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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처럼 현수막을 사랑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 지나치게 맹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수막이 없으면 홍보가 아예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선거 때가 되면 그 정도가 더 지나치다.

선거를 한 번 치를 때마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현수막들이 거리를 뒤덮는 광경을 보게 된다. 결코 낯선 풍경은 아니다. 하지만 선거를 치른다고 해서 굳이 그렇게까지 많은 현수막들을 내걸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선거가 끝난 뒤에는 다시 당선사례와 축하 현수막이 내걸리고, 선거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또 그 나름대로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현수막을 내건다. 선거가 끝났어도 거리에서 현수막들이 모두 사라지기까지는 또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선거를 치르는 데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선거 때가 아니더라도 거리에는 항상 현수막이 넘쳐 난다. 거리를 지나다니다가 현수막 때문에 불편을 겪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거기에다가 선거용 현수막들이 거리에 죽 늘어서 있는 걸 보게 되면,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든다. 평상시 사용하는 현수막도 문제인데, 거기에 선거 홍보물로 꼭 그렇게까지 많은 현수막을 사용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소각 과정에서 다이옥신 등을 배출하는 폐현수막

춘천 선거구 총선 출마자들이 총선이 끝난 후 내건 현수막들.
 춘천 선거구 총선 출마자들이 총선이 끝난 후 내건 현수막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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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여러 가지다. 보행자들의 눈을 어지럽히고 거리 미관을 해치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이들 현수막들이 용도 폐기가 돼서 거리에서 사라질 때 발생한다.

일정 시간이 지나 더 이상 사용할 필요가 없어진 현수막은 모두 버려진다. 버려진 현수막은 대부분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소각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나 다이옥신 같은 환경오염물질을 배출한다.

이 때문에 선거가 있을 때마다 환경단체 등에서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지만, 그것도 그때뿐이다. 그 후로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총선 기간 전국의 후보자들에게 교부된 선거 현수막이 공식적으로 1만5000여 개에 달한다.

여기에 총선이 끝난 후 당선자들과 낙선자들이 내건 현수막에다, 후보자 당시 그들이 자신의 선거 사무실과 후원회 사무실 등에 걸었던 현수막까지 더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그리고 당선자들과 관련이 있는 단체들에서 내건 당선 축하 현수막도 그 수가 적지 않다.

선거가 끝났다고 해서 현수막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선관위에서는 선거가 끝난 후, 당선자 또는 낙선자들이 내걸 수 있는 인사용 현수막을 읍·면·동 별로 1매씩 게시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당선 축하 현수막에는 별다른 제한이 없다.

춘천 선거구 김진태 당선자의 당선을 축하하는 현수막들. 한 장소에 두 개나 걸려 있다.
 춘천 선거구 김진태 당선자의 당선을 축하하는 현수막들. 한 장소에 두 개나 걸려 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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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모든 현수막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지자체가 해결해야 할 몫이다. 지자체마다 폐현수막을 처리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러 지자체에서 현수막을 재활용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현수막을 아무리 열심히 재활용한다고 해도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현수막을 다 감당할 수가 없고, 그 현수막을 수거해 오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방치할 수도 없는 일, 폐현수막을 재활용하는 데 발벗고 나선 지자체도 없지 않다.

현수막 재활용에 노인 일자리 창출까지 1석2조 활용법

춘천시니어클럽 작업장 마당에 부려진 폐현수막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춘천시니어클럽 작업장 마당에 부려진 폐현수막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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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서는 2010년부터 폐현수막을 이용해 '쓰레기 분리수거용 마대자루'를 만드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춘천시는 이 사업을 춘천시니어클럽에 위탁하고 있다. 이 춘천시니어클럽에서는 올해 5만8000포대의 마대자루를 제작해 납품할 예정이다.

이 사업은 노인 일자리 창출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현재 춘천시에서는 40여 명의 노인들이 일주일에 이틀씩 돌아가면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폐현수막이 사업장에 들어오면 먼저 현수막 양쪽 끝 막대기를 제거해 천 조각을 분리해낸다.

그 중에 때가 묻어 더러워진 현수막은 깨끗하게 세탁한다. 그러고 나서 현수막 조각을 재봉기계로 이어 붙여 하나의 마대자루를 제작한다. 총선이 끝난 지 얼마 안 돼 아직 선거용 현수막은 수거되지 않았다. 이 현수막들이 들어오면 일감은 더 늘어난다.

폐현수막에서 각목을 제거하고 있는 장면.
 폐현수막에서 각목을 제거하고 있는 장면.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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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도 그렇지만 현수막을 만드는 데 사용한 각목도 처치 곤란이다. 이 각목은 더러 농가에서 고춧대를 지지하는 용도로 가져간다. 하지만, 그 외 별로 쓸모가 없다. 사업장 한쪽에, 이 나무 막대기를 가져가도 좋다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기왕에 버릴 현수막이라면, 이런 재활용 사업체를 통해 한 번이라도 더 사용할 수 있게 만든 뒤에 버리는 게 좋다. 춘천시는 그나마 나름의 대책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춘천시 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폐현수막을 재활용하기 위해 애쓰는 지자체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효율성이 떨어지는 문제, 인력을 사용하기 어려운 문제 때문에 난항을 겪고 있다. 근본적인 대책은 현수막 사용을 줄이는 것이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당장에 현수막 사용을 줄일 수 없다면, 현수막을 여러 용도로 재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선거를 '깨끗하게' 치르기로 작정한 후보들이라면, 먼저 현수막부터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선거는 현수막에 지나치게 의존해 있다. 당연히 필요 이상의 물량을 동원하고 있다. 그러면서 거리는 물론, 우리가 숨쉬는 공기마저 지저분하게 만들고 있다.

선거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그런데 이런 식의 선거를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다음 선거에서는 현수막 사용에 좀더 엄격한 제약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수막으로 시작해 현수막으로 끝나는 선거는 이제 이쯤에서 그만둘 때도 됐다.


태그:#현수막, #폐현수막, #재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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