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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2시 인터뷰를 위해 민주노총 위원장실에 들어서자, 김영훈 위원장의 책상 위에 쌓여 있는 담배 네 갑이 눈에 확 들어왔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과 중앙위 폭력사태로 이어진 '통합진보당 사태'가 김 위원장에게 남긴 고민의 흔적이었다.

 

김 위원장이 '통합진보당 사태'에 아주 힘들어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미 지난 2005년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 폭력사태를 겪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계 대표(조준호 전 공동대표)가 진보정당 당원에게 폭행을 당하는 '전무후무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트라우마(trauma)가 충분히 치유되기 전에 또 다른 트라우마가 생긴 형국이다.   

 

"진보정치 망가지는 장면 찍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었는데..."

 

김 위원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세계 진보정당 역사상 노동단체와 정당의 관계가 이렇게 된 적은 없었다"며 "공당의 대표가 폭행당한 것도 처음일 것이고, 노동 출신의 대표가 진보정당에서 저렇게 폭행을 당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위원장은 "이정희 대표를 비롯해 당권파 쪽에서는 '마녀사냥'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는 부실-부정투표가 조중동을 위시한 극우언론의 먹잇감이 되는 것을 우려한다는 뜻"이라며 "그런데 그렇게 여론 재판의 희생양이 되지 말자고 했던 사람들이 그럴 수 있나?"라고 당권파 주도의 폭력사태를 비판했다.

 

"보수언론은 그 폭력이 난무하고 진보정치가 망가지는 그 장면 하나를 찍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었는데 어떻게 폭력사태를 일으킬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이어 김 위원장은 중앙위 폭력사태의 발단인 진상조사위 조사결과와 관련해서는 "(진상조사보고서에는) 부정과 부실이 있었지만 그 행위 주체는 나와 있지 않다"며 "당권파나 '경기동부연합' 같은 표현을 쓰며 자신들의 세력을 지목하니까 억울함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상조사 어디에도 누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서에는 총체적인 부실선거라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있다"며 "부실이 어디서 어디까지냐, 얼마만큼 부정이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진상조사보고서는 그것(총체적인 부실선거라고 지적한 것)으로 역할을 다 한 것이고 후속조치는 합당한 논의를 통해 하면 될 문제"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지적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주장하는 이정희 전 대표의 시각에도 향해 있었다. 당 운영과 관련해 일어난 '정치적 문제'를 엄격한 사법적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다.

 

김 위원장은 "(대중정치인은) 자기가 커왔던 토대에서 커야 하는데 왜 이정희 대표가 일관되게 당권파를 옹호해왔는지 알 수가 없다"면서도 "하지만 이 대표는 진보정치에서 대단히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에 정파를 떠나서 그런 정치인을 키워내야 할 책무가 당에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진보정치에서 크고 작은 일을 함께했던 공당의 대표(이정희 대표)를 향한 무차별적인 매도나 비난도 동의하지 않는다"며 "냉철한 이성으로 평가해야 하고 우선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당원 총투표로 비례대표 후보 총사퇴를 정하자'는 이석기 당선자의 주장에는 "그가 국회의원이 된 것은 200만 표나 되는 국민들에 의해서다"라며 "그가 있는 자리가 당직이라면 모르겠지만 (총투표로 정하자는 주장은) 당직자와 공직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비례대표 후보 총사퇴'의 표적이 된 이석기·김재연 당선자의 경우 이미 국회의원으로 등록한 상태라 이들을 사퇴시키기는 어렵게 됐다. 일각에서 '출당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있긴 하지만, 김 위원장은 "그것은 당에서 결정할 문제이지 내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다만 김 위원장은 두 당선자의 자진 사퇴를 완곡하게 요구했다. 그는 "국회의원 1-2석이 그렇게 중요한가, 국회의원이 누굴 위한 자리인가?"라고 물은 뒤 "충분히 정치적으로 부활할 수 있고 신원이 회복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점을 깊이 고려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집단탈당-분당? 불타는 절을 바라보는 중의 심정도 있다"  

 

그런 가운데 관심은 오는 17일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에 쏠리고 있다. 이날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 지지 철회와 집단 탈당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현재의 통합진보당을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현시점까지 당은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기는커녕 (폭력사태라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였기 때문에 당과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4일 공동대표단에서 결정한 혁신비대위 출범과 사무총장 해임, 비례대표 후보 총사퇴 권고 등은) 최소한의 조치이고, 이 정도도 못한다면 진보정당이 아니다"라며 "계속 지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그 뒤의 과정을 지켜보며 판단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집단 탈당과 분당 가능성 등에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만이지만 불타는 절을 바라보는 중의 심정도 있는 것"이라며 "분당도 없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금은 먼저 나가면 지는 거라는 분위기 아닌가?"고도 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다시)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할 시점은 아니고, 혁신비대위도 인정하지 않는 당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도 없다"며 "강기갑 위원장이 (민주노총에) 비대위 참여를 요청해왔고, 그것까지 포함해 중앙집행위에서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 위원장도 15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민주노총이 (당을) 계속 지지할 것인지, 지지를 철회할 것인지 고민하기보다 통합진보당에 대거 들어와 당의 주체로서 혁신하고 개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강기갑 위원장은 중앙위가 열리기 전날인 16일 오전 민주노총을 방문해 김 위원장을 만나 혁신비대위 참여를 공식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민주노총의 개입력은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었다"며 민주노총의 영향력 약화를 인정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사태의) 본질은 진보정당의 '노동중심성'이 사라지고 '정파중심성'만 남았다"고 진단함으로써 혁신비대위 참여 등 '개입전략'을 통해 '노동중심성 강화'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했다.


태그:#김영훈, #통합진보당,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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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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