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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부산에 있는 학교 기숙사로 돌아왔다. 지난 20일 금요일, LH공사에서 실시하는 대학생전세임대주택 입주대상자로 선정되어 서둘러 집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생전세임대주택은 '대학생의 주거안정을 위해 입주대상자로 선정된 학생이 학교 인근에 거주할 주택을 물색하면 LH공사에서 주택소유자와 전세계약을 체결한 후 저렴하게 재임대하는 주택'이다.

학생들이 부담해야 할 입주보증금은 100~200만 원, 월 임대료 7~17만 원 수준이다. 이번 모집에는 총 2만2031명이 신청했고 LH 공사는 20일 9000명의 입주대상자를 선정해 발표했다.

조건에 맞는 매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신청을 위해 몰린 사람들. (자료 사진)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신청을 위해 몰린 사람들. (자료 사진)
ⓒ 강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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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주변에 조건이 맞는 매물이 잘 없다는 말을 들은 터라 25일 이른 아침부터 학교 주변 부동산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찾는 부동산마다 하나같이 퇴짜를 맞았다. LH공사에서 요구하는 조건에 맞는 집은 절대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원 가능 주택은 건축물관리대장에 주거용으로 등재되어 있고, 전용면적이 40㎡(약 12평) 이하이며, 대상주택의 총 가격에서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이 80% 이하여야 한다. LH는 전세 혹은 부분전세 보증금만을 지원하며 부산·울산 지역을 기준으로 5000만 원(수도권 7000만 원, 광역시 5000만 원, 도 4000만 원)까지만 지원한다.

하지만 대학생들이 주로 거주하는 대학가의 원룸은 전세로 잘 나오지 않는 데다, 신축 원룸은 대부분 대출을 받아 짓기 때문에 부채비율 80% 이하 조건에 맞는 집을 구하기는 무척 힘들다. 부동산 중개인들은 하나같이 허울뿐인 제도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가장 답답한 건 당사자인 대학생들이었다.

대부분 대학생들은 주거가 매우 불안정하다. 학교 기숙사는 들어가기가 하늘에 별 따기이고 그나마도 입사비가 매년 오르고 있다.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면 전세나 월세 집을 구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집은 최소 보증금 500만 원에 한 달에 30만 원 가까운 월세를 내야 한다. 이는 여간한 가정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공부에 취업준비까지 하면서 알바를 몇 개씩 뛰기란 벅찬 것이 현실이다. 이번 대학생전세임대주택 입주자 모집에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몰려든 것도 저렴한 임대주택으로 가계의 부담을 덜어보고자 하는 바람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겨우 희망을 준 부동산은 전셋집이라며 몇 군데를 보여주었지만 LH에서 요구하는 조건에 맞는 집들은 하나같이 오래된 건물이었고 그나마도 계약금을 걸기 전에 월세로 속속 빠져나갔다.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하는 혜택... '희망고문'일 뿐

원룸, 하숙 등을 구하는 전단지가 붙은 전봇대. (자료 사진)
 원룸, 하숙 등을 구하는 전단지가 붙은 전봇대. (자료 사진)
ⓒ 박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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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대학가의 원룸은 20㎡(약 6평) 안팎의 크기인데 집 주인은 웬만하면 전세보다는 월세를 선호한다. 경제가 어렵다 보니 월세로 다달이 현금을 받아 사는 편이 나은 것이다.

전세로 내놓을 경우 같은 크기에 4000~5000만 원 정도를 받으려 하는데 드물지만 조건에 맞으면서 이 가격에 전세로 나온 집도 종종 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집주인이 내건 전세값과 LH에서 산정한 감정평가 금액에 큰 차이가 생긴다는 점이다.

입주대상자인 학생은 적절한 주택을 물색하여 관련 서류와 함께 LH공사 쪽에 '권리분석'을 요청하게 된다. 권리분석이란 '대상주택의 등기부등본 등을 근거로 부채비율을 확인하여 전세지원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로 이 과정에서 주택가격 산정 작업도 이루어진다.

내가 거주하는 부산의 약 20㎡ 크기 원룸의 경우 LH에
감정평가를 맡기면 2000~2500만 원 정도의 전세금이 산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주인이 4000만 원에 전세를 내놓아도 LH에서 2000만 원으로 책정하면 계약이 무산되는 것이다. 꼭 전세로 집을 계약하고 싶다면 나머지 2000만 원의 간극은 입주자가 메워야 한다.

이번 전세임대주택 입주자 선정은 경쟁률이 꽤 높았고, 선정된 학생의 다수는 신청 1순위(기초생활수급대상자, 한 달 가계 소득이 일반 도시 근로자의 평균 50% 이하 경우 등)로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다. 전세금 수천만 원을 단번에 구할 수 있었다면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신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겨우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조건에 맞는 집을 찾아 LH에서 책정된 금액만큼 부분전세를 건 다음 나머지를 월세로 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월세와 전세 이자를 합치면 그냥 월셋집을 구했을 때보다 약간 저렴한 수준으로 복잡한 서류를 떼 넣고 추운 날 발을 동동거리며 부동산과 LH를 오간 수고를 생각하면 허탈하기 그지없다. 조금 절약하는 것만으로 깊이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에 대해 LH 측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공고문에 입주대상자와 부동산, 집 주인을 연결하여 전 과정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1월 말까지 구축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프로그램 구축이 진행되고 있는지 미지수이고, 그보다도 근본적으로 매물이 없는 상황에서 단순한 연결망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스럽다. 말 그대로 허울뿐인 대책인 것이다.  

공고가 나고 입주자가 선정되는 몇 주간 많은 대학생들이 저렴하게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마음이 부풀었다. 그러나 진심도 현실도 없는 정책은 가난한 대학생들을 그저 희망고문하고 있을 뿐이다.


태그:#LH 대학생전세임대, #주택공사, #대학생 전세 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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