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전 참전용사 고 김정근씨 가족 사진
▲ 고 김정근씨 가족 한국전 참전용사 고 김정근씨 가족 사진
ⓒ 김병옥

관련사진보기


"조국을 위해 목숨까지 걸고 헌신하신 아버지는 평생 한을 안고 살다 돌아가셨습니다. 온 몸이 망신창이가 되어가면서까지 지킨 국가가 아버지를 위해 해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수십 년 동안 서류가 잘못되어서 마땅히 받으셨어야 할 국가유공자 혜택을 못 받았는데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반드시 진실을 밝혀 주십시오."

김병옥(49∙서울시 종로구)씨는 28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만 생각하면 잠에서 깰 정도로 괴롭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 고 김정근(1931~1984)씨는 한국전 참전용사다. 전쟁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인 1949년 3월 자원입대한 김씨는 육군 제 6사단 19연대 소속 위생병으로 전쟁을 맞았다.

한국전쟁은 김씨의 영혼과 육신에 무수한 생채기를 남겼다.

1950년 10월 평안북도 태평동 전투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된 김씨는 왼쪽 다리에 파편상을 입고 악전고투 끝에 포위망을 돌파했지만 부상 부위에 동상을 입게 된다. 이듬해 1월에는 경기도 포천에서 아군의 방어선이 붕괴되자 뒤처진 부상병 30여 명과 부하 위생병을 인솔해 3일 만에 부대로 복귀하지만 왼쪽 귀와 왼쪽 손, 발에 극심한 동상이 걸린다.

이때 입은 동상이 악화되자 김씨는 서울 제36 육군병원을 경유해서 51년 11월 초 부산 제 3 육군병원 토성동 분원으로 후송된다. 이곳에서 김씨는 군의관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동상이 심해서 이미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체조 선수로 활약했을 정도로 건장했던 김씨는 한쪽 다리를 잘라내야 한다는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한다. 고민하던 김씨는 탈영, 민간 병원에서 집중적인 동상 치료를 받은 후 3주 만에 군 병원으로 복귀했다.

서류상으로는 이미 제대... 청원해서 22개월 더 군 복무

군 복무 당시 고 김정근씨의 모습, 그는 6사단 19연대 소속 위생병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다.
▲ 고 김정근씨 군 복무 당시 고 김정근씨의 모습, 그는 6사단 19연대 소속 위생병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다.
ⓒ 김병옥

관련사진보기

김씨가 병사들의 인사를 관할하던 육군본부 부관감실의 호출을 받은 것은 1952년 8월경, 그 자리에서 김씨는 서류상 이미 자신이 제대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당초 동상을 입은 왼쪽 다리 절단 수술을 하기로 되어 있던 51년 11월 5일자로 부상으로 인한 명예제대 특명(제 3631호)이 떨어졌던 것.

하지만 김씨는 생사의 기로를 함께 넘나들었던 전우들을 두고 혼자 군문(軍門)을 떠날 수는 없었다. 간곡히 재복무를 청원한 김씨는 그 후로도 22개월 더 군복무를 하고 1954년 6월 1일 일등중사(현 하사)로 만기제대를 한다. 5년 4개월에 걸친 긴 복무였다.

제대 후에도 부상 후유증은 끊임없이 김씨를 괴롭혔다.

특히 겨울철만 되면 동상을 입었던 팔, 다리에는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전국에서 용하다는 의사를 찾아 치료를 받았지만 증세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동안 청주에서 운수업을 하고 있던 집안의 가세도 점차 기울었다.

10년 동안 병마와 싸워오던 김씨는 63년 9월 서울 성모병원에서 결국 왼쪽 다리를 절단하게 된다. 이후 김씨의 삶은 더욱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병옥씨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 아버지 고 김정근씨가 불편한 몸으로 참석했다.
 병옥씨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 아버지 고 김정근씨가 불편한 몸으로 참석했다.
ⓒ 김병옥

관련사진보기


결혼을 하고 병옥씨 등 1남 1녀를 낳았지만, 몸도 성치 않은 김씨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었다. 다리를 잘라낸 후 김씨는 평생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했다. 병옥씨는 이런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행상과 막노동 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했다고 말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김씨를 더욱 괴롭혔다. 그러다 김씨는 주변 사람으로부터 원호대상자 신청을 해보라는 조언을 듣는다. 다리를 잘라낼 수밖에 없었던 게 바로 전투에서 입은 파편상과 동상 때문이라는 것을 입증만 한다면 국가의 생계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김씨는 원호처(현 국가보훈처)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이 때가 1969년의 일이다.

