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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당준비위원회를 출범한지 100여일 만인 지난 12일 녹색당 서울시당이 창당대회를 가졌다.
 창당준비위원회를 출범한지 100여일 만인 지난 12일 녹색당 서울시당이 창당대회를 가졌다.
ⓒ 녹색당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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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으로 당에 가입했습니다."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이번엔 기대를 걸어보려 합니다."
"(알고 보니) 제 모친께서도 입당하셨다고 합니다. 엄마?!"

지난 한 주 동안 트위터에 오간 시민들의 '녹색당'과 관련한 반응이다. 녹색당은 3월 4일 창당을 목표로 아직 준비 단계에 있는 정당이다. 그런데 당원 가입세가 가파르다. 2월 5일 경기도당 창당 전까지 3800명 정도였던 당원이 24일 현재는 6500여 명에 달해 불과 2주 만에 약 1.5배의 인원이 더 가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직 창당조차 하지 않은 녹색당에 사람들이 이렇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녹색정치'? 환경 넘어 일상문제까지... 원전불안 계기로 발돋움

'녹색' 하면 '환경보호'가 떠오른다. '녹색당'도 환경과 생태를 기본 모토로 시작했다. 그러나 환경보호만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녹색당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6개 가치는 생태적 지혜, 사회 정의, 참여민주주의, 비폭력, 지속가능성, 다양성 존중이다. 구체적으로는 농업 살리기, 비정규직 문제, 소수자 인권문제, 동물권, 생활임금 보장 등 환경을 넘어선 우리 삶의 다양하고 일상적인 문제이다.

생명과 평화, 환경, 풀뿌리 민주주의, 평등과 사회 정의 등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녹색당의 로고
 생명과 평화, 환경, 풀뿌리 민주주의, 평등과 사회 정의 등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녹색당의 로고
ⓒ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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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은 1979년 독일에서 최초로 탄생했다. 탈핵법과 재생에너지법을 통과시킨 독일의 녹색당과 탄소세를 만든 호주의 녹색당을 비롯해 스웨덴, 미국 등에서도 녹색당원들이 중앙정치에 영향력을 갖고 활동 중이다. 그러나 타 국가와 달리 한국의 녹색당은 1989년부터 여러 번 창당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5개 시도에서 1000명씩 총 5000명 이상의 당원을 모아야 창당할 수 있는 정당법 조건을 매번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국민적 충격이 있었던 올해는 움직임이 크게 달라졌다.

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 사무책임자 하승수 변호사는 2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불안한 환경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면서 녹색당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지금 우리 사회는 환경뿐 아니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정치가 필요한 상황이라 그 다양한 열망이 녹색당으로 모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녹색당은 올해 19대 총선에서 후보자를 출마시키기도 했다. 신규 원전 건설부지로 선정된 경북 영덕-울진의 박혜령 후보와 고리 핵발전소가 있는 부산 해운대구 기장군의 구자상 후보다. 박혜령 후보는 13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안전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핵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지역의 여건에 맞는 건강한 지역발전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환경, 채식, 동물, 여성... '평범 시민' 목소리 담는 정당

녹색당은 당내에서 다양한 의제모임을 기획하고 있다. 녹색당내 채식모임(좌)와 동물보호모임(우)의 팜플렛.
 녹색당은 당내에서 다양한 의제모임을 기획하고 있다. 녹색당내 채식모임(좌)와 동물보호모임(우)의 팜플렛.
ⓒ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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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준비 때부터 환경운동가, 공부방 선생님, 주부, 농민, 백수, 고등학생, <녹색평론> 독자 등 평범한 사람들이 중심이었던 녹색당은 의제(관심사)별 당내 공식 모임만 11개에 이를 정도로 폭넓은 관심사를 다루고 있다.

