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7년의 밤>
▲ 책표지 <7년의 밤>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고양이는 뭔가를 할퀴어야 하고, 개는 뭔가를 물어뜯어야 하며, 나는 뭔가를 써야 한다."(본문 58쪽)

할퀴고 물어뜯듯 쓴 소설. 정유정의 장편소설 <7년의 밤>을 만났다. 흡인력 있는 사건 전개와 끈질긴 추적, 깊이 파고드는 작가 정신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외면하고 싶고 돌아가고 싶은 것들 조차도 깊이 파고들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손에 땀이 배게 하는 흡인력으로 끌어들인다. 발로 뛴 생동감과 긴장,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상상력에 불을 지핀다.

등장인물을 또한 잘 살려서 책을 덮고 나서도 소설 속 인물들이 또렷하게 각인된다. 그들 모두가 현재의 성격이나 삶의 이면에는 과거의 상처가 있고 성격과 가치관등을 형성시킨 결정적인 단서들이 있다. 제각기 다른 자신들만의 '지옥'을 품고 있다. 인간은 자기 운명에서 멀리 도망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도 한다. 그러나 최서원은 결국 해낸다. 자신의 아버지가 간절히 바랐던 것처럼 야구 선수 포수였던 그가 한 개의 공, 아들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던 대로. 삶의 한 가운데서 7년 전, 그 밤 이후로 밀려나 벼랑 가에 서있던 아들 서원, 그 끝에서 어두운 밤으로 걸어 들어간 아들이 빛으로 나오기를 바랬던 것처럼.

세령강 백리 길을 호령하던 대지주의 아들이고 학교 선생의 아들이며 육성회장의 아들로 떠받들려 성장한 오배우란 별명을 가진 오영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얻고 살았고 자기 세계에서 자기소유가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남자다. 아내와 딸 세령을 매질로 잔인하게 교정해 잔인하기로 소문난 그는 세령수목원 주인이며 서울에서 치과의를 하고 있다. 그는 12년 동안 결혼생활 끝에 도무지 참지 못하고 도망간 아내를 찾는 중에도 어린 딸에게 매일 폭력을 휘둘렀다. 남들 볼 때에는 지극히 조신하고 점잖은 지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느날 밤, 딸에게 폭력을 휘두르다 딸이 밤에 도망친다. 세령마을 세령댐 신임보안 팀장으로 근무하게 된 최현수는 어둠 속 초행길에서 세령마을로 접어들다가 여자아이를 차로 치고 만다.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아이의 목을 눌러 세령댐에 던지고 마는데... 최현수의 아들 서원은 살인자의 아들로 낙인찍히고, 그가 가는 곳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따라다니고 자꾸만 삶의 변방으로 밀어낸다. 세상은 무참하게 발길질 하고 어린 운명을 내몰아 벼랑 같은 등대섬 끝자락까지 찾아오는 저주스런 운명.

나라면, 당신이라면 어떻게 갑작스런 일을 당했을 때 '운명이 난데없이 변화구를 던진 밤' 당신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동안 살아온 삶의 갑작스런 변화를 가져온다면? 그런데 벼랑 끝은 절망의 끝. 그것의 또 다른 해석은 새로운 도약이다. 빛을 향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씩 삶으로 용기 있게 걸어 들어가는 소년 서원.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7년 전 그때가 밤이 시작되던 시간이라면, 지금은 밤을 끝내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영정을 반듯하게 잡고 취재단 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빛의 바다를 건너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 세상이 나와 아버지를 놓아줄 것이므로."(본문 516쪽)
"...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길고 길었던 밤이 빛의 바다로 침몰하고 있었다."(본문 517쪽)

운명은 때로는 우리에게 산들바람을 보내고 따뜻한 빛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불행이라는 질풍노도에 떠밀려 일상을 뒤흔들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고 있듯이 분명히 눈앞에 최선을 두고도 최악의 패를 잡는 이해 못할 상황도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벼랑 끝에서도 삶을 선택하는 소년 '서원'을 보며 나도 위로가 되었다. 어쨌든 삶을 택해서, 어쨌든 일어서고 자신의 불행에 맞서는 소년이기에 응원을 보냈다. 이 소년을 통해 작가는 삶에 희망을, 끝까지 붙들고 살게 하는 용기와 위로를 전하려 했나 보다. 따뜻한 가슴을 가진 작가의 마음이 전해져온다. 작가의 말에서 정유정은 이렇게 말했다.

"소설을 끝내던 날, 나는 책상에 엎드린 채 간절하게 바랐다. '그러나' 우리들이 빅터 프랭클의 저 유명한 말처럼,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이 소설은 작가의 말대로 '그러나'에 관한 이야기다. 한 마디 덧붙인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관한 이야기다.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파멸의 질주를 멈출 수 없었던 한 사내에 관한, 그리고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주홍글씨를 안고 더 이상 물러날 데 없는 삶의 변방으로 쫓겨 간 한 소년이 다시 벼랑 끝에서 한 발씩 발을 들여놓게 되는 이야기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서 온몸으로 다시 시작하는.

벼랑 끝에 내몰린 생일지라도 부디 삶으로 한 발씩 발을 들여놓으라고, 절망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러니, 당신도 그렇게 하라고, 힘을 내고, 용기 있게 빛을 향해 걸어가라고. 그러면 길고 길었던 밤은 빛의 바다로 침몰하리라고.

덧붙이는 글 | <7년의 밤> (정유정 씀 | 은행나무 | 2011.04 | 1만3000원)



7년의 밤 (교보 특별판, 양장)

정유정 지음, 은행나무(2016)


태그:#7년의 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이 기자의 최신기사벗은 발은 자유롭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