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무덤 앞에 놓인 액자 속에서 열사의 얼굴은 닳은 지문처럼 희미해진 지 이미 오래. 그러나 묘비에 걸린 구호만은 붉게 선명했다. 2012년 5월 13일 늦은 오후, 광주 북구 망월동 5.18 옛 묘지. 간혹 봄비가 32년 응고된 눈물처럼 후두둑 떨어지곤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다시 오월은 왔다.

 

살아남은 자들은 '망월동 구 묘역 작은 음악회'를 열어 오월영령들을 위로했다. 망월동 구 묘역은 80년 5.18항쟁 당시 희생된 시민들이 처음으로 묻혔던 곳이다. 1997년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대부분의 5.18영령들은 '신 묘지'라 불리는 '5.18 국립묘지'로 이장했다.

 

하지만 광주광역시와 시민들은 구 묘역에 가묘를 그대로 유지한 채 오월영령들이 쓰러진 그날을 잊지 않고 있다. 지금은 항쟁 이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사망한 이들이 차례로 영면에 드는 곳이 되었다.

 

"신록이 춤추는 봄날에 노래가 통곡으로 들린다"

 

5년째 망월동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는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대표 행법 스님은 "신록이 춤추는 봄날에 노래가 통곡으로 들린다"며 "민주영령들의 무덤가에 앉아서 한을 토하는 세월이 얼마나 더 길어야 하나"라고 탄식했다.

 

행법 스님은 "오월영령들은 민주의 꽃씨로 산화하셨으니 살아남은 우리가 그 꽃씨를 피워야 한다"며 "우리가 열 사람 스무 사람 몫을 해서, 우리가 더 피어나고 더 깨어나서 사람사는 세상을 가꾸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가수 박양희는 특유의 흐름을 유지하며 다섯 번째 '망월동 구묘역 작은 음악회'를 이끌었다. 올해 공연에도 많은 문학예술인들이 함께했다. 소설가 공선옥은 전라도 정서 가득한 음성으로 '오월 소설'의 한 대목을 낭송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생명과 평화를 노래하는 가수 인디언 수니는 오월영령들에게 <전선야곡> <조율> <임을 위한 행진곡> 등 모두 다섯 곳을 바쳤다. 인디언 수니는 "영화 <고지전>을 봤는데 <전선야곡>이 나오더라"며 "5.18 당시에도 그랬고 현재 강정마을에서도 마찬가지로 누가 적인지도 모르는 이들이 있다"고 꼬집었다. 

 

독특한 자기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기타리스트 '고무밴드'의 김영주는 "미8군 무대에 서고 있을 때 이 분들은 돌아가셨다"며 "영령들을 위로하는 연주를 30년 동안 바랐는데 이제사 하게 됐다"고 담담하게 소감을 말했다. 그는 "이제 여기서 가까운 무안에 있으니 자주 와서 기타 연주를 들려드리겠다"고 영령들을 위무했다.

 

정혜선(18)씨는 망월동 작은 음악회를 이끄는 박양희씨의 권유로 노래를 했다. 그는 "80년 5.18때 돌아가신 분이 있는데 그 분은 8개월 된 아이를 밴 분이셨다"며 "남편을 기다리다가 군인이 쏜 총에서 맞아서 뱃속 아이와 함께 돌아가셨다는 글을 읽고 너무 슬펐다"고 했다.

 

오월영령들을 위무하는 작은 음악회는 오후 다섯시에 시작해 밤 열시 무렵 끝났다. 망월동 구묘역 작은 음악회를 지켜본 한 시민은 "저분들이(오월영령들이) 가슴에 품은 분노와 한, 슬픔이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좋겠다"며 "좋은 세상 만드는 것이 저분들 한을 풀어드리는 일일 텐데 세상이 거꾸로 가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3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올해도 이명박 대통령 불참으로 알려져

 

 

한편 올해로 32주년을 맞이하는 5.18항쟁 주간엔 예년처럼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14일부터는 광주 가톨릭센터에서 '5.18항쟁 및 6월항쟁 사진전'이 열린다. 16일엔 세계인권도시회의 개회식이 열리고, 17일엔 5.18유족회가 주관하는 '5.18 추모제'가 국립 5.18묘지에서 열린다. 그리고 오후 7시부터는 5.18전야제가 금남로에서 열린다.

 

18일엔 오전 9시부터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국립 5.18묘지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도 5.18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7시에는 '2012년 광주인권상' 시상식이 열린다. 올해 수상자는 '길 위의 신부'로 널리 알려진 문정현 신부다.

 

19일엔 광주 일원에서 '오월길 순례단'을 만날 수 있다. 20일엔 금남로에서 '5.18국민대회'가 열릴 예정이고 21일엔 '박승희 열사 21주기 추모행사'가 열린다. 26일엔 '들불열사 합동추모식 및 들불(박효선)상 시상식'이 열린다. 계엄군에 의해 전남도청이 함락됐던 27일엔 5.18구속부상자회 주최로 '오월영령 부활제'가 열린다.

 


태그:#5.18, #광주, #망월동, #금남로,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