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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도 '집'이다!

며칠 전까지 숙지원에는 60평 가량의 튼튼한 비닐하우스 한 동이 있었다. 이전 땅 주인이 축사로 지었다는데 지붕도 높고 튼튼할 뿐 아니라 지하수 시설까지 갖추어 지난 5년간 아내와 나는 집처럼 사용했다.

지난 5년간 우리의 쉼터요 창고였으며 신선한 채소 공급원이었다.
▲ 비닐하우스 지난 5년간 우리의 쉼터요 창고였으며 신선한 채소 공급원이었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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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우선 비가 오는 날이나 바람이 불어 추운 날에 아내와 나의 쉼터가 돼 주었다. 학교에서 버려진 책상 두 개를 얻어와 그 위에 두꺼운 송판을 덮어 탁자를 만들었다. 마음씨 좋은 이웃이 실어다 준 소나무를 잘라 의자를 만들어 우리의 쉼터로 삼았다.

그 탁자에 앉아 잔디밭 쪽의 비닐을 걷어 올리고 우리가 일구어 놓은 숙지원의 풍경을 바라보며 느꼈던 재미는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없을 것이다. 겨울이면 화로에 불을 피워 고구마를 구어 먹기도 했고, 새참으로 라면을 끓여먹던 곳도 그곳이었다. 

비록 종이컵에 담긴 커피 한 잔이었지만 얼마나 따뜻했는지. 그렇게 우리는 그곳에서 망중한을 즐겼다. 

비닐하우스가 철거되면서 뒷집의 모습이 드러났다. 
용도가 다하면 폐기되는 것은 인생사의 단면과 다르지 않다.
▲ 비닐하우스 비닐하우스가 철거되면서 뒷집의 모습이 드러났다. 용도가 다하면 폐기되는 것은 인생사의 단면과 다르지 않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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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비닐하우스는 각종 농기구와 퇴비는 물론 고추를 묶어주는 지주와 각종 비닐을 보관하는 창고 기능까지 해주었다. 

농사란 크나 작으나 갖추어야 할 연장과 농기구에는 차이가 없다고 한다. 우리 역시 5년의 세월이 쌓이니 그만큼 농사에 필요한 살림도 늘었는데 아마 비닐하우스가 없었다면 수레와 잔디깎기, 예초기는 물론 삽이며 괭이 같은 농기구가 안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닐하우스에 봄과 여름에는 고추, 강낭콩, 고구마 등을 심었다. 한 겨울에는 상추며 비트, 청경채 등 야채를 심었다.

지난여름 바깥에 심은 고구마는 멧돼지의 습격으로 망치고 말았지만 비닐하우스 안에 심은 고구마는 약 150kg정도 수확하여 지금도 가끔 점심 한 끼니의 대용식으로 먹고 있으니 어찌 하우스의 용도를 가볍게 여길 수 있을 것인가. 지금도 헐린 비닐하우스에 남은 채소는 우리 밥상에 봄기운을 제공하여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 밖에도 그곳에 야콘 모종을 만드는 작업이며 철쭉 모판을 만들어 묘목을 기르던 일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우스 조립과정. 쉽게 보였는데 의외로 잔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 비닐하우스 하우스 조립과정. 쉽게 보였는데 의외로 잔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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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아니면서 집 구실을 했던 비닐하우스. 겨울에도 채소를 가꾸는 텃밭이 되었던 곳.

요 며칠 그 비닐하우스를 철거하고 대신 자리를 옮겼다. 순전히 농사용으로 사용될 38평 정도의 비닐하우스 한 동, 그리고 당장 비가림과 휴식공간으로 활용할 10평 남짓되는 작은 하우스도 한 동을 지었다.   

그저 구경이나 하다가 간간이 거들기만 했는데도 피곤했고, 남은 것들을 치우고 농기구며 잡다한 물건들을 이쪽저쪽으로 옮기다보니 1주일이 금방 지나갔다.

텃밭에 농사용으로 지은 비닐하우스.  
세 사람이 꼬박 하루가 걸려 만든 작품이다.
▲ 비닐하우스 텃밭에 농사용으로 지은 비닐하우스. 세 사람이 꼬박 하루가 걸려 만든 작품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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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를 철거한 자리에는 오랫동안 꿈꾸었던 농가주택을 신축할 계획이다. 말하자면 비닐하우스 철거는 본격적인 귀촌을 향한 첫걸음인 셈이다.

그러나 아직 농가주택의 윤곽은 못 잡고 있다. 그간 많은 집 구경도 했고 건축설계사들과 건축업자들도 만났지만 아직도 도면만 그리고 있는 중이다. 순수한 목조주택과 철골조 목조주택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건물에 대한 의견이 달라 혼란스럽기도 하다.

집이란 한 번 지으면 물릴 수 없기에 좀 더 비교하고 검토할 작정이다. 집이 완성되기까지는 당분간 비닐하우스 신세를 져야겠다. 차를 마시거나 라면을 끓이는 일은 '작은 집'에서 말이다.

비닐하우스! 텃밭 농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참 요긴한 '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필통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비닐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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