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둘째 딸아이의 연애 소식은 아빠에겐 청천벽력이었다.
 둘째 딸아이의 연애 소식은 아빠에겐 청천벽력이었다.
ⓒ 유창재

관련사진보기


"서방님, 어떡해?"
"왜?"
"글쎄, 우리 딸이 연애를 시작했어!"
"뭐?!"

헐~ 지난 3일 저녁 퇴근한 내게 아내가 할 말이 있다면서 꺼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멍했다. 아니, 그 충격은 소위 말하는 '멘붕(멘탈붕괴)'이 되어 내게도 찾아왔다. 이런 게 멘탈붕괴란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날 아내의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에 '아,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보다 '이건 좀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딸의 연애 소식이 무슨 멘붕까지 거론하며 충격받을 일이냐'고 하실 수도 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둘째 딸의 나이가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도 아니고, 불과 올해 나이 방년 5세. 정확히 개월 수로 따지자면, 45개월이다. 이거 너무 빠르지 않는가!

무엇보다 애지중지 딸을 키우고 있는 아빠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 더구나 초등학교 다니는 첫째 딸을 통해 이미 한 차례 겪긴 했지만, 그때는 지금과 같은 충격은 덜했다. 멘붕까지는 아니었다. 첫째는 워낙 사교성이 좋은 아이였던 데다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더라도 "아빠도 똑같이 좋아!"라는 말을 꼭 덧붙여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웬 호들갑이냐고 하시면서 짐작하셨겠지만... 그렇다. 난 이른바 '딸바보 아빠'다.

둘째 딸과 J군과의 만남... 혹시나 했더니, 흑~

'못말리는' 둘째 딸.
 '못말리는' 둘째 딸.
ⓒ 유창재

관련사진보기


사실, 우리 둘째 딸의 카리스마, 고집은 보통이 아니다. 지난해 초, 잘 다니던 어린이집을 '자퇴'하면서 제도권 교육을 거부했다(관련 글 보기 ☞ <어린이집 자퇴한 네 살 소녀, 그 이유는?>). 딸아이는 뚜렷한 주관을 갖고 스스로 판단을 한 뒤, 독학생의 길을 걸었다.

그러던 딸아이가 올 초 1년여 만에 다시 제도권 교육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단, 어린이집이 아닌 '건물이 큰' 유치원으로 말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언니처럼 큰 건물에서 교육을 받고 싶다는 것. 못말리는 짱구보다 한발 앞서 나간 둘째 딸. 지난해 연말 2012년도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응모했다가 10대 1의 경쟁에서 추첨 결과 떨어져 상처를 받기도 했다. 이후 수소문 끝에, 마침 동네에서 제일(?) 큰 유치원에 자리가 비었다는 연락을 받고, 딸아이가 직접 현장 방문을 통해 자신이 다닐 유치원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다시 제도권 교육 현장으로 들어간 둘째 딸. 그런 그녀가 유치원 등원 한 달 만에 배운 일이 바로 '연애'라니... 어찌 이럴 수 있나! 남들은 노래나 율동 등을 배워와 엄마 아빠 앞에서 재롱을 피우는데, 우리 딸은 사랑을 배워왔다니... 이 어찌 딸바보인 아빠의 멘탈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겠는가.

이런 충격 때문인지 내 머릿속엔 '주민등록증도 없는 딸아이가 연애를 시작하다니' '봄바람에 새싹이 돋아나듯이 살랑살랑 사랑이 싹트다니 이게 말이 돼' 등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특히 아내가 전한 "우리 딸 연애를 시작했어!"란 말이 반복적으로 귓가에 윙윙거린다. 특히나 며칠 전 내가 직접 데리고 간 유치원 등원길에 만난 J군, 또 지난 노동절 저녁 산책길에서 만나 J군의 얼굴이 파파박 번갈아 가면서 뇌리를 때리고 있다. 분명히 밝히지만, 내가 J군을 결코 '디스'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내 어찌 무려 서른다섯 살 차이 나는 다섯 살배기 남자아이에게 질투를 하겠는가!

