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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고불총림 백양사 수산 큰스님 이운행렬
 고불총림 백양사 수산 큰스님 이운행렬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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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총림 백양사 임회 위원스님들과 총림 대중스님들께 고합니다. 노납이 지병이 깊어 이제 세연이 얼마 안남은 듯합니다. -중략-

노납이 병이 깊어진지 1년이 다되어 가니 기력은 소진될대로 되었고 낡은 수레처럼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는 상황에서, 총림의 현실과 앞날을 생각하니 만암, 서옹 양대종사님의 원력과 유훈이 떠올라 병석에 편히 누워 있지도 못합니다. -중략-

노납이 했어야 할 일들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후학 스님들에게 짐으로 남겨놓는 것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총림 대중스님들은 총림 발전을 위해서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대중화합이 제일 중요함을 깊이 새겨서, 부지런히 수행정진에 힘써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3월 7일 입적하셔서 11일, 고불총림 백양사에서 영결식을 봉행한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수산지종 큰스님이 지난 2월에 하셨다는 유시문(諭示文) 중 일부입니다.

물꼬막이 스님의 마지막 살포질

'살포'가 뭔가를 선뜻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요즘처럼 농지가 정리되어 있지 않아 천수(天水)에 의존해 농사를 짓던 옛날, 농촌마다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던 싸움 중 하나는 물싸움이었고, 물싸움을 결국 '물꼬싸움' 이었습니다.

당신 스스로 물코막이로 지칭하던 삶을 사신 수산 큰스님 생전 모습
 당신 스스로 물코막이로 지칭하던 삶을 사신 수산 큰스님 생전 모습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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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에 난 작은 물꼬는 물을 가두거나 물이 흐르는 양을 조절하는 간단한 역할이지만 이 물꼬는 어떻게 조작하느냐에 따라 논농사의 흉풍이 결정됩니다. 위쪽에 있는 논에서 물꼬를 꼭 막아버리면 아래쪽 논은 아예 모내기를 할 수 없거나 모가 바짝 타들어 갈 정도로 가물어 버립니다.

반대로 장마철에 위쪽에 있는 논에서 물꼬를 확 열어버리면 아래쪽에 있는 논은 홍수가 져 다 논둑이 터지거나 모들이 떠내려갈 것입니다. 그러기에 물꼬는 내가 짓고 있는 농사의 풍흉을 좌우하기도 하지만 이웃 농사에도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조정간이 되기도 합니다. 

물꼬를 막거나 틀 때 사용하는 농기구가 살포입니다. 살포는 긴 자루 끝에 어른 손바닥 크기의 날이 달려있어 물꼬를 적당하게 막거나 트는데 제격입니다.  

수행자로서 당신 스스로의 삶이 '물코막이'였다고 지칭하셨다는 수산큰스님께서 남기신 유시는 이젠 세연을 놓아야 할 입장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살포질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즐비하게 늘어선 조화가 허망할 뿐입니다.
 즐비하게 늘어선 조화가 허망할 뿐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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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화 되다시피 하여 불조와 선대 대종사님들께 얼굴을 들고 있을 수 있을까가 걱정될 정도로 참으로 부끄러워졌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백양사를 위하여 그 후학들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대중화합으로 작금의 현실을 잘 극복해 나가길 바라는 살포질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백양사 가는 길, 휘몰아치는 춘설이 여명 되어 밝아 와

11일, 고불총림 백상사의 아침 여명은 춘설과 함께 밝아 왔습니다. 바람에 실린 춘설은 휘몰아치는 여명이 되어 백양사로 가는 길에 흩뿌립니다. 참 구구절절한 유시문을 떠올리며 백양사로 가는 길을 걸어갑니다. 굵기가 어른 서너 아름쯤은 되는 굵은 갈참나무가 즐비한 숲길을 조용하기만 합니다. 한쪽으로 흐르고 있는 계곡물도 눈을 맞추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존재를 알 수 없을 만큼 조용하기만 합니다. 

백양사 경내도 조용하기만 합니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영결식단이 마련되어 있고, 500여개의 의자가 가지런하게 놓여있습니다. 교육관에 마련된 분향소도 한적하기만 합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니 영결식단에 제물들이 괴어지고 인적이 늘어납니다.

수산 큰스님을 다비할 연화대 연화대 아래에 명당수를 묻고 동서남북 사방에 오방수를 놓았다.
 수산 큰스님을 다비할 연화대 연화대 아래에 명당수를 묻고 동서남북 사방에 오방수를 놓았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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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를 한 바퀴 둘러보고, 연화대가 마련되어 있는 다비장으로 가기위해 돌다리를 건너서 갈참나무 숲길을 걸어갑니다. 호소처럼 와 닿고, 흐느낌처럼 애절하게만 느껴지던 방장 스님의 유시문이 돌다리 사이로 흐르는 물에 두둥실 떠내려갑니다.

