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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근대역사박물과 3층 전시실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
 군산 근대역사박물과 3층 전시실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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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이하 '역사박물관')은 전국 박물관 최초로 전시공간을 무대로 활용한 시대극 <1930년 시간여행>을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3시 두 차례 개최해 관람객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5월 첫 주말(5일) 공연도 제90회 어린이날과 겹쳐 성황을 이루었다.

시대극 무대가 된 역사박물관 3층은 1930년대 당시 군산에 실존했던 미두장(미곡취인소), 홍풍행, 고무신 가게, 내항, 영명중학교, 군산역, 임피역 등 건물 열한 채를 재현한 생활전시공간으로 일제의 탄압과 수탈의 아픔을 그려내 선보였다. 

연극은 6장으로 나눠 약 20분 동안 진행되었다. 등장인물은 역장(이야기꾼), 정주사, 문용기 열사, 일본 헌병, 아코디언 연주자, 고무신 가게 주인, 농민, 지게꾼, 동네 사람 등 모두 18명으로 자연봉사자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연기는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시실에 재현해놓은 ‘내항’에서 부두 노동자들이 쌀을 배에 싣고 있다.
 전시실에 재현해놓은 ‘내항’에서 부두 노동자들이 쌀을 배에 싣고 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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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채만식 소설 <탁류>에서 하바꾼으로 전락한 정주사가 미두장 앞에서 젊은 애송이들에게 봉변당하는 장면, 소설 <아리랑>에서 부둣가 노동자들이 쌀가마 나르는 장면, 조선 백성이 일본 헌병에게 구타를 당한 뒤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는 장면 등을 리얼하게 펼쳐 관람객에게 감동을 주었다. 

일본 헌병이 조선 백성에게 “웃옷을 벗어보라!”고 고함치고 있다.
 일본 헌병이 조선 백성에게 “웃옷을 벗어보라!”고 고함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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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망이를 휘두르며 거들먹대던 일본 헌병이 조선 지게꾼 품에서 쌀 주머니가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빠가야로, 조센징. 감히 대일본제국 쌀을 왜 건들어!"라며 때리자 객석이 동요되면서 이곳 저곳에서 탄식 소리가 들렸다. "일본은 정말 나쁜 사람들이에요!"라며 마음 아파하는 학생도 있었다.    

연극이 끝나고 만난 영광여고(전 멜볼딘여고) 1학년 이유진(17세) 학생은 "연극이 재미있다"면서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급우와 함께 왔다는 유진 학생은 "제가 다니는 학교도 일제강점기에 개교한 미션스쿨이어서 탄압을 심하게 받았다는 얘기를 선생님들이 하셨다"며 소감을 말했다.

"재미있긴 한데 너무 슬펐어요. 얼마나 슬프면 배우들이 연기하다가 눈물을 보였겠어요. 부둣가 일꾼들이 어깨에 무거운 쌀가마니 짊어지고 가는 모습하고, 헌병이 지게꾼을 몽둥이로 때리는 장면이 제일 슬펐어요. 젊은 사람에게 혼나는 정주사도 불쌍했고요. 슬퍼도 좀 길었으면 좋겠는데 너무 짧아서 아쉬웠어요···." 

"이제는 아내도 내 팬이 됐어요!"

김신환 어른이 “우리는 언제까지 당하고만 살 수 없다”며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
 김신환 어른이 “우리는 언제까지 당하고만 살 수 없다”며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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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독립만세를 주도한 문용기(1878~1919) 열사 역할을 실감 나게 해낸 김신환(80) 어른은 "살아 있는 박물관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 작년 9월 자원봉사 나왔다가 연극팀을 꾸미고 직접 참여도 하게 되었다"며 "연습할 때는 힘들고 어려웠지만,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김신환 어른이 3·1 독립운동을 주도한 김용기 열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신환 어른이 3·1 독립운동을 주도한 김용기 열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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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처음엔 대사를 자꾸 까먹어서 고생했어요. 몸도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았고. 그러나 지금은 자연스럽고 대사도 입에서 술술 나옵니다.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아내도 내 팬이 되었어요. (웃음) 문제는 목소리죠. 문용기 열사처럼 힘차게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려면 목소리가 커야 실감이 나거든요. 그래서 밤마다 아무도 없는 부둣가로 나가 목청을 다듬고 있습니다."

단원들 열정은 대단했다. 정주사 역할의 송정웅(70)씨는 "충남 서천 군청에서 근무하던 정 주사는 어느 날 식솔을 거느리고 군산으로 이사하는데 미두에 빠져 가산을 잃고 딸까지 팔아먹는 비정한 아버지가 된 사람"이라며 소설 내용을 줄줄이 외우고 있었다.

극단 <둥당애>(단장 김광용)의 기획·연출로 제작된 <1930년대 시간여행>은 역사박물관 소속 '연극 자원봉사팀'과 의상제작을 맡은 '꽃손 자원봉사자 팀' 등 전문 연극연출가와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져 의미를 더했다.

"시대극으로 소통하는 박물관 만들겠다."

역사박물관 관계자는 "박물관을 개관하고 다양한 사업을 벌여오면서 어려움 중 하나는 '우리가 왜 근대사를 보존해야 하는지' 관람객을 설득하는 문제였다"며 "고민을 거듭하다 연극이 가장 어필하기 좋은 방법일 것 같아 기획했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좋다."라고 말했다. 
 
그는 "1930년 군산을 조명하는 시대극을 통해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잊지 않도록 군산 근대문화사업의 목적과 정체성을 부각해 이미지를 창출하고 이를 매개로 관람객과 소통하는 박물관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시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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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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