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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을 찾는 첫 번째 이유요? 값이 싸잖아요. 주변에 있는 다른 칼국수집들은 6000원정도 받는데 여긴 2000원밖에 안 하고. 맛에도 만족해요."

15일 낮 12시를 조금 넘긴 시각, 서울시 양천구의 ㄱ식당에서 어머니 정춘옥씨(83)와 점심을 들고 나오는 서경희씨(60·주부·서울시 양천구 신정동)를 만났다.

사장 부부가 단둘이 운영하는 이곳은 지난해 11월 행안부가 정한 '착한가격업소'다. 면을 직접 만들고, 주문부터 음식을 나르고 빈 그릇을 치우는 일까지 모두 손님이 담당하게 해 '맛'과 '가격'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일주일에 두 세 번은 온다는 조용순씨(68·미화원·서울시 양천구 목동)는 "잔치국수도 3천 원씩 하는데, 조선팔도에 이렇게 (가격이) 싼 집도 없다"고 했다.

13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착한가격업소' 두 곳을 찾았다. ㄱ식당의 2000원짜리 칼국수는 손님들의 호평을 받았고, 4500원 받는 ㄴ식당 돈까스는 '무엇이 착한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왕돈까스' 중 작은 덩어리는 아이폰보다 조금 컸다.
 13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착한가격업소' 두 곳을 찾았다. ㄱ식당의 2000원짜리 칼국수는 손님들의 호평을 받았고, 4500원 받는 ㄴ식당 돈까스는 '무엇이 착한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왕돈까스' 중 작은 덩어리는 아이폰보다 조금 컸다.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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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행정안전부는 다른 곳보다 낮은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봉사활동 등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착한가격업소'를 발표했다. 착한가격업소는 주변보다 값은 저렴해도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 곳이다. 시·군·구 단위에서 음식점과 이·미용실, 숙박, 기타서비스 업소를 대상으로 신청을 받고, 현지 실사·평가를 거쳐 선정한다.

착한가격업소로 선정된 곳은 은행 대출시 금리·수수료 감면, 중소기업청의 소상공인 정책자금 대출 우선권·컨설팅 비용 지원 등 여러 혜택을 누린다. 행안부는 지난해 11월 1차로 2497개 업소를 선정했고, 올해 2~4월 1만여개 업소의 신청을 받아 총 7132개를 올해의 착한가격업소로 정했다. 이 가운데 2301개 업소는 ㄱ식당처럼 재심사를 통과한 곳이다.

맛·가격 평범한 돈까스집도 '착한가격업소'?

하지만 '착한가격업소' 모두가 착하지는 않다. 지난 13일 행안부 '지방물가정보 공개서비스' 홈페이지에서 <오마이뉴스> 본사와 가까운 착한가격업소를 찾아 방문했다. 10분쯤 걸어서 찾아가야 하는 ㄴ식당이었다. 홈페이지에서 '업소자랑거리'라고 알려준 '국내산 등심을 8시간 이상 재워 만든 돈까스'를 주문했다.

바삭하게 잘 튀겨진 수제돈까스의 가격은 4500원이었다. 맛은 평범했다. '왕돈까스'였지만, 돈까스 두 덩이를 합쳐야 컵라면 '왕**'보다 조금 컸다. 함께 밥을 먹은 동료는 "맛이나 가격을 비교해볼 때 더 만족할 수 있는 곳도 주변에 많아 굳이 여기까지 올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품질이 좋고 가격도 싸야 소비자가 (착한가격업소에) 감동받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남겼다.

행안부에 따르면, 착한가격업소 선정하는 첫 번째 기준은 역시 가격(60점 만점)이다. 여기에 업소 청결도·친절도 같은 서비스 점수(20점)와 옥외가격표시제·원산지표시제 이행상태를 반영하는 공공성 점수(20점)가 더해진다.

하지만 소비자는 착한가격업소의 가격 정보와 대표 품목 정도만 알 수 있다. 물론 서비스의 질이나 위생상태 등이 평가항목이지만, 가격만 알고 착한가격업소를 찾기에는 정보가 부족하다. 특히 서비스업종은 사람마다 만족도가 다를 확률이 높은 분야다. 가격이 착해도 소비자는 서비스의 질에 실망하는 경우가 나타날 수 있다.

'착한 가격'의 기준 역시 모호하다. 동료와 함께 갔던 ㄴ식당과 비슷한 돈까스를 주변 분식집에서는 5000원에 팔고 있었다. 그는 "생선구이 정식을 4500원에 먹을 수 있는 근처 음식점을 알고 있다"며 "(ㄴ식당의) 가격이 저렴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품질 정보는 없고 '착한 가격' 기준은 모호... 전문가들 "제도 보완 필요"

이 사업을 총괄하는 14일 행안부 지역경제과에 '착한 가격'의 뜻을 물었다. "가령 어느 지역 식당들이 된장찌개를 6000원씩 받는데, 한 집은 5000원씩 받는 것처럼, 주변 평균가격보다 값이 1000원 이상 저렴한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시세의 몇%'라든가 '원가의 몇 %만 이윤으로 남기는 곳' 같은 기준은 없었다.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지방물가정보 공개서비스(http://www.mulga.go.kr)' 홈페이지에 나온 착한가격업소 지정절차.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지방물가정보 공개서비스(http://www.mulga.go.kr)' 홈페이지에 나온 착한가격업소 지정절차.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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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착한가격업소를 지정해 소비자 물가를 안정화하겠다'는 행안부의 취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내용에는 아쉬워했다.

배순영 한국소비자원 정책개발팀 팀장은 "취지는 좋지만, 공산품이 아닌 '서비스'이기 때문에 같은 가격에도 품질이 다르다"며 "값이 싸다고 해서 소비자가 발품 팔아 갔더니 서비스의 질은 별로인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가격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기 보다는 소비자들이 직접 좋은 식당이나 미용실을 추천하도록 해야 낮은 가격이 품질 정보를 왜곡하지 않을 것"이라며 배 팀장은 인기투표 방식을 제안했다.

정윤경 한국소비생활연구원 사무국장 역시 "(착한가격업소 선정은) 소비자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동시에 업소들이 착한 가격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게 되면, 주변 상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가격안정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업소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요소가 부족하다"며 "지방자치단체가 착한가격업소에 쓰레기봉투를 제공하거나 상하수도 요금 감면 혜택 등을 주고 있지만 다른 방안을 더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한편 행안부는 착한가격업소 선정 효과 등을 파악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행안부 지역경제과는 14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착한가격업소들이 실제로 지역 상권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선정된 업소들의 매출에는 변화가 있었는지 등을 물어볼 것"이며 "전수조사를 할지 일부 업체만 조사할지 등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태그:#착한가격, #물가, #행정안전부, #착한가격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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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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