서옹 큰스님을 다비한 방식과 같게 꾸려진 연화대

수산스님을 다비할 연화대는 지난 2003년, 서옹 스님을 다비한 성보박물관 앞 공터에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서옹 스님을 다비한 연화대처럼 연꽃장식은 하지 않았지만 연화를 꾸리고 다비를 하는 방식은 같다고 하였습니다.

연화대 아래로, 1m가 조금 넘는 너비에 깊이가 30cm 쯤은 되는 고랑을 교차되도록 파고 그 중앙에 명당수를 묻고, 동서남북 사방에는 오방수를 놓았습니다. 한 아름은 될 것 같은 갈참나무 통나무가 동서방향으로 길게 놓였습니다.

길게 놓인 통나무 가로로 굵기가 조금은 덜한 통나무를 차례대로 놓았습니다. 그 위로 스님의 법구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고, 나무를 쌓거나 둘러서 연화대를 만든 후 멍석과 광목을 덮고 꼭대기에 분홍빛 연꽃 봉오리를 장식해 갈무리를 한 형태입니다.

바람 휘몰아치고, 눈발 날리고.... 날씨가 참으로 성나웠습니다.
 바람 휘몰아치고, 눈발 날리고.... 날씨가 참으로 성나웠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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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단위로 작성된 콘티처럼 영결식은 정확하게 10시에 시작되었습니다. 대웅전 앞마당을 가득 메운 1000여 명의 사람들이 두 손을 모으고 합장 삼배를 올립니다. 명종 5타로 시작된 영결식은 영결법요, 헌다, 헌향, 추도입정 및 육성법문, 영결사, 법어, 추도사, 조사, 헌화 순으로 진행됐습니다.

날씨가 참 상구납습니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눈발까치 흩뿌리고 있으니 이리 옷깃을 여미면 저리로 바람이 들어오고, 저리로 마음을 여미면 이 마음으로 눈발이 휘몰아치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법문을 하고, 저런 조사를 해도 꽁꽁 언 채 시들시들해져 즐비하게 늘어선 조화(弔花)들처럼 바람결에 흩어지는 눈발일 뿐입니다.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겁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탐하던 육신의 칠정을 벗어던진 수산 큰스님이 영결식단 뒤에 허허롭게 누워 계실 뿐입니다.  

영결식장에서 공개 된 '거마비'

영결식을 마무리하며 식사제공 안내가 이어집니다. 이어 스님들 개개인에게는 거마비를 드리지 않고 노스님들의 복지기금으로 사용되도록 관련 단체에 기부 하겠다는 안내가 이어집니다.

1000여명 이 애도하는 가운데 영결식 봉행 돼
 1000여명 이 애도하는 가운데 영결식 봉행 돼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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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처럼 들어왔고, 곁눈질을 하듯 보아왔던 거마비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듣는 순간입니다. 거마비 때문에 생기는 불화를 그동안 몇 번 정도는 지나가는 말처럼 듣거나 보았습니다. 얼마의 거마비나 탁발을 가장해 물품을 강매하기 위해 영결식이 있을 때마다 나타나는 스님 아닌 스님도 보았기에 참신하고 용기 있는 안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결식을 마치니 이운행렬이 시작됩니다. 수산 큰스님을 이운하는 상여는 14분의 스님이 멜 수 있도록 만들어진 나무틀에 법구를 모신 감을 황토색 가사로 덮어 결관을 한 단출한 상여였습니다.

영결식단 좌측 뒤에 모셔져있던 상여가 이운을 시작합니다. 영결식단을 조금 지나 잠시 멈춰서더니 대웅전을 향해 영원한 이별을 고하는 사별의 예를 올립니다. 인로왕번을 앞세운 이운 행렬이 백암산 자락을 휘감아 흘러갑니다.  

펄럭이는 만장이 쌍계루 앞 호수로 텀벙 뛰어듭니다. 바람에 이는 물결을 따라 넘실넘실 춤을 춥니다. 이운행렬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호수에서 실체 없는 형상으로 맺힙니다. 호수에 돌다리 사이로 졸졸거리며 흐르는 물소리를 따라 이운행렬이 움직입니다.

대웅전을 향하여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있는 수산 스님 법구
 대웅전을 향하여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있는 수산 스님 법구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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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참나무 숲길을 지난 이운행렬이 다비장으로 들어섭니다. 만장을 든 사람들이 둥그렇게 둘러서고, 둥그렇게 늘어선 만장들이 불어오는 바람을 빌어 통곡을 하듯이 나부낍니다.

