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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벗고서만 들어갈 수 있는 도서관이 있다. 32평 아파트 거실보다도 작은 도서관이 있다. 컨테이너 하나 크기에 2369권의 책과 10석의 열람석을 가진 도서관, 바로 '불광천 작은 도서관'이다. 햇빛이 쨍쨍 내려쬐던 2월 11일 오후 3시, 이 아담한 곳의 사서 김선초(28)씨를 만났다. 어려 보이는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만화를 감상하고 있어서, 인터뷰와 취재는 조용히 진행됐다.

친절히 인터뷰에 응해준 사서 김선초씨
 친절히 인터뷰에 응해준 사서 김선초씨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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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천 작은 도서관은 2월 8일 문을 열었다. 김선초씨는 처음부터 도서관 자랑에 열을 올렸다.

"저희는 외벽이 유리로 되어있고요, 은평구내 여러 도서관들과 연계‧호환되어 있고요, …"

그렇다. 직접 가보니 정말 자랑하고 싶어지는 도서관이다. 서울 지하철 세절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오른편에 불광천이 흐르고 천변 양쪽에 산책로가 길쭉이 뻗어있다. 그리고 그 위로 컨테이너 하나 크기의 유리 건물이 놓여있는데 그게 바로 이 도서관이다.

분위기, 접근성, 연계성

이 도서관의 세 가지 장점은 분위기와 접근성 그리고 연계성이다.

첫째, 분위기는 도서관의 위치와 크기에서 나온다. 보통의 큰 도서관에서 느끼기 힘든 분위기다. 어디에서건 실내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는 사무적으로만 느껴지던 사서도, 남으로만 보이던 이름 모를 이웃도 친구와 가족처럼 느껴지게 한다. 벽이 유리로 되어 바깥을 보는 것도 자유로운데, 바로 옆의 불광천 산책로는 운동 나온 시민들과 할머니 손잡고 오리 떼 구경나온 꼬마들로 정겹다.

둘째, 많은 시민들이 주변에 거주한다. 이 도서관이 생기기 전에는 좀 더 멀리 있는 큰 도서관을 이용해야 했다. 약수동에서 얼마 전 이사 온 오선영(38)씨는 벌써 네 살배기 (김)모세를 데리고 작은 도서관에 들렀다.
"가까워서 너무 좋아요"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는 오선영씨 왼편에서는 모세가 앙증맞은 고사리 손으로 고양이가 그려진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엄마와 아이가 한 도서관에서 각자 책을 골라 읽는 모습이 따뜻했다.

북적거리는 작은 도서관. 왼쪽에는 아들 모세와 함께 독서 중인 오선영씨가 보인다.
 북적거리는 작은 도서관. 왼쪽에는 아들 모세와 함께 독서 중인 오선영씨가 보인다.
ⓒ 박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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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단비 서비스
셋째, 불광동 작은 도서관은 은평구 관내 도서관들과 연계해 '책단비 서비스'를 제공한다. 책단비 서비스는 '상호대차 서비스'의 다른 이름인데, 이는 연계된 도서관끼리는 회원가입을 한 번만 하도록, 반납도 편한 곳에 하도록 만든 체계다. 게다가 지하철역과도 연계하여 근처의 지정 역에 설치된 도서 대출/반납 기기를 통해 책을 빌리고 반납할 수 있다. 이 도서관은 은평구 관내 응암, 증산, 은평, 신사, 상림 5개 도서관과 구파발, 수색, 디지털미디어시티, 녹번역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접근성과 연계성을 같이 놓고 보면, 작은 도서관의 가치가 더 잘 드러난다. 며칠 동안 찾아온 몇 백 명의 주민들 중 대부분은 아무 도서관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 즉, 대부분이 '신규' 회원이었다. 멀고, 크고, 복잡한 기존 도서관을 멀리하던 시민들이 동네 책방 같은 불광천 작은 도서관에는 발길을 돌려 준 것이다.

대여를 위해 줄을 선 주민들. 인터뷰가 잠시 중단될 정도로 북적였다.
 대여를 위해 줄을 선 주민들. 인터뷰가 잠시 중단될 정도로 북적였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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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도 다양하고 수도 많아라

김선초씨의 이런 자랑을 듣고 있자니, 왠지 트집을 잡고 싶어졌다. 그래서 적어보이는 소장 도서 수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여전했다.

"희망 도서는 한 달에 20권 내외로 신청해서 들여올 수 있고요, 지금은 2369권을 소장하고 있어서 정리하기도 힘들 정도고요, 역사, 문학, 언어, 예술, 순수과학, 사회과학, 종교, 철학, 종류별로 다양하고요, …"

솔직히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였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도서관 하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자전거를 타고 40분을 왕복해야 하는 거리 때문에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거나 책을 빌리는 것이 귀찮기만 하던 나의 학창 시절을 회상하니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다.

도서관의 세심한 배려를 보여주는 ‘저소음 시계’
 도서관의 세심한 배려를 보여주는 ‘저소음 시계’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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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나오며

불광천 작은 도서관을 나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다정함이 느껴지는 장소에서의 1시간이 마음까지 덥혀준 듯 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작은 도서관들이 지역 사회에 깊이 뿌리내려, 다른 지역의 롤 모델이 되길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런 작은 시도가 곳곳에서 꽃피우면 그것 또한 의미 있는 문화생활의 터전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불광천 작은 도서관도 모두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크기 제한 탓에 도서 장수도 한계가 있고, 유리벽이기 때문에 직사광선이 책을 상하게 할 우려도 있었다. 또 화장실이 100m 밖의 세절역 내 공중 화장실뿐이어서 사서 분이나 공부하는 학생들은 불편할 듯 했다. 정수기가 없어 타는 목을 축일 수 없는 것도 곤란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에게 편리한 도서 대여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앞으로 문제점은 고치고 장점은 더욱 빛을 발하는 불광천 작은 도서관이 되길 바라본다.

불광천 작은 도서관 이용 정보
※ 위치 : 은평구 응앙3동 586-10호 앞 불광천 휴게데크
※ 연락처 : 02-308-3117 / www.ealib.or.kr
※ 대출 자격 : 은평구 관내 도서관 회원 (불광천, 응암, 증산, 은평, 신사, 상림)
※ 대출 한도 : 1인 3책 / 14일 (1회에 한하여 7일 연장 가능)
※ 대출 연장 : 전화문의 또는 홈페이지에서 연장 가능
※ 대출 제한 : 연체 시 초과(연체)된 일수만큼 대출 정지
※ 기타 사항
회원 카드는 본인에 한해서만 사용 가능함
당일 반납한 도서는 본인 및 가족 카드로 1주일 후부터 재 대출 가능
대출 도서의 분실 또는 훼손 시에는 동일 도서로 변상
도서관에 도서가 없을 경우 홈페이지나 신청양식으로 희망도서 신청 가능


태그:#불광천 작은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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