오호통재라~ J군, 집까지 찾아오다니!

2012년 봄, 살랑살랑 봄바람과 함께 다섯 살배기 둘째 딸에게 첫사랑이 찾아왔다.
 2012년 봄, 살랑살랑 봄바람과 함께 다섯 살배기 둘째 딸에게 첫사랑이 찾아왔다.
ⓒ 유창재

관련사진보기


설상가상, 멘붕에 빠진 내게 아내가 덧붙여 말한다.

"우리 딸뿐만 아니라 J군도 장난이 아니래. J군 할머니가 그러는데, J가 우리 딸 이름 부르며 '보고싶다' '보고싶다' 외친데... 빨리 아침이 안 되냐고 묻는다고도 한데."
"……."
"그래서 오늘 낮에 유치원 끝나고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갔어."
"……."
"딸에게 아빠가 좋아 J군이 좋아 물어봤더니, 주저 없이 J군이라고 하네. 하하하~"

순간, "뭐!!!"라며 버럭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아니, 집안의 가장인 아빠가 없는 틈을 타서 남자친구를 집에 끌어들이는 엄청난 일을 감행한 거야!'하고 내지르고 싶은 불끈하는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꿈틀거렸다. 이런 남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좋다고 까르르 웃는다.

내가 이렇게 흥분하고 절망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 둘째 딸은 아빠인 내가 출퇴근할 때 "아빠~" 하고 소리 지르며 달려나와 안기고 인사를 한다. 또 일 주일에 절반 이상은 엄마가 아닌 아빠 품에 안겨 잠을 잔다. 밥 먹을 때도 엄마가 아닌 아빠 무릎에 앉아 먹여달란다. 또 화장실 갈 때도 아빠랑 가야 한다. 이런 우리 부녀를 보고 많은 이들이 "둘째는 어찌 저리 아빠를 따라요" "완전 아빠 껌딱지네!"라고 말한다.

이런 멘붕의 심정으로 다음 날 출근해서 동료 직원들에게 딸의 연애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여성들의 반응은 "이제 시작이에요~ 호호" "만날 갈아치울 거니까 너무 충격받지 마세요~ 하하" 등의 말이 돌아왔다. 이건 위로가 아니라 앞으로 계속될 멘붕의 예고였다. 또 딸에 대한 아빠의 사랑을 포기하라는 일종의 압박(?)이었다.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랄까. 내 멘탈은 끝없이 무너졌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어른들이 말씀하셨다.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우리 둘째 딸은 유난히 새까만 눈동자 때문에 '머루양'이란 애칭이 있다. 또한 '엄지뉴스'에 종종 등장하다 보니, '엄지아가'로 통하기도 한다.
 어른들이 말씀하셨다.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우리 둘째 딸은 유난히 새까만 눈동자 때문에 '머루양'이란 애칭이 있다. 또한 '엄지뉴스'에 종종 등장하다 보니, '엄지아가'로 통하기도 한다.
ⓒ 유창재

관련사진보기


사실, 위에서 밝히지 않은 아내의 이야기가 있었다.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내게 아내가 말했다.

"근데 J군이 이달(5월) 말에 멕시코로 이민 간다고 하네... 울 딸 상처받으면 어쩌지!"
"그래... 그렇군..."

아내의 말에 무덤덤히 답했지만, 솔직히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이런 아빠의 마음, 좀 얄팍한 것 같지만, 아마도 딸바보 아빠들은 이해하시리라.

2012년 5월 가정의 달, 특히 어버이날을 앞두고 전해 들은 둘째 딸의 첫사랑 소식은 축복이 아닌 절망으로 기억될 듯하다. 딸아, J군이 떠나는 그때까지만 즐겨라!!!


태그:#멘붕, #딸바보, #멘탈붕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용산 대통령실 마감하고, 서울을 떠나 세종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진실 너머 저편으로...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