육군-원호처 "원호 대상 아니다"

군 복무시 자신에 대한 치료 기록, 특히 다리를 잘라내서 더 이상 군 복무를 수행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내려진 명예제대 특명 기록이 남아 있다면 원호대상자로 지정받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김씨는 어처구니 없는 답변을 듣게 된다. 김씨의 군 복무 기록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신청서 접수 자체가 거부된 것.

이후 김씨는 자신의 군 복무 기록을 찾아달라는 진정서를 육군에 제출했지만, '김씨는 부상으로 인한 명예제대가 아니라 만기제대를 했으므로 원호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회신을 받았다. 또한 다리 절단과 군 복무 중 입은 동상과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 육군이 내린 결론이었다.

이 때부터 김씨의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목발을 짚고 절뚝이면서 집을 나서시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통신도 열악하고 교통도 불편했던 70년대, 아버지는 당신의 부상 사실을 입증해 줄 전우들을 찾아 불편한 몸으로 전국을 헤매셨습니다. 지금도 그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아버지에겐 전쟁이 끝나지 않으셨던 셈이죠."

김씨는 여러 해 동안 전우들과 상관, 군의관들을 수소문해 진술서를 받아 자신을 원호대상자로 심사해 줄 것을 청원하는 진정서를 여러 차례 제출했지만, 그 때마다 번번이 기각 당했다.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의 군번(5101150)과 관련된 의무 기록이 실제의 부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51년 1월 포천지역에서 입은 부상은 그 전해인 50년 10월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다가 왼쪽 하퇴부에 파편상을 입고, 동상이 악화된 것이지만 남아있는 의료기록에는 좌측대퇴부에 부상당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 51년 6월에는 실제 군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지만 입원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 등 자신의 의료기록으로 보기에는 의문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생전에 김씨는 당시 같은 연대에 똑같은 이름을 가진 병사가 자신을 포함해서 모두 3명 있었다는 점을 들어 이 같은 오류가 생겼을 것이라고 추측했다고 한다. 실제 김씨의 군번(5101150)과 의료기록의 군번(5150484)이 다르다는 점이 김씨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이 같은 김씨의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호대상자 심사 청원 번번이 기각

결국 지난 8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김씨가 여러 차례 낸 원호대상자 심사 청원은 그 때마다 원호처의 전공상 심의에서 번번이 기각됐다.

"아버지는 10년 넘게 육군본부와 원호처를 상대로 여러 차례 진정서를 내셨어요. 그 기록만 수백페이지입니다. 돌아가시기 직전 아버지는 당신의 군 기록이 잘못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런 엉터리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의아해하셨어요."

병옥씨는 아버지가 이렇듯 힘겨운 싸움을 하는 동안 식구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극빈자 수준의 삶을 이어가야 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을 정도로 지독한 가난이었다.

"정말 이를 악물고 살았어요. 아버지가 눈을 감으시면서 아무한테도 손 벌리지 말고 악착 같이 살라고 하신 말씀대로, 공사판 십장으로 일하면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병옥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먹고살기 바빠 한동안 아버지의 일을 잊고 살았다고 말했다. 그가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난 2010년, "조국을 위한 희생은 시공을 초월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나서였다.

그 해 9월 서울 북부 보훈지청에 이미 고인이 된 아버지의 서류를 접수한 후 올 1월 받은 회신에서 병옥씨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보훈처가 서울지방병무청에 병역사항을 조회하면서 발급된 병적증명서에 그동안 명예제대증 제 3631호의 성명과 생년월일이 그동안 아버지 김씨가 아닌 김OO씨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육군본부에서 보내 온 회신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4월 13일 육군본부 병적관리과는 병옥씨가 제기한 민원에 대한 회신에서 아버지 김씨의 군번인 5101150의 성명과 생년월일이 2010년 12월 22일자로 김OO씨에서 아버지 김씨로 정정되었다고 밝혔다.

명예제대 특명-군번 일치하는 동명이인이 있었다?

병옥씨는 김OO씨가 아버지의 군번과 명예제대 특명을 도용해 그동안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아온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보훈처와 육군본부의 문서를 종합하면 김OO씨는 1934년생으로 한국전쟁 직후인 50년 8월 22일 입대해 51년 11월 5일 명예제대 한 것으로 나와있다.