지난달부터 녹색당 활동을 시작한 30대 초반의 이아무개씨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군대 해체를 주장하고 다른 방식의 안보를 요구하기 위해 입당했다. '소수자'이기에 취재에 응하는 것도 망설여진다는 이씨는 "세계 녹색당 헌장의 여섯 가지 슬로건 중 '비폭력'에 특히 공감했다"며 "서로 내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녹색당에서도 나와 같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존재하고 있고, 당 내외에서 계속 목소리를 알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원 정준영씨는 네이버 카페 '고양이라서 다행이다'의 스태프을 맡을 정도로 동물에 관심이 많아, 녹색당에서도 '동물보호모임'에 참여 중이다. 정씨는 "동물도 생명으로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우리 녹색당 안에서 그걸 지키고자 한다"며 "동물보호에 관한 공청회나 토론회를 진행하고, 제도적으로는 식용동물 금지나 모피 반대 등 다양한 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녹색당 의제모임을 총괄하고 있는 장정화씨는 "녹색당 내부에는 탈핵 모임부터 시작해서 동물보호 모임과 채식 모임, 기본소득과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모임, 외국의 녹색당 공부 모임 등이 있으며 이 외에도 농업 모임, 여성주의 모임 등이 계속 생겨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하승수 변호사는 "기본적으로는 환경생태문제와 탈핵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만, 녹색당이 가지는 철학은 보다 다양한 주제를 포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당원들이 관심 있어 하는 다양한 의제를 다룰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존 정당이 껴안지 못한 그늘, '시민 지향'으로 극복한다

하승수 변호사는 "녹색당 당원구조를 보면 그동안 정치 자체를 멀리해오던 분들이 처음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기존 진보정당에 대한 짙은 불신도 한몫했다. 당권을 잡기 위한 갈등이나 이념이 우선되다 보니 녹색가치가 구색을 맞추려는 '장식품'으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이다.

당원 이아무개씨는 몇 년 전까지 기존 진보정당에 머물렀다가 탈당한 과거를 갖고 있다. 그는 "당권을 잡은 세력과 갈등하면서 당원으로서 맞서보려 했지만 너무 힘들어서 결국 탈당했다"며 "녹색당은 기존 정당에 비해 다양성과 상상력이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보였다.

인터넷 블로거 '채색'은 <정치 불신자인 나, 녹색당에 가입하다>라는 포스팅을 통해 "후쿠시마 폭발 사건만 봐도 원자력발전은 위험성이 큰데, 기존 정당들이 정작 핵발전 폐지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 미온적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곳이 내 의견을 대변하는 것이 힘들다고 느꼈다"라고 밝혔다.

하승수 변호사는 <녹색평론> 기고글에서 "기존 정당은 당장 자신에게 득이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환경문제를 판단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20~30년 후를 위해서는 눈앞의 권력이 아니라 풀뿌리부터 정치적 힘을 키울 필요가 있다"며 "녹색당은 기존정당과 달리 '권력을 직접 쥐지 않아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관점으로 한국 시민사회에 뿌리내려온 운동과 지역근본적 마인드를 정치라는 공간에서 풀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연대부터 정치전략까지... 창당 앞둔 녹색당 과제는

24일 현재 녹색당 총 당원 수는 6500여 명이고, 중간 집계결과 마지막 창당 지역이었던 충남에서 당원 1000명, 대구에서 1200명 이상을 확보해 3월 4일 공식적인 창당이 가능해졌다. 수년간의 실패 끝에 창당의 길이 열린 상황에서, 앞으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담는 플랫폼이 되기 위해 녹색당이 안고 갈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4월 총선에서의 야권연대 문제에 관련해, 녹색당은 "4월 총선에는 비례대표 후보를 낼 것이고 야권연대는 지역구에서 후보단일화를 하는 형태로 이루어질 예정"이라고 밝힌바 있다. 녹색당 선거기획단장 서형원씨는 24일 홈페이지를 통해 "총선 야권연대에 대한 녹색당의 구체적 방침은 3월 첫째 주 내에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당원 이아무개씨는 "녹색당이 이제 걸음마를 막 시작한 만큼 올 총선과 대선에만 목매지 말고, 다음 지방선거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시민들을 만나서 지역 뿌리의 포석을 쌓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근 녹색당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대학생 정아무개씨도 같은 차원에서 "지금 녹색당에는 기존정치에 염증을 느껴서 간 사람이 대부분이기에 앞으로 당이 사안 중심으로 가는 것보다는 더 정확하고 핵심적인 정치목표를 세워 철저한 전략을 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김지수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녹색당, #하승수 변호사, #동물보호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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