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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표지
 <88만원 세대> 표지
ⓒ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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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인기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인 <1박 2일>은 하나의 문장이 전체적인 방송을 지배하고 있다.

바로 '나만 아니면 돼!'다. 이 프로그램의 구성은 여행지 소개와 복불복, 이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필자는 이렇게 단순한 프로그램이 어떻게 국민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최근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 이유를 <88만원 세대>란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1박 2일>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현 세태가 <1박 2일>과 같은 모양새를 띄고 있고, 그로 인해 국민들의 마음속에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이 내면화됐기 때문이다.

승자 독식 사회, 나만 아니면 돼!

현재, 우리는 승자 독식 사회에 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패자에게 더 이상 재기할 수 있는 기회도 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청년은 꿈을 향해 쉽게 도전하지 못하고, 공무원이나 대기업 사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위해 청춘을 바친다. 하지만 이 직업은 한정적이다. 또한 청년들 때문에 직업을 양보해야할 기성세대들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성세대는 청년을 뒷바라지를 하느라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이에 청년의 대부분은 안정적인 직업을 쟁취하지 못하고, 낙오자의 대열에 편입된다.

현재, 20대의 승자 독식 게임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점은 경쟁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패자부활전과 같은 보완 장치가 거의 없을뿐더러, 중간에 개입하는 보증자도 없다는 점이다. 적어도 산업화 이후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완벽한 승자 독식의 게임은 진행된 적이 거의 없고, 이렇게 '차가운 자본주의'가 펼쳐진 적도 없었다. 그런데 20대들이 만나게 된 전면적인 경쟁은 세대 내 경쟁의 양상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대 간 경쟁'의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더욱 치명적이다. - 88만원 세대 p. 98-99

<88만원 세대>는 이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부모님 외에 20대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4년 동안 함께 대학교를 다닌 친구들조차도 취업을 위해 서로 눈치를 보며 더 나은 스펙을 쌓으려 아등바등 거린다. 이렇게 남들의 눈치를 봐가며 공부를 해도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임용고사 합격 그리고 삼성 같은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여기에서 경쟁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 이들을 제외하고 남은 사람은 더 나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시 처절한 싸움을 계속한다. 남보다 수입이 더 많은 자리, 남보다 더 안정적인 자리, 남보다 더 가치 있는 자리 등등. 현재 20대는 적게 받더라도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는 더 좋은 자리로 가고 싶어 한다. 나만 저렇게 살지 않으면 돼. 20대 뿐만 아니라 모든 우리나라 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모두 부자 되세요. 그걸 믿냐?

근대에는 신분제가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평등해졌다. 하지만 근대와 함께 들어온 자본주의가 돈을 매개로 다시 새로운 신분제를 만들어냈다. 필자는 지금 우리가 철저한 신분제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부와 권력이 지리적으로는 서울에 집중돼 있다. 이는 부자가 되려고 우리나라 인구의 20%가 서울에 모여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양반계층에 부와 권력이 집중돼 있던 것처럼 현재에도 1%의 특권층에게 대부분의 부와 권력이 집중돼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1%에 속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공부한다.

우리나라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또는 자식에게 공부를 제대로 시키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모두가 중산층이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코 모두가 부자는 될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향평준화가 가능할 거라고 믿는다.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니면 드라마나 언론 등을 통해서 조장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모두가 벤츠를 타고, 모두가 강남에 소재한 아파트를 가질 수는 없다. 이는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남은 안 될지 몰라도 나는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연대하기 보다는 혼자 더 높이 올라가기를 원한다.

이는 개미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누구를 밀어 넣느냐, 즉 "누가 가장 먼저 잡아먹힐지"를 결정하는 문제다. (중략)서로 싸우는 대신 협력해서 개미귀신과 맞서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사건은 벌어지기 어렵다. 왜냐하면 개미지옥 내부에서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모두 목숨을 걸고 개미귀신과 싸워야 겨우 이길 수 있다. 하지만, 몇몇이 방관할 경우 싸우는 것은 명을 재촉하는 일일 뿐이다. 결국, 다들 목숨 걸고 싸우는 대신 조금 늦게 잡아먹히길 원하게 된다. - 88만원 세대 p. 198

죄수의 딜레마란 두 공범자가 협력해 범죄를 숨기면 형량이 낮아지는 최선의 결과를 누릴 수 있지만, 상대방의 범죄 사실을 밝히면 형량을 줄여준다는 수사관의 유혹에 빠져 상대방의 죄를 고변함으로써 더 높은 형량을 받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서로 더 많은 부를 누리려 상대방의 죄를 고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극소수의 특권층의 배만 불려주고 나머지는 피폐한 삶을 사는 더 높은 형량을 받는다. 만약, 죄수의 딜레마를 극복했다면 우리나라는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국가처럼 함께 잘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함께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자

<88만원 세대>란 책이 출간된 지도 어연 5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변한 건 없다. 20대들은 예전보다 더 가혹한 착취를 당하고 있지만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연대란 단어 따위는 그들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안정적인 직장을 위해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린다.

냉혹한 현실이란 바람에 꺼져가는 등불처럼 청년은 외줄타기 인생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20대라는 '세대 내 경쟁'보다 '세대 내 연대'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회에 20대가 속할 수 있는 구역을 확보해 바리케이트를 쳐야 한다. 짱돌을 들고 그곳을 지켜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만의 바리케이트와 그들이 한 발이라도 자신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필요한 짱돌이지, 토플이나 GRE 점수는 결코 아니다. 엄폐물 없이 은폐되어 있는 20대가 하나의 주체로서 목소리를 내는 과정, 이 흐름은 개별적으로 입사 시험 보면서 '단단한 직장'을 잡는 과정과는 조금 다르다. (중략)

사회 특히 기성세대가 자신들을 지키는 바리케이트를 20대와 공유하지 않으려고 하는 현 시점, 20대도 어떤 식으로든지 더 사회적이고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가지려고 할 필요가 있고, 그들의 요구가 조금이라도 새로운 반전의 계기를 찾을 수 있도록 작은 '짱돌'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88만원 세대 p. 289-290

닥치고 몰려나와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자는 말이 아니다. 먼저 20대 모두의 '공감'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 공감과 동의 없이 외치는 소리는 아무런 힘이 없다. 이 행동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의 주제를 가지고 수많은 토론과 논의를 가져야 한다.

이 같은 치열함과 절박함을 충분히 가지고 뛰어들어야 간신히 성공할 수 있을 만큼 사회는 가혹하다. 이제 <1박 2일>을 보며 시시덕거리는 일은 그만하자. '나만 아니면 돼!'가 아니라 '너와 내가 함께여야만 돼'로 무장하고 20대들의 구역을 위해 돌진하자. <88만원 세대>가 우리나라 사회와 20대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덧붙이는 글 | <88만원 세대>/ 우석훈, 박권일 공저/ 레디앙 펴냄/ 2007. 8. 1/ 15,000



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박권일 지음, 레디앙(2007)


태그:#88만원세대, #우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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