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부의 수상쩍은 침묵

동 협의회/부녀회까지 동원됐었다
▲ G20 정상회의의 위용 동 협의회/부녀회까지 동원됐었다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정부가 수상하다. 26일부터 이틀간 진행될 핵안보정상회의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너무 조용하기 때문이다. 2년 전 G20정상회의가 열릴 때는 홍보비로 약 1000억을 들여 동네 곳곳에 현수막을 걸고, 버스정류장마다 포스터를 붙이고, TV만 틀면 G20과 관련된 광고가 나오게 하는 등 야단법석을 떨더니 이번에는 어찌 된 일인지 조용하기만 하다.

물론 정부가 조용하다는 건 순전히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정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홍보비를 지출하고 있는데 방송3사 노조의 파업 때문에, 그리고 4월 총선 때문에 내가 그만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송국들의 경우 기자도 모자란 판에 어찌 핵안보정상회의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겠으며, 지역단체의 경우 총선 관련 현수막 걸 자리도 부족한데 어찌 다른 현수막을 붙일 수 있겠는가. 그러니 한낱 소시민이 체감하기 어려울 수밖에.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상하다. 무슨 사소한 행사만 하더라도 그에 따른 경제효과를 운운하던 정부 아니던가. 고작 20개 국가의 정상이 모여도 그 경제효과를 적게는 20조, 크게는 450조까지 뻥튀기하며 호연지기를 자랑했던 그들.

그런데 그들이 이번에는 침묵 중이다. G20의 두 배가 훌쩍 넘는 정상들이 참여하는 만큼 국제적 인지도도 더 높은 핵안보정상회의인데, 그들의 계산대로라면 적어도 500조 이상은 부르짖을 수 있는 좋은 건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잠자코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정부는 이전과 달리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일까?

효용성이 사라진 핵안보정상회의

얼마나 많은 이들이 들어갈까?
▲ 핵안보정상회의 홈페이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들어갈까?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G20정상회의와 핵안보정상회의에 대한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는 그 속내가 빤하다.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자라면 정부가 핵안보정상회의를 4월 총선에 이용하려다가 실패했음을 쉽게 추론해 낼 수 있다. 4월 총선의 최고 이슈인 'MB 정부 심판'을 핵안보정상회의로 물타기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사실 이번 핵안보정상회의는 4월 총선을 맞아 현 정권이 마지막으로 기획한 회심의 일타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번 회의를 명분으로 북한의 김정일을 남한으로 초대하여, 서울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한반도 핵 폐기와 남북평화 문제를 논의하고자 기획했을 것이다. 그동안의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고 한반도의 지도자로서 MB의 위상을 한껏 드높이는 최고의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다.

어쨌든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북한은 2010년 6.2 지방선거 때 천안함 사건을 터뜨려 MB를 도와준, 민간인 사찰 문제가 불거졌을 때 연평도 포격으로 MB를 살려준, 이밖에도 농협해킹이나 디도스 공격 등 정부가 할 말이 없을 때 기꺼이 배후 세력이 되어 현 정부를 위기에서 구원해 준 은인 아니던가. 그러니 이번에도 북한이 도와주리라 굳게 믿었을 수밖에.

그런데 아뿔사, 북한이 제대로 '가카'에게 '빅엿'을 날리고 말았다. 작년 12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것이다. 1994년 남북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김일성 주석이 사망함에 따라 오히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천박한 분단의식이 드러났듯이 ,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은 현 정권의 남북관계에 대한 철학의 부재를 다시금 각인시켜주었다. 당장 정부는 김정일의 사후 '조문문제' 등을 가지고 우왕좌왕하다가 지리멸렬하게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가. 

상황이 이러하니 현 정부에게 핵안보정상회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차피 총선용으로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서울로 내려와 함께 이벤트를 벌여야 하는데 그 가능성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다. 정부가 그토록 믿었던 북한은 오히려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맞아 광명성3호를 쏜다며 핵안보정상회의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있는 중이다. 전 세계의 핵을 이용한 테러를 막겠노라며 서울로 세계 각국의 정상들을 초대했는데, 그 앞마당에 북한이 핵무기가 의심되는 축포를 쏘아 올림으로써 그 회의가 실제로 전혀 의미 없음을 강변하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입장으로는 6자회담을 어서 열자는 미국에 대한 압박이겠지만, 어쨌든 이로써 핵안보정상회의는 MB에게 오히려 수치스러운 외교 실패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왜 교통을 통제하는가?

불쾌하기만 하다
▲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안내문 불쾌하기만 하다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바로 코앞의 북한 핵문제 하나도 풀지 못하는 핵안보정상회의와 그 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할 이유조차 잃어버린 MB 정권. 그러나 내가 새삼 이 문제에 주목하는 것은 회의가 이와 같이 쓸모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이를 계기로 서민들의 삶에 불편을 주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과연 현재 많은 사람들이 핵안보정상회의를 체감하는 것은 무엇을 통해서일까? 아마도 그것은 회의 개최에 대한 자긍심 대신, 그날 교통을 통제하겠다는 경찰의 공지 혹은 관공서의 공지에 대한 짜증을 통해서일 것이다. 운전을 하려 해도, 버스를 타려고 해도, 전철에 오르려 해도 마주치는 교통 통제에 대한 안내문들.

도대체 왜 정부는 자신들도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회의를 위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 서민들의 손과 발을 묶으려 드는가. 비록 '자율'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어쨌든 관과 관련된 사람들은 저 지시를 따라야 하지 않는가.

역시 마주치는 안내문
▲ 버스를 오르려 해도 역시 마주치는 안내문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정부가 차량2부제를 실시하고자 한다면 그 제도를 시행해야만 하는 필요성에 대해 설득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이제 국민들은 과거 타국의 지도자가 지나간다고 동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한 명 한 명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모두가 그 삶의 주인이며, 따라서 그 모두를 설득시킬 수 있는 담론이 필요하다. 2012년 대한민국의 서울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2012년의 평양 인민들처럼 대오를 지어 환영의 손수건을 흔들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물론 우리 '가카'는 그런 풍경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핵안보정상회의가 앞으로 5일 남짓 남았다. 많은 손님들을 불러놓고 사고가 일어나면 예의가 아니니 조심은 해야겠지만, 정부는 합리적인 설득 없이 행해지는 과도한 통제는 지양하기 바란다. 어차피 당신들도 이 회의를 꼭 열어야 하는지 긴가민가 하지 않는가.


태그:#핵안보정상회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