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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예요?"

언젠가 이런 평범한 질문에 당황한 적이 있다. 주로 사회과학 서적을 읽다 보니 문학작품을 읽은 지 꽤 오래됐기 때문이다. 사회과학 서적의 저자도 작가일 수 있지만, 역시 작가라는 호칭에는 소설가나 시인이 어울리는 것 같아 잠깐 고민했다. 고민 끝에 "좋아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읽는 작가"로 김영하와 박민규, 박현욱을 꼽았다.

그중에서도 김영하 작품을 가장 오랫동안, 많이 읽어왔다. 소설은 물론이고 산문집 <포스트잇>, 영화 에세이 <굴비낚시>, 미니홈피의 글을 묶은 <랄랄라 하우스>까지 종료를 가리지 않고 그의 글을 읽었다.

사실 김영하의 글이 늘 좋지는 않았다. 특히 <퀴즈쇼>는 무척 실망스러워서 그의 책을 굳이 읽어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그런데도 결국 그의 초기 단편소설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를 집었다. 김영하를 딱히 좋아하지도 않고, 글이 늘 만족스러운 것도 아닌데 왜 자꾸 그의 글을 읽는 걸까. 책장을 넘기며 새삼스레 그 이유를 생각했고, 마침내 답을 찾았다.

<빛의 제국>이 보여준 냉소... "이념 따윈 아무것도 아냐"

<빛의 제국> 표지.
 <빛의 제국> 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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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품은 대체로 냉소적이다. 내 주변에서 김영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그 점 때문에 김영하를 꺼렸다. 김영하의 냉소주의가 잘 드러난 작품이 <빛의 제국>이다.

<빛의 제국>은 남파간첩 김기영이 갑작스레 평양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으면서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을 담은 장편소설이다. 그러나 기영을 비롯한 남파 간첩들은 이미 남한에 너무 잘 적응해 지금의 삶을 유지하려 발버둥 친다. 기영은 "제3세계 인민을 권총으로 쏴 죽이는 뫼르소의 이야기를 사랑하고, 극우파 게이 미시마 유키오의 미문에 밑줄을 긋는 사람"이 되어 있다. 130연락소에서 함께 있었던 이필은 심지어 이런 이야기까지 한다.

"혹시 날 매수할 생각이야? 그럴 거라면 난 생각 있어. 돈, 그래 돈에라면 씨팔, 나는 얼마든지 무릎을 꿇을 수 있어. 진심이야."
                                                             
그런가 하면 과거 학생운동을 했던 기영의 아내 마리와 대학후배 소지현 역시 모두 과거와는 관계없는 삶을 살아간다. 마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만약 다시 스무 살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녀는 횡단보도 앞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아마... 그녀는 너무 빨리 떠오른 결론에 조금 놀랐다. 학생운동 같은 건 하지 않았을 거야." - <빛의 제국> 172p

이처럼 <빛의 제국>에서 주인공 기영을 비롯해 대부분의 등장 인물들은 이념 - 이념의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 에 헌신했던 과거를 부정하거나 잊고 살아간다. 그래서 <빛의 제국>을 읽는 내내 누군가 귀에 대고 "현실 앞에서 이념 따윈 아무 것도 아냐"라고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생각을 좋아하지도 않고 동의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빛의 제국>이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실을 부분적으로나마 드러내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화를 이끌었다는 486세대도 상당수가 나이를 먹으며 현실과 타협하고 기득권이 됐다. 진보적인 학부모도 자기 자식에게는 명문대를 가라고 하는 것처럼 현실 앞에서 이념이 자주 무너져 내리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김영하의 냉소주의는 그런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딱 거기까지였다. 그의 냉소주의에 묘하게 끌리는 것은 그것이 진실의 조각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그저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냉소 뒤에 숨은 나약함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책표지.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책표지.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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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에 실린 첫 번째 작품은 '사진관 살인사건'이다. 6년 전 처음 접한 김영하의 작품을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사진관 살인사건' 역시 김영하의 작품답게 냉소적이다. '사진관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주인공은 형사로서 세상의 수많은 더러운 사건을 접하며 냉소주의에 빠져든다.

"이곳은 세상의 밑바닥이다. 쓰레기 하치장이다. 이곳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쓰레기로 변한다. 나는 그 쓰레기들을 치우며 산다. 쓰레기를 치우다 보면 모든 게 쓰레기로 보인다. 아름다운 사랑? 그런 건 없다. 정액으로 칠갑한 치정 사건이거나 그도 아니면 여고생의 일기장에나 들어 있을 치기 어린 사랑이다." -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17p

'흡혈귀'에 등장하는 한 시인 역시 냉소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생을 철저히 부정한다. 흡혈귀로 영겁의 시간을 살아왔을 그에게 삶이란 "원심 분리돼야 마땅할 불순물"에 불과하다. 그는 "인생을 흉내 내는 영화는 인생보다 더 지겹다"며 괴이한 컬트영화를 고집하고, "당신의 시는 왜 그리 죽음을 찬미하냐"는 아내의 질문에 "삶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라고 대꾸한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따스한 체온을 갈구하고 타인과의 소통을 원한다. 흡혈귀 시인은 "누군가를 안고 있으면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읊조린다.

형사는 지금은 강간, 살인 사건의 조서를 쓰고 있지만, 한때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이제 와서는 사치스러운 생각이라 느끼면서도 그는 여전히 아내와의 사랑 이야기를 소설로 쓸 수 있을까 고민해본다.

그래서 그들의 냉소는 생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이 차갑고 냉혹한 현실에서 자연스럽게 학습한 것이며, 김영하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냉소 뒤에는 연약함이 숨겨져 있다.

냉소주의와 나약함, 두 개의 축

오랫동안 김영하 책을 읽으면서도 항상 냉소주의만을 떠올렸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를 보면서 새삼스레 그 뒤에 숨은 나약함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김영하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왜 계속 읽고 있는지를 새삼스레 깨달았다.

냉소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나약한, 이중적인 등장 인물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 무관심한 듯 냉소적으로 지껄이면서도 사실은 타인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모습에서 나는 내 모습을 봤다. 물론 김영하의 작품만큼 극적이지는 않지만, 그의 작품 어딘가에서 나 자신의 모습이 흐릿하게 비쳤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의 냉소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처럼 허세로 나타나기도 하고, <퀴즈쇼>처럼 적잖은 실망을 안길 때도 있지만 그의 작품을 계속 읽은 것이다.

그건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차가운 현실 앞에 냉소적인 척하면서도 사실은 나약한 마음 때문에 상처받고, 그 상처를 숨기려 더욱 냉소적인 척 하는 모습. 좋아하지는 않지만 외면할 수도 없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그래서 "좋아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읽는 작가"의 목록에서 김영하란 이름은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 같다.


빛의 제국 (교보 특별판)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2010)


태그:#김영하, #빛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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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2024.3 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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