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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동그란 진원을 그릴 수 있는 건 컴퍼스에 뾰족한 침이 꼭짓점을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리가 제아무리 좋은 컴퍼스라 해도 끝이 뾰족하지 못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면 원은 울퉁불퉁해 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시작점과 끝점이 맞지 않아 억지로 맞춰야 겨우 동그란 모습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컴퍼스의 한쪽 다리 침이 동그란 진원의 중심점이 되듯 8만4천 법문의 중심점은 석가모니부처님이며 부처님의 일생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당대의 제자들입니다. 부처님을 중심으로 한 가르침은 8만4천이나 되고 부처님의 일대사를 내용으로 하는 책 또한 부지기수입니다.

104편의 시로 엮은 부처님 이야기

같은 배추, 꼭 같은 양념으로 버무린 김장일지라도 담그는 이의 솜씨와 손맛에 따라 먹는 이들이 느끼는 맛은 다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꼭 같은 멥쌀로 지을지라도 밥과 백설기, 시루떡과 가래떡이냐에 따라 맛과 식감이 달라지듯이 같은 부처님 이야기 일지라도 어떤 사람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읽는 이들이 느끼는 읽는 맛, 읽는 이들이 새기는 의미와 내용은 달라집니다. 

<맨발로 오신 부처님> 표지
 <맨발로 오신 부처님> 표지
ⓒ 조계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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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떡이라도 절편이나 가래떡이 시루떡보다 훨씬 더 쫀득거리듯이 같은 부처님의 이야기 일지라도 이렇듯 시로 엮으니 또 다른 별미입니다. 읽는 재미가 아니라 읊는 재미, 읽는 기분이 아니라 되새기며 우려내는 느낌입니다.

중학생 때 친구를 따라 절에 갔다가 스님의 말씀에 이끌리어 일 년만 도를 닦고 집에 간다는 생각으로 출가해 행자 생활을 끝내고 1968년 스님이 된 이후 아직도 집에 못가고 있다는 스님, 임효림 스님이 짓고 조계종출판사에서 출판한 <맨발로 오신 부처님>은 부처님의 일대사를 104편의 시로 엮어 담고 있습니다.

바라문!
당신은 무엇이 천한 것이며
어떤 사람이 천한 사람인지 알기나 하시오.

별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는 사람
포용하고 용서할 줄 모르고 원한 같은 것을 품고 사는 사람
간사하고 악독하며 남의 아름다운 덕행을 질투하는 사람
남을 모함하고 함정에 빠뜨리는 사람
이런 사람이 천한 사람입니다.

싸움을 좋아하여 시비를 잘하는 사람
함부로 생명을 죽이고도
연민하고 동정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
마을과 도시를 독재 권력으로 지배하고
나라의 백성을 억압과 탄압으로 지배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 말로 천한 사람입니다. -본문 84쪽-

타고난 계급, 바라문과 크샤트리아, 바이샤와 수드라로 사람의 귀천을 구별하던 시대에 사람이 귀하고 천한 것은 타고난 계급에 있지 않고 그 사람이 하는 행위에 의해 판가름 된다는 것을 설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불법(佛法)의 꼭짓점이 되기에 충분

부처님의 출생과 성장은 물론 출가와 수행, 열반까지를 아우르는 부처님 일대사를 '일목요연'하게 시구로 엮어가고 있으니 설을 쇠며 맛본 가래떡만큼이나 쫀득거리고, 식혜에서 우러나던 달콤함만큼이나 깊은 맛입니다.

한 칸 한 칸이 또렷한 사다리나 계단처럼 부처님의 일대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어 한 편의 시를 읽을 때마다 하나의 계단을 오르고 한 칸의 사다리를 오르는 듯이 부처님의 일대사가 또렷해집니다.

한 편 한 편의 시마다 시의 주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시대와 배경을 설명한 덧글이 식혜 건더기에서 느낄 수 있는 식감처럼 달려있어 또 다른 부드러움입니다.

침(針)으로 삼은 꼭짓점이 동그라미의 중심점이 되듯 <맨발로 오신 부처님>에서 읊으며 새기는 104편의 시야말로 부처님의 8만4천 가르침을 원융무애하게 그리는 불법(佛法)의 꼭짓점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덧붙이는 글 | <맨발로 오신 부처님> / 지은이 임효림 / 펴낸곳 조계종출판사 / 2012. 1. 20 / 12,000원



맨발로 오신 부처님 - 시(詩)로 읽는 부처님 일대기

임효림 지음, 조계종출판사(2012)


태그:#맨발로 오신 부처님, #조계종출판사, #임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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