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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붙여 지은 외정리소 안. 이곳에서는 왕의 행차시에 이루어지는 모든 행사를 담당하였다
▲ 외정리소 길게 붙여 지은 외정리소 안. 이곳에서는 왕의 행차시에 이루어지는 모든 행사를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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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에는 많은 악기가 진열이 되어있다. 편종과 특종, 편경과 특경, 운라, 공후 등. 화성행궁에서 비장청을 지나면 '외정리아문'이란 현판을 달아놓은 문이 보인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한편은 담장인 ㄷ자로 막힌 건물 마당으로 들어가게 된다. 문 좌우에는 ㄱ자 건물을 반으로 나누어, 아래는 빈 곳이고 위는 다락과 같이 꾸몄다.

그 건물 끝 방에 들어가니, 방 안에는 한 사람이 앉아(인형) 무엇인가 서류 같은 것을 들여다보고 있으며 앞에는 유기그릇들이 죽 놓여 있다. 이곳을 처음에는 정리소라고 하였으며, 정리소는 1795년 을묘원행에서 펼쳐질 각종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1794년 12월에 설치한 임시 기관이었다.

외정리소를 들어가는 문에 붙여놓은 현판. '외정리아문'이라고 쓴 것은 유수가 외정리사였기 때문인 듯
▲ 현판 외정리소를 들어가는 문에 붙여놓은 현판. '외정리아문'이라고 쓴 것은 유수가 외정리사였기 때문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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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정리소는 행사에 사용하는 각종 기물들을 보관하기도 했다
▲ 외정리소 외정리소는 행사에 사용하는 각종 기물들을 보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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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임금이 행차 시, 행사를 준비하던 곳

이 정리소는 화성 성역이 끝난 뒤 '외정리소'로 바뀌어, 정조를 비롯한 역대 임금이 행차할 때 화성행궁에서의 행사 준비를 담당하는 관청이 되었다. 당초 장용내영에 정리소를 설치했는데, 정조 20년인 1796년에 화성행궁이 완성되면서 유여택 앞에 외정리소를 세우고 '외정리아문(外整理衙門)'이란 편액을 달았다. 아마도 '아문'이란 현판을 달아 놓은 것도, 유수가 이 정리소를 관장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외정리사는 호조판서가 겸임하는 것이 상례였으나, 화성은 화성 유수가 겸직하였다. 그만큼 이 행궁에 대한 정조의 관심이 깊었다는 것을 뜻한다. 마당을 지나 외정리소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마루를 놓은 전각이 보이고, 그 안에는 ㄱ 자로 지은 광채와 같은 곳이 있다. 이 건물 안에 편경 등 제례나 연례에 사용하는 악기들을 진열하였다.

이곳은 화성유수가 직접 관장을 하였다. 모형 인물의 앞에는 유기그릇 등을 나열해 놓았다
▲ 외정리사 이곳은 화성유수가 직접 관장을 하였다. 모형 인물의 앞에는 유기그릇 등을 나열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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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정리소의 중간에 마련한 방과 마루
▲ 외정리소 외정리소의 중간에 마련한 방과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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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차례에 걸친 정조의 능행

화성행궁은 평상시에는 화성부의 유수가 근무하는 내아로도 활용하였다. 이산 정조는 1789년 10월에 이루어진 현륭원 천봉 이후, 이듬해 2월부터 정조 24년인 1800년 1월까지 11년간 12차에 걸친 능행을 거행하였다. 이때마다 정조는 화성행궁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거행하였다.

바로 이러한 여러 가지 행사를 이 외정리소에서 맡아서 했다. 이곳에 많은 악기와 유기그릇 등이 있는 이유는 행사 때 사용했기 때문이다. 우선 연희를 베풀면 상당한 인원이 필요하고 준비도 많이 해야 한다. 그렇게 준비해서 연희를 베풀 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외정리소를 분주하게 오갔을 것이다.

각종 악기들을 보관하던 곳
▲ 광 각종 악기들을 보관하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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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정리소에서 만난 악기들. 시계방향으로 편존, 편경, (아래 우측부터)특종, 특경과 운라
▲ 악기들 외정리소에서 만난 악기들. 시계방향으로 편존, 편경, (아래 우측부터)특종, 특경과 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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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 안 한편에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도를 보면 수많은 무희와 악사들, 그리고 조정 대신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이러한 행사 역시 외정리소에서 담당했다는 것이다.

왕의 모든 행사를 담당한 외정리소

외정리소 행사 담당은 정조가 승하한 뒤에도 계속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순조 1년인 1801년에는 행궁 옆에 '화령전'을 건립하여, 정조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아마도 이런 제의례도 외정리소에서 맡아 했을 것이다. 또한 그 뒤로도 순조, 헌종, 고종 등 역대 왕들이 행궁에 머물렀다는 기록으로 보아, 외정리소는 왕이 참석하는 많은 행사들을 맡아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모형으로 만든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 많은 무희들과 악사들, 그리고 대신들의 모습이 보인다.
▲ 진찬연 모형으로 만든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 많은 무희들과 악사들, 그리고 대신들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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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에 옛 모습대로 복원된 외정리소. 행궁을 돌아보면서 만난 외정리소에 진열된 편경 등 많은 악기가 낯설지 않음에서인가(사실 기자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국악을 전공했고, 고등학교 졸업을 한 후에는 국립국악원에 재직한 적이 있기에 늘 이런 악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외정리소라는 곳에 정감이 가기도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수원인터넷뉴스와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외정리소, #화성 행궁, #연희, #외정리소, #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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