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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가운데에는 '미장아빔(Mise en abym)'이라는 기법이 있다. 하나의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를 담는 기법이다. 회화를 예로 들어보자. 네덜란드 화가 얀 반 에이크의 그림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을 보면 한가운데에 동그란 거울이 있다. 한데 그 거울을 자세히 살펴보면 두 손을 맞잡은 두 남녀의 모습이 거울 안에 조그맣게 있다. 현실의 두 남녀가 거울 안에 한 번 더 있는 셈이다.

 

초연작 아륵과 도실의 사랑, 조선시대 걸쳐 일제강정기에도 못 이뤄

 

'미장아빔'은 이야기 안의 이야기를 담아 냄으로 이야기가 이야기를 반영하는 구조를 갖는다. 이는 오페라 <연서>의 초연 구조와 맞닿는다. 조선시대, 비단 장인 아륵은 조선 최고의 기생인 도실을 사랑한다. 하지만 도실에게 원한을 품은 재필이 불을 지르고, 도실과 함께 뛰어든다. 꼼짝없이 불에 타 죽을 위기에 놓인 도실, 하지만 아륵이 도실을 연서로 감싸 지켜 줌으로 목숨을 구한다. 하나 아륵은 불구덩이에 갇히고 유명을 달리 한다. 환생한 도실은 다음 생애인 일제 강점기에도 아륵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아륵과 도실의 사랑은 번번이 맺어지지 못한다. 이는 조선시대라는 한 시대에만 국한되지 않고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의 반복을 통해 가슴 아픈 사랑이 반복된다. 아륵과 도실의 맺어지지 못하는 애틋한 사랑은 반복됨으로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속 거울처럼 이야기가 이야기를 반영한다. 이야기의 반복을 통해 심연이 이뤄진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초연과는 달리 '미장아빔'이 형성되지 않는다. 물론 이번에도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만들어 진다. 하지만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고 해서 무조건 '미장아빔'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이번 공연은 현재 속 아륵과 도실의 이야기가 조선시대 아륵과 도실의 사랑을 반복 형성하는 구조가 아니다.

 

조선시대 속 아륵과 도실의 사랑은 이뤄지지 못하지만 현재라는 시간 속에선 최종적으로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진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구조지만 동일한 구조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 다른 구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때문에 이번 공연을 초연처럼 '미장아빔'의 구조로 바라보기는 어렵다.

 

이번엔 라캉의 <정신분석>으로 해석... '상상계'로 현재는?

 

도리어 이번 공연은 라캉의 <정신분석>으로 분석이 가능하다. 조선시대에서 이뤄지지 못한 사랑은 현재에서 맺어진다. 아륵과 도실의 사랑이 맺어지는 현재를 라캉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상상계'다. 조선시대에는 아륵이 재필의 칼을 맞아 숨을 거둠으로 도실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이 다른 시대인 현재를 통해 이뤄진다는 건, 조선에서는 이루지 못하던 사랑이 '상상계'인 현재를 통해 이뤄진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다.

 

관객의 입장으로 볼 때엔 '미장아빔'의 구조였던 초연보다는 라캉의 <정신분석> 구조를 지닌 이번 공연에 공감대를 형성할 확률이 크다. 비극보다 희극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심리적인 측면도 있지만, 두 남녀의 사랑이 맺어지길 고대하는 관객의 염원이 라캉의 '상상계'인 현재를 통해 구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에 접어들어 빠르게 진행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기계 장치의 신의 출현과도 같은 급작스러운 결말에 대해서는 관객의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릴 듯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자의 개인블로그 http://olpost.com/v/4453376, http://blog.daum.net/js7keien, http://orangejenina.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연서> (2012) / 오페라 기간 2012.03.15 ~ 2012.03.18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출연: 강혜정, 나승서, 엄성화, 김정미, 한경석, 김재일, 최웅조, 전준한  


태그:#연서, #오페라, #서울시오페라단, #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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