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통합진보당이 4.11 총선 비례대표 경선 부정선거 파문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회의실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이정희 공동대표가 회의 진행 도중 당원들의 소란으로 잠시 정회한 뒤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4.11 총선 비례대표 경선 부정선거 파문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회의실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이정희 공동대표가 회의 진행 도중 당원들의 소란으로 잠시 정회한 뒤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12일 열리는 당직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 나를 중심으로 짜여질 차기 당권 구도는 없다. 중앙위 끝나는 즉시 내게 주어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겠다. 이것이 내가 책임지는 방식이다. 당을 지켜내고 당원의 명예를 지켜낼 수 있다면 몸이 가루가 돼도 후회하지 않는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말입니다. 울먹이긴 했지만 그는 아주 당당했습니다. 누가 '민노당 당권파'를 부정한 세력으로 몰아가느냐고 날을 세웠습니다. 조준호 공동대표가 위원장이 돼서 조사한 '당 부정선거 조사위원회의 공식 조사결과 보고서'를 수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조사위가 책상머리에서 당원을 모욕 줄 권한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사위는 당원들 모욕 말라"... 당당한 이정희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지하1층 회의실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중앙운영위원회회의장에서는 이 대표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큰 박수가 터졌습니다. "힘내십시오!"를 연호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눈물을 훔치는 운영위원들도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일부에선 "그만해라, 그만해"하는 야유도 터졌지만 대개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공동대표단의 모두발언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대표는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사태를 회상할 때 눈물이 났는지 어금니를 꽉 깨문 채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요지는 이것입니다. 다들 민주노동당이 소멸될 거라고 손가락질 할 때 자기 발로 이 당에 걸어들어왔고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대표직을 맡았다고 말했습니다. '계파'의 수장으로 당의 대표를 맡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이번 총선 비례대표 당내 경선에서 빚어진 부정선거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이 대표는 "누가 진보정치에 십수년 몸 바친 당원을 책상머리에서 부정행위라고 내몰 수 있냐"며 "조사위는 진실을 밝힐 권한이 있지 모욕을 줄 권한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편파적이고 부실한 조사는 부족한 나를 깊이 성찰하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 있는 동안에 일어난 일"이라며 "조사위 보고서는 불신에 기초한 의혹만 내세울 뿐 합리적인 추론도 안 돼 있어 조사방식을 수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이 대표는 "진상조사위원회가 특정 후보에게 투표한 IP를 추적해서 대리투표로 몰았다"며 "당원 개인의 정보도 지켜내지 못했고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비밀투표 원칙도 침해했다"고 말했습니다.

기자들의 실소 자아낸 이정희... 왜일까

통합진보당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이 지난 2일 오전 국회에서 "19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 선출을 위한 온ㆍ오프라인 투표에 총체적 부실과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인정한 뒤 굳은 표정으로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통합진보당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이 지난 2일 오전 국회에서 "19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 선출을 위한 온ㆍ오프라인 투표에 총체적 부실과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인정한 뒤 굳은 표정으로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이 대표의 발언은 이번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전혀 수용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당 대표단이 숙의해서 진상조사하기로 결정하고, 2주간의 조사를 통해 도출된 결론을 당대표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당대표단이 임명한 조사위원장은 조준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입니다. 조 위원장은 이정희 대표가 당의 노동자 중심성을 강조하면서 모신 인사입니다. 입당하자마자 그가 공동대표가 된 것은 민주노총의 조직적 기반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대표는 조 위원장이 내놓은 조사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조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내가 어떤 입장과 정파의 이해를 대변해서 공정성을 잃고 조사에 임했다면 그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이 보고서를 발표할 때 누구에게 상처가 될지 이득이 될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조 위원장은 "당원과 국민을 믿고 발표했다"며 "진보정치가 어려워지고 당이 어려워지는 것은 너무 송구스럽지만 우리는 국민을 믿고 노동자 농민 대중을 믿고 미래를 열어야 한다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통합진보당 중앙운영위원회가 YTN 등을 통해 생중계될 때 국회 정론관에 모여 있는 많은 기자들은 이 대표의 발언에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통합진보당 당원은 '명예'는 어디서 나오나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입니다. 참여연대의 논평대로 진보정당에서 독재정권 때나 있을 법한 부정선거 행태가 빚어졌습니다. 심지어 통합진보당은 그동안 기성정당의 구시대적 정당 운영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던 정당입니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한국의 정당정치에 새로운 변화를 주장했던 정당입니다.

지난 1월 민주통합당이 국민참여경선으로 당대표를 뽑는다고 했을 때, 통합진보당은 민주통합당이 주인 없는 정당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이죽거렸습니다. 주권당원을 토대로 한 통합진보당은 적어도  당내 민주주의에 관한한, 당 운영에 관한한 국내 그 어떤 정당보다 깨끗하고 투명하다는 듯이 말이지요.