지난 4월 13일 육군본부 병적관리과에서 병옥씨에게 보낸 민원 회신문에는 군번 5101150의 성명과 생년월일이 2010년 12월 22일자로 김OO씨에서 김정근씨로 정정되었다고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복무기간은 여전히 김정근씨의 것이 아닌 김OO씨의 것으로 남아 있다.
▲ 육군본부 회신 지난 4월 13일 육군본부 병적관리과에서 병옥씨에게 보낸 민원 회신문에는 군번 5101150의 성명과 생년월일이 2010년 12월 22일자로 김OO씨에서 김정근씨로 정정되었다고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복무기간은 여전히 김정근씨의 것이 아닌 김OO씨의 것으로 남아 있다.
ⓒ 김병옥

관련사진보기


뿐만 아니라 병옥씨는 자신이 민원을 제기한 후 보훈처가 이미 이런 사실을 파악했으면서도, 문제를 바로잡기는커녕 쉬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40년 동안 없다던 아버지의 군 기록과 의무기록들이 나왔습니다. 아버지의 군번과 명예제대 특명은 제가 민원을 제기한 이후 바로잡혔습니다. 이것을 행정 착오라고 한다면 누가 이해할 수 있겠어요? 아버지의 군번과 명예제대 특명을 이용해 유공자 혜택을 받은 김OO씨가 현재도 생존해 있고 그의 기록이 의정부 보훈지청에 있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도 공무원이란 사람들이 '법적으로는 어쩔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변명만 하고 있으니 분통이 터집니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불구가 된 아버지는 수십 년 동안 자신의 군 기록을 바로 잡아달라고 그렇게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는데, 이제 와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고요? 아버지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군번, 명예제대 특명 도용 의혹을 제기한 김병옥씨
▲ 김병옥씨 돌아가신 아버지의 군번, 명예제대 특명 도용 의혹을 제기한 김병옥씨
ⓒ 김도균

관련사진보기


국가보훈처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김병옥씨가 자신의 차량에 부착하고 다니는 손팻말.
▲ 국가유공자 만들기 프로젝트? 국가보훈처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김병옥씨가 자신의 차량에 부착하고 다니는 손팻말.
ⓒ 김병옥

관련사진보기


병옥씨는 소송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실제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병옥씨에게 돌아갈 혜택은 거의 없다. 이미 아버지는 돌아가신데다 국가유공자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학비 및 등록금 지원, 취업 혜택 등도 병옥씨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런데도 병옥씨는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군 기록이 어떤 이유로 그동안 잘못되어 있었는지, 그 과정에 부정이 개입한 의혹은 없는지 명백히 밝혀지지 않는다면  저 세상에 계신 아버지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하실 것 같다는 것이 병옥씨의 생각이다.

병옥씨는 "지난 3월 청와대 홈페이지에 진실을 밝혀달라는 민원을 제기했지만, '관련 내용을 보훈처에 이첩해서 조사 중'이라는 답변만 받았다"고 말했다.

보훈처 "이중 부여된 군번 때문에 발생한 착오"

한편 국가보훈처는 <오마이뉴스>가 관련 내용에 대해 질의하자 "육군에서 김OO씨와 김정근씨에게 동일한 군번을 부여하는 바람에 생긴 착오 같다"며 "김OO씨가 김정근씨의 명의를 도용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입대 날짜가 1년 6개월 이상 차이가 나는데 군번이 같을 수 있는지, 그리고 같은 날짜(51년 11월 5일)에 두 사람이 모두 부상으로 인한 명예제대 특명을 받는다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 당황스럽다. 저희로서도 이런 사례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애초 착오가 생기게 된 원인으로 군 병원에 입원했던 김OO씨의 병상일지를 기록할 때 김정근씨의 군번을 잘못 적어 넣는 바람에 군번이 이중부여된 것이라는 육군 측의 설명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로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을 했던 김OO씨가 해방 후 김정근이라는 이름으로 입대를 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즉, 군 병원에서 입원중인 부상병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동명이인의 군번을 착오로 잘못 기재하는 바람에 이런 혼선이 생겼다는 것.

지난 2002년 전상자로 국가유공자 신청을 한 김OO씨는 2010년 현재의 이름으로 병적정정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보훈처는 "전상 여부를 심의할 때 병적 증명서나 병원 진단서뿐 아니라 육군본부 측에 관련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여러 기록들을 요청한다"며 "서류 조작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태그:#국가유공자, #국가보훈처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8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