다. 경찰이 잡아가지도 않는다. 캐나다에도 공산당 등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여럿 있다.

유럽은 어떨까. 복지국가의 모델이라는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은 말할 것도 없으며,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부 유럽에까지 거의 모든 나라들에 공산당이 있다. 지금은 비록 소수 정당이지만 프랑스에서는 공산당이 전후 최대 정당인 시절도 있었고, 영국 공산당도 현재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화폐에 공산주의자가...

호주의 10달러 짜리 화폐의 모델인 (좌) 메리 길모어와 (우) 헨리 로슨. 이들은 모두 공산당 당원이었으며 특히 메리 길모어는 열렬한 공산주의자로 평생을 여전사로 살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만약, 우리나라 화폐에 공산당원을 모델로 쓰자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 호주의 10달러 짜리 지폐 호주의 10달러 짜리 화폐의 모델인 (좌) 메리 길모어와 (우) 헨리 로슨. 이들은 모두 공산당 당원이었으며 특히 메리 길모어는 열렬한 공산주의자로 평생을 여전사로 살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만약, 우리나라 화폐에 공산당원을 모델로 쓰자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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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치·경제적으로 후진국으로 치부하고 있는 아프리카는 어떨까.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와 나이지리아의 축구시합이 열렸던 더반의 경기장 이름은 '모저스 마비다' 구장이다. 이 구장의 이름은 모저스 마비다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것이다. 모저스 마비다, 그는 넬슨 만델라와 함께 흑백차별 철폐를 위해 싸웠던 무장투쟁 지도자였던 남아공 공산당 당수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다. 이렇듯 남아공을 비롯한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에도 공산당은 있었다.

2006년 당시 브라질 룰라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방문을 떠났을 때, 브라질 역사상 최초로 브라질 공산당(PC do B) 소속인 알도 레벨로(50)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공산당은 룰라 대통령이 소속된 노동자당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었는데, 공산당 출신인 그가 하원의장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레벨로 대통령 권한 대행은 당시 "브라질 역사상 처음으로 '골수 공산주의자'가 대통령직을 맡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농담을 했다고 한다. 브라질 뿐 아니라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 등 남미 여러 나라들에도 공산당이 있다.

바다 건너 오스트레일리아에도 공산당이 있다. 호주 10달러 지폐에 등장하는 헨리 로슨, 원주민들의 참정권과 여성 평등을 위해 평생을 싸웠던 평등주의 여전사인 메리 길모어는 모두 호주 공산당 당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산주의자가 화폐의 모델로 사용하는 것 자체를 상상하기 힘들다.

우리보다 더 열악한 대만에서도 공산당은 합법

그럼 아시아는 어떨까. 중국, 북한, 베트남, 라오스 등 공산주의 국가 외에는 공산당이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진실은 이와 반대다.

몇 년 전 일본의 후쿠오카에 간 적이 있는데, 시골 마을 여기저기에 우리나라에서 선거 때나 볼 수 있는 벽보를 볼 수 있었다. 필자가 일본어를 할 수 없어서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벽보에 쓰여진 한자(漢字)로 미루어 볼 때 공산당 지도부를 뽑는 선거 포스터였다.

일본에도 공산당이 있고 국회의원도 있으며, 공산당을 지지하는 노동조합도 꽤 존재한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 공산당과의 교류를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가 당시 한나라당과 자민련 등 보수 정치권의 반발을 샀으며, 극우단체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고 공산당을 합법화하려 한다며 하야를 주장하며 난리를 피운 적도 있다.

일본 공산당 당수가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도 있다. 일본 뿐 아니라 태국, 인도, 대만 등에도 공산당이 있다. 특히, 중국 본토와 이념적으로 분단된 이후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대만에도 공산당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랜 내전 끝에 공산당에 밀려 대만으로 들어온 국민당은 1949년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나 단체의 설립이 금지하면서 국민당이 일당 독재를 했다. 장개석에 이어 그의 아들인 장경국 총통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간 계엄령으로 국가를 유지해 왔다.

이런 대만에서도 2008년 6월 사법원(대법원)이 공산당 설립과 공산주의 주장을 금지하는 법률에 대해 '결사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판결하면서 공산당이 합법화됐다.

이념을 이유로 오랜 내전을 겪었고, 지금도 이념과 사상을 이유로 분단돼 서로 대립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만은 우리나라와 상당히 유사하다. 또, 중국에 비해 군사력이나 경제 규모에서 현재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하다는 점에서 대만은 한국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대만에서도 공산당이나 공산주의를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사상·이념의 자유 부정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세상에 없다

최근 FTA반대 농민 집회에서 일부 농민이 강기갑 통합진보당 비대위원장에게 "빨갱이 국회의원을 통합진보당에서 몰아내 주세요"라며 큰 절을 하고, 이석기 의원을 (부정선거 이유가 아니라) '빨갱이'라며 나가라라는 장면은 우리 사회의 이념적 천박함을 드러낸 슬픈 코미디 같은 장면이다.

이명박 대통령까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을 운운하고 있고,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과 이한구 원내대표 등도 가세해 '주사파' '종북세력' '간첩'을 운운하며 색깔 공세를 퍼붓고 있다. 급기야 헌정 사상 초유의 국회의원 자격심사까지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하다. 대한민국은 헌법 상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종북' '친북' '주사파' '빨갱이' 등 이름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주장하거나 동조하는 것은 우리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고,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구상의 그 어느 나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이유로 공산당을 금지하고 공산주의 주장을 못하게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 사상과 이념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므로 어떤 면에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금지하는 것과 자유민주주의는 양립하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공산주의를 비롯한 그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지지하지 않는 것이야 개인 선택의 자유겠지만,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다고 금지하거나 나아가 이를 탄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게 자유민주주의의 상식 아닐까.

어쩌면 헌법과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색깔론을 펴고 있는 새누리당 등 정치권, 그리고 보수단체들, 보수언론, 그들이 진정한 위헌 세력인지도 모르겠다.


태그:#종북, #빨갱이, #공산당,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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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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