스님의 법구를 모신 연화대에 불타고 있는 25개의 솜방망이가 다가갑니다. 백암산 봉과 자락에 '스님 불 들어갑니다'하고 외치는 소리가 퍼집니다. 연화대를 두르고있던 광목은 후루룩 타버리고, 연화대가 타들어가며 내뿜는 열기는 법연(法煙)이 되어 허공 속으로 꾸역꾸역 피어오릅니다.  

8~9년 사이에 바뀔 수 있는 게 백양사 전통?

7시가 조금 넘어 백양사 종무소에 차려진 장례운영위 상황실엘 들렸습니다. 혹시 밟아야 하는 절차가 있을지 몰라 들렸지만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영결식과 관련한 자료를 얻을 수 있느냐고 했더니 아직 리플렛(leaflet)이 도착하지 않아 줄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영결식 콘티를 작성해 놓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있다고 하며 콘티와 '장의행렬순서'가 적힌 종이를 한 장씩 주었습니다.

아름드리 갈참나무가 빼곡한 길을 따라 다비장으로 향하고 있는 운구행렬
 아름드리 갈참나무가 빼곡한 길을 따라 다비장으로 향하고 있는 운구행렬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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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배부된 안내책자 역시 이와 같았는데, 그런데 지금껏 보아왔던 순서와 용어가 달랐습니다. 이운행렬시 인로왕번 다음으로 서야 할 명정자리에는 만장이 서도록 되어있고 명정은 저 뒤, 독경을 하거나 나무아미타불을 정근하는 법주 뒤 열번째로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명칭 또한 명정이 아닌 명전으로 되어있었습니다. 장의행렬순서까지 물어 보는 건 시간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명전'이 혹시 '명정'의 오타가 아닌지 만을 물어 봤습니다. 그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어른스님들께서 그러시는 데 원래 명전이 맞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오타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수십 번의 영결식, 수십 권의 안내책자를 받아봤고 집으로 돌아와 사전을 찾고 인터넷을 검색해 봤지만 영결식에 부합하는 용어는 명정(銘旌, 장례식에 쓰이는, 붉은 천에 흰 글씨로 죽은 사람의 관직이나 성명(姓名) 따위를 적은 조기(弔旗). 장대에 달아 상여 앞에 들고 가서 널 위에 펴고 묻는다.)이었습니다. 다만 시중에서 판매중인 석문의범에는 새길 명(銘)자가 이름 명(名)으로 명정(名旌)으로 되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다비장으로 들어선 만장행렬
 다비장으로 들어선 만장행렬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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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를 하는 동안 몇몇 스님들께 보편적으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백양사 전통방식'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2003년에 있었던 서옹 큰스님의 영결식이 잘 못 된 것이 아니라면 백양사의 전통은 8~9 년 사이에 순서도 명칭도 바뀔 수 있는 것인지가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  

규모나 방식의 차이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의미가 부여된 절차가 의식기오, 의식은 예이기에 때와 장소가 달리하더라도 유지되거나 지켜져야 할 근간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타들어가는 연화대를 울리던 나무아미타불정근, 비구니 진옥 스님

연화대가 훨훨 불타고 있는 다비장을 뒤로 영결식이 봉행되었던 경내를 다시 찾았습니다. 밀물처럼 물려들었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경내 분위기는 차분합니다. 줄 맞춰 놓았던 의자들은 이미 어디론가 정리되었고, 영결식단에 괴었던 제물들을 철상하는 몇몇 사람만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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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갈참나무가 흐드러진 숲길은 다시 걸어도 좋습니다. 수북하였던 연화대, 연화대를 이루고 있던 등걸나무들이 이리저리 넘어져 있습니다. 바람이 워낙 세게 부니 타들어 가던 나무들이 이렇게 저렇게 넘어지며 엉킨 복잡한 형상입니다.

불꽃이 춤을 춥니다. 이쪽으로 바람이 불면 이리 쏠리고, 저쪽으로 바람이 불면 저쪽으로 열기를 토해내며 훠이훠이 춤을 춥니다. 그러게 춤추는 열기 사이로 지금껏 이어지던 나무아미타불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하는 나무아미타불 소리가 들립니다.

목소리가 나는 곳으로 눈을 돌리니 조금 전과는 달리 비구니 스님이 목탁을 잡고 나무아미타불을 정근하고 있었습니다. 영단이 차려진 천막 아래서 나무아미타불을 정근하던 스님은 '다리 아픈데 나가서 돌면서 하면 안돼요?' 하더니 누가 대답도 하기 전에 연화대 앞으로 나와 나무아미타불을 시작합니다.