그런데 정작 부정부패 사건이 터졌을 때 통합진보당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국민들에게 어떤 충격을 줄까요? 민노당 당권파는 이 점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통합진보당의 핵심 관계자는 "민노당 당권파에게 국민은 안중에 없다"며 "당내에서 자신들의 계파를 유지하면서 활동하는 것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합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당이 조사한 내용을 기반으로 좀더 구체적인 팩트 확인에 들어가야 할 텐데, 이것을 거부합니다. 참여연대의 주장대로 통합진보당이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라면, 조 위원장이 조사한 내용에 덧붙여 구체적으로 누가 왜 온라인투표의 시스템에 접속해 프로그램을 수정했는지, 이를 지시한 사람은 누군지, 온라인 대리투표를 조직한 사람은 누군지, 현장 투표에서 명부에 등재되지 않은 사람들의 투표를 조직한 인물은 누구인지를 밝혀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이정희 대표는 '당원'을 강조합니다. 당원의 명예를 지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무엇이 통합진보당 당원의 명예일까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는 것이 통합진보당 당원의 명예일까요? 그 당원들은 4일 오후 이 대표의 발언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뭔가 단단히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통합진보당이 존폐의 기로에 놓여 있다는 여느 정치평론가들의 말을 무심코 넘기기가 어려운 단계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당내에는 민노당 당권파가 이미 전략을 세웠다는 말들이 파다합니다. 검찰조사에 불응하면서 각종 자료를 내놓지 않고, 당에서 농성을 시작한다는 거지요. 그 얘기를 접한 한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통합진보당 당권파가 검찰조사를 거부하고 농성을 벌인다면, 과거 이인제 의원과 김민석 전 민주당 최고위원과 무엇이 다르냐고.

지금 통합진보당 대표단이 정확히 듣고 판단해야 할 것은 국민입니다. 국민이 안중에 없다면 그 정당은 어떤 정당일까요? 이정희 대표는 지금 당권파에게 쏟아지는 모든 비난을 한몸에 거머쥐고 떠날 채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당 조사위의 조사결과를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것도 결국엔 당내 존재하는 당권파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냐는 분석이 나돕니다.

"통합진보당은 죽었다"... 계속 이렇게 갈 겁니까

당내 일각에서는 "이정희 대표가 경기동부의 핵심으로 알려진 이석기 당선자를 살리고 자신은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겠다는 것이냐"라는 조롱도 나옵니다. 이번 사건으로 '통합진보당이 죽었다'고 말하는 기자들도 있습니다. 기성정당보다 못한 정치구태를 보이는 정당이 진보정당일 수는 없다는 뜻이겠지요.

통합진보당이 4.11 총선 비례대표 경선 부정선거 파문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회의실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이정희 공동대표가 의사봉을 두드리며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유시민, 이정희, 심상정, 조준호 공동대표).
 통합진보당이 4.11 총선 비례대표 경선 부정선거 파문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회의실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이정희 공동대표가 의사봉을 두드리며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유시민, 이정희, 심상정, 조준호 공동대표).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지난 총선 당시 서울 관악을에서 이정희 대표의 보좌관이 '여론조작 문자메시지'를 발송했을 때, 기자들은 이 위기를 이 대표가 잘 견디면 차기 대권주자로 우뚝 설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우물쭈물 시간을 보내다 나중에야 결단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더 구태를 보인다는 지적입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 도전했던 한 통합진보당 인사는 "이건 당이 해산하고도 남을 문제"라며 "새누리당보다 못한 게 지금 우리 당의 현실"이라고 일갈했습니다.

그는 "조사위원회가 누가 지시해서 조직적으로 그런 움직임을 보였는가를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당권파의 견해"라며 "물적 증거가 없다며 억울하다 버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그는 "지금 당권파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며 "빨리 총사퇴로 결단하고 국민에게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줘도 될까말까 한 시점에 조사위 조사내용을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통합진보당 당내 인사들은 이날 중앙운영위에 앞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10·26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했던 최규엽 금천시 후보, 김창희 남양주시 공동위원장, 김형탁 과천의왕 후보, 최민 천안갑 후보 등 27명의 당내 인사들은 "이번 사태는 당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당권파가 전국적인 조직 선거운동 과정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 부정선거"라며 "비례 1번이 결단을 내린 상태에서 당권파의 실세로 정치적 책임이 부여된 비례대표 2, 3번은 물론 이번 비례대표 경선에 참여한 모든 후보들이 총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2, 3번(이석기, 김재연) 비례대표 당선자들이 총체적 부정선거 사태에도 계속 사퇴를 거부한다면 부정선거 문제가 여론의 압박으로 검찰조사까지 강요될 것"이라며 "국민과 여론의 뭇매로 통합진보당의 고립은 걷잡을 수 없이 심화될 것이며 당 분열이라는 최악의 사태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이들은 "당원과 국민들이 만들어준 국회의원을 자신의 소유물이나 쟁취물인 것처럼 고집하다 당도 깨지고 본인도 강제로 사퇴당하는 역사적 범죄를 자행하는 일이 없도록 대승적 결단을 촉구한다"며 "당권파의 정치관료들이 장기간 장악된 사무총국은 이번 부정선거 사태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통감하고 총사퇴하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진보당을 범죄의 소굴로 만든 행위에 대해 납득할 만한 강력한 조치가 수반돼야 한다"며 "통합진보당이 투명하고 대중적인 진보정당으로 거듭나려는 혁신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고 일갈했습니다.

당내에서도 이런 의견이 나오고 있는 데 이를 외면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태그:#이정희, #통합진보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