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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8일 국가정보원(국정원)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박미자 수석부위원장을 비롯한 인천 지역 교사 4명의 집을 압수수색하였다.

 

전교조는 국정원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공안몰이'에 나선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 교사들은 이달 16일부터 국정원과 서울경찰청에서 소환 조사를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해당 교사들과 현장에 동석한 변호사에 따르면, 국정원이 이들 교사에게 두고 있는 혐의는 국가보안법 중 '잠입탈출', '회합통신', '이적표현물 소지'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 수사에 대해 당사자들은 황당함을 금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박미자 부위원장의 변호를 맡은 강영구 변호사는 "압수수색 영장에 '박미자 부위원장이 알 수 없는 경로를 통하여 방북하여 북측 인사를 만나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라고 적시된 것을 봤다"고 말했다. 이들 교사들은 6·15공동선언 이후 MB정부 출범 전인 2007년까지 수 차례 평양과 금강산, 개성 등을 방문한 것을 모두 인정한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경로로 방북했다는 국정원의 주장에 대해 박 부위원장은 코웃음을 친다. 6·15공동선언 이후 각계각층에서 남북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당시 전교조 통일위원장으로서 모두 통일부의 허가를 받아서 합법적으로 방북하였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는 당시 통일부로부터 받은 방문증명서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통일부 방문증명서에는 "남북교류 협력 사업 협의를 위하여 북한 지역 방문을 승인합니다"라고 쓰여 있으며, 통일부 장관의 인장도 찍혀 있다.

 

그러니까 국정원이 주장하는 "알 수 없는 경로"는 바로 통일부인 셈이다. 최근 '평화와통일을생각하는사람들' 역시 국정원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그때도 국정원은 "알 수 없는 경로"를 통하여 북에 조문을 보냈다는 혐의를 덧씌웠으나, 결국 조문은 통일부와 협의하여 보낸 것으로 밝혀진 것과 판박이다.

 

남북교원교류 참여가 국가보안법 위반? 같이 간 교총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은 우리나라의 최대 교원단체이며, 대표적인 보수 성향의 교원단체로 알려져 있다. 최근 학생인권조례나 교권조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전교조와는 여러 면에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친정부 성향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2003년 이후 이루어진 남북 교육자들의 교류에는 전교조뿐 아니라 교총과 한국교원노동조합(한교조)도 함께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해방 이후 최대의 남북 교육자들의 합동 행사였던 2004년 금강산의 남북교육자통일대회에는 교총과 한교조뿐 아니라 교수들도 참가하였으며, 교육부 고위 관료와 시도교육청 간부들까지 참여했다.

 

당시 남쪽의 전교조를 대표하여 실무를 맡았던 인사 중의 한 명이 전교조 통일위원장이었던 박미자 수석부위원장이다. 윤종건 교총 회장과 이원희 부회장은 전교조 원영만 위원장과 박미자 통일위원장 등과 함께 북한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이번 압수수색에서 국정원은 박미자 부위원장이 북한의 김성철 조선교육문화직업동맹(교직동) 위원장을 만난 것도 문제 삼고 있다고 한다. 마치 북한의 간부를 접선(?)하여 지령을 받은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이런 국정원의 혐의에 대해서도 당사자들은 어이 없다는 반응이다. 교직동은 북한의 교원 단체로, 남북의 교원들이 교류할 때 만나서 협의하는 통로이다.

 

박 부위원장은 김성철 교직동 회장을 비밀리에 만난 것이 아니라 허가를 받고, 공개된 장소에서 만났다. 2003년 이후 북한을 공식 방문할 때에는 그가 마중 나오거나 모임을 주관하였는데 그 자리에는 교총의 윤종건 회장도, 이원희 부회장도 있었다는 것이다.

 

2004년 윤종건 교총 회장은 북한을 방문하여 교육자통일대회를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 개최하자고 제안했고, 2007년에 교총 회장이 된 이원희 회장은 교총 창립 60주년 전국교육자대회에 김성철 교직동 위원장을 정식으로 초청하기까지 했다.

 

이후 이원희 교총 회장은 보수단일후보로 서울교육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고, 지난해에는 사학진흥재단 이사장으로 임명되어 현재까지 지내고 있다.

 

그리고 박미자 부위원장은 "압수수색 영장에 '김성철 교직동 위원장을 만난 것은 불법 회합통신'이라는 내용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만약 국정원의 주장처럼 김성철 교직동 위원장을 만난 것이 불법 회합통신이라면, 같이 만나고 서울에 그를 초청까지 한 교총 회장 윤종건과 이원희는 어떻게 되는 걸까?"라고 되물었다.

 

전 교총 회장이며 현 사학진흥재단 이사장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국정원이 헛다리를 짚었다는 것이다.

 

전교조 교사가 전교조에 잠입? '언어도단'이다

 

이들 교사들이 가장 황당해하는 것은 '전교조에 잠임하여 이적단체 구성 가입' 운운하는 것이다. 이들 4명은 모두 전교조 통일위원회에서 통일운동을 해왔다. 박 부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압수수색 영장에 "친북 교사 모임을 만든 뒤, 전교조를 장악하여 친북 운동을 할 목적으로 전교조에 조직적으로 잠입한 혐의가 있다"고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앞뒤가 안 맞다. 이들이 '새시대교육운동'이라는 교사 모임을 만든 것은 모두 전교조 조합원이 된 뒤였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이 모임을 '전교조를 장악하여 친북운동을 하기 위해 만든 비밀조직'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새시대교육운동은 전교조 내부에 있는 '교육운동 전망을 찾는 사람들(교찾사)', '참교육실천연대'(참실련) 등 수많은 교사 모임 중 하나라고 밝힌다.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들이 전교조 통일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남북교원교류사업을 해왔다는 점에서 북한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교사로서 봐도, 북한 관련 자료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 국보법 위반으로 몰아가는 것은 무리스럽다. 법원은 2007년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로 기소된 교사들에 대해 "통일교육 담당 교사로서 북한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교육적인 목적"이라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전교조와 해당 교사들은 이번 사건을 "선무당 국정원의 황당한 선거용 공안몰이"로 규정한다. 소환 수사를 앞둔 박미자 부위원장은 "민주인사 고문을 '애국, 예술'이라던 이근안처럼 국정원도 머지않아 지금의 공안몰이가 부끄러워 얼굴도 못 들고 다닐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정원은 해당 교사들과는 다른 주장을 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1월 18일의 압수수색 영장은 이적표현물 소지, 배포 혐의에 대한 것이었다. 새로운 증거가 드러나면 그 부분에 대해서도 적법한 절차를 밟아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또 국정원의 압수수색이 공안정국 조성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국정원은 시기와 대상을 고려하지 않고 법을 위반한 증거가 발견되면 수사를 할 뿐"이라며 "사법절차에 따른 정당한 수사를 '공안몰이'라고 하는 것은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희망>에도 송고합니다.


태그:#국정원, #교총,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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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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