나무아미타불정근으로 연화대를 끝까지 지키던 진옥 스님
 나무아미타불정근으로 연화대를 끝까지 지키던 진옥 스님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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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연화대를 한 바퀴 돌며 나무아미타불을 정근하더니 쓰고 계시던 계모자를 벗어 땅바닥으로 휙 하고 던집니다. 그렇게 벗어 던지 모자가 보기 싫었었던지 누군가가 얼른 주워서 정리합니다.  

이때부터 스님의 나무아미타불이 정근이 이어집니다. 확성기 시설을 해놓아도 힘든 것이 나무아미타불 정근인데 목을 울려서 나오는 목소리만으로 백암산 자락을 울려댑니다. 혹시라도 목을 다치지나 않을까를 염려할 정도로 높고 청아한 목소리로 하는 나무아미타불 소리는 이따금 천상에서 올리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스님의 연화대 건너 쪽을 걸으며 쏟아내는 나무아미타불 소리는 아지랑이처럼 타오르는 열기를 건너오며 발생하는 변곡(음파의 변화) 때문인지 가끔은 비몽사몽간을 짐작하게하고 가끔은 이산 저산을 돌고 돌아오는 메아리처럼 들렸습니다.

때로 열기를 건너오는 진옥 스님의 나무아미타불 소리는 천상의 소리처럼 들렸다.
 때로 열기를 건너오는 진옥 스님의 나무아미타불 소리는 천상의 소리처럼 들렸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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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정근을 하던 스님은 어느새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정근하고 있습니다. 비구니 스님이 하시던 나무아미타불정근, 스님이 반복하고 반복하며 이어하던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숫돌에 갈고 있는 칼날처럼 점점 또렷해집니다.

처음엔 목탁만을 치던 스님이 영단 앞 천막 안으로 들어가더니 한 손으론 목탁을 치고 한손으로 요령을 흔들며 이어갑니다. 천상을 울릴 듯한 목소리, 허전한 마음을 파고드는 목탁소리, 가슴속에서 찰랑거리는 요령소리가 어우러지는 오묘한 조화입니다.           

조금은 기이해 보이기조차 한 비구니스님의 나무아미타불과 신묘장구대다라니 정근은 한 시간이 훨씬 넘도록 끊이지 않았습니다. 비구니 스님의 건강을 염려한 다른 스님이 목탁을 건네받아 나무아미타불을 하고 있는 중 그 수산 큰스님과의 인연이  너무 궁금해 잠시 만나 뵈었습니다.

보는 사람이 감복하게 기행적일 정도로 정근에 열중이던 비구니 스님은 울산에 있는 관약사에서 수행 중인 진옥 스님(법납 25년)으로 수산 큰스님으로부터 수계를 받은 제자라고 하였습니다.

인행, 이렇게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것
 인행, 이렇게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것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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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고, 못난 자식이 집안을 지킨다는 말이 있듯이 그 시간 그 자리에서 연화대에 올라 지수화풍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수산 큰스님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그 비구니 스님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임종게와 유시문에 담긴 한국불교계와 백양사를 위해 남긴 마지막 살포질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워낙 불길이 좋아져서 그런지 웬만해서는 타들어가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갈참나무더미 연화대가 어느새 풀썩 주저앉았습니다. 고불총림의 상징이었던 방장, 이 세상 91년을 살며 73년 동안 출가수행자의 삶을 사셨던 수산 큰스님은 어느새 흙이 되고, 물이 되고, 불이 되고, 바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열기에 천화 되어 가는 수산 큰스님
 열기에 천화 되어 가는 수산 큰스님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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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 스님께서는 2012년 3월 7일 오전 8시 44분 전남 영광 불갑사에서 "九十年生是空花 今日離幻歸本家 落花翩翩鵲鳴中 呵呵一翻空劫外(구십년 삶이 이 허공 꽃과 같은지라, 오늘 환을 여의고 본가로 돌아가노라. 꽃잎 떨어져 흩날리며 까치 소리하는 가운데, 하하 웃고 한번 뒤집으니 공겁 밖이로다)"라는 열반송을 남기시며 세연(世緣)을 접으셨습니다.   

수산 큰스님이 남긴 열반송 너머로 '유시문'에 담긴 마지막 당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대중화합이 제일 중요함을 깊이 새겨서, 부지런히 수행정진에 힘써주시길 바란다'는 당부의 말씀이 어른거리는 것은 물꼬역할을 하던 수산 큰스님이 한국 불교계와 백양사를 위해 정말 하고 싶었던 마지막 살포질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태그:#백양사, #수산 큰스님, #고불총림, #다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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