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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본 망우당기념관
 밤에 본 망우당기념관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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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고모령> 노래비가 있는 인터불고호텔과 남부정류장 사이에 있는 2군사령부 뒷산인 형제봉 산자락에 임진왜란 때 귀화한 중국 장수 두사충의 묘소가 있다. 묘소 앞에는 그를 기려 지어진 모명재도 있다. 모명재란 '명(明)나라를 그리워하는[慕] 집[齋]'이라는 뜻이다. 모명재와 두사충의 묘소는 지금도 중국인들이 대구를 방문할 때 즐겨찾는 답사지이다. 그러나 집이 너무나 허술하여 멀리서 찾아온 외국인들에게 미안할 지경이다.

내용을 조금만 더 갖추면 좋을 답사지로는 망우공원의 '망우당기념관'도 들 수 있다. 온 국민이 지금도 '홍의장군'으로 기억하는 임진왜란의 영웅이자 최초의 의병장인 곽재우 장군을 기려 공원 이름도 그의 호를 따고, 임란의병관도 지어 모양새를 갖추려고 많은 애를 썼다. 하지만 정작 망우당기념관은 너무 작은데다 대체로 자물쇠로 채워져 있어 찾아온 사람들을 허탈하게 한다.

망우공원은 식민지 시대 대구 청년들의 집합장소였던 광복회관, 대구읍성의 남문이었던 영남제일관, <비 내리는 고모령> 노래비, 임진왜란의 역사를 전시물과 동영상으로 잘 보여주는 임란의병관, 대구를 낳은 금호강의 물줄기와 동촌유원지를 옆구리에 끼고 있는 지리적 조건, 그리고 대구의 최고급 호텔인 인터불고호텔 등을 갖추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므로, 망우당기념관만 조금 더 가다듬는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대로변에 안내는 이렇듯 거창하게 했는데... 서변동선사유적전시관
 대로변에 안내는 이렇듯 거창하게 했는데... 서변동선사유적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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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안타까운 곳은 '서변동선사유적전시관'이다. 대로변의 허공에 매달려 있는 안내판은 정말 거창하고, 이름도 '선사유적전시관'이라 잔뜩 기대를 가지게 하지만 현장에 가보면 너무 심했다는 배신감(!)이 느껴질 지경이다. 망우당기념관은 그래도 안을 보려면 전화를 하시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지만, 이곳은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식인데다, 대구시가 관리하는 전시관이면서도 예산 부족으로 근무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다.

신석기 유물이 많이 출토되어 "대구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선사유적전시관 내부 전시물의 표현)"는 서변동에 기념관을 세우는 데까지는 좋은 자세를 보여주었지만, 막상 관리를 하는 수준을 보면 대구시가 역사와 문화에 대해 얼마나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가 한눈에 확인된다.

왜 '대구'선열공원이 아닐까... 이름 바꿔야 할 곳들

대구시의 기관인 대구근대역사관이 1946년 10월에 일어난 '10월폭동(대구시사의 표현)' 또는 '10월항쟁'에 대해 그냥 지나치는 것도 그같은 역사인식의 결과이다. 비록 그 사건을 폭동이라고 본다 하더라도 역사관이 언급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임진왜란, 을미사변, 경술국치, 김구 암살, 한국전쟁 등을 어찌 '국사'에 실을 수 있겠나. 그런 뜻에서, 대구근대역사관은 모명재, 망우당기념관, 서변동선사유적전시관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내용 보강을 해야 한다.

신암선열공원. '대구선열공원'이라고 하지 않고 왜 신암선열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신암선열공원. '대구선열공원'이라고 하지 않고 왜 신암선열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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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이름을 바꾸어야 할 곳도 있다. 신암선열공원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생애의 편안함을 버린 지역의 독립운동가들을 한곳에 모신 '성지'이다. 이런 성지는 대구 외에는 없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답사지이며 출중한 역사교육의 현장인가.

다만 이름을 잘못 붙여 그 위상을 땅에 떨어뜨렸다. 대구박물관을 신암동에 있다고 해서 신암박물관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처럼, 이 역시 대구선열공원이라야 마땅한데 어찌 그런 명명이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지금이라도 이름을 바꾸고, 지역의 독립운동 관련 기록과 자료를 보여주는 단충각도 좀 더 단장하고 보강해야 마땅하다.

찾을 수 없는 순종나무
 찾을 수 없는 순종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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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공원에 있는 '순종나무'도 그와 비슷한 사례이다. 이 나무는 달성공원의 서침나무, 파계사의 영조나무, 동화사의 심지대사나무, 비슬산 도성암의 도성대사나무, 신숭겸유적지의 왕건나무, 종로초등학교의 최제우나무 등과는 다르다. 이들은 그 지역과 관련이 있는 역사인물의 이름을 지금에 와서 나무에 붙인 것이다. 그러므로 순종나무는 그들와 차원이 다르다. 또 도동서원 수월루 앞의 은행나무는 김굉필나무라 이름이 붙었지만 심은 사람은 그의 외증손자인 정구(당시 안동부사)이므로, 순종나무는 그보다도 또한 한 수 위에 있다.

1909년 1월 12일에 순종이 달성공원을 방문하여 기념식수로 향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고, 지금 공원 내에서 나무의 나이나 종류로 보아 가장 합당해보이는 것이 바로 서침나무 앞의 향나무라면 어찌 표식을 하지 않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서침나무' 식으로 이름을 붙인 전례를 생각한다면 적어도 '전 순종나무' 정도는 당장 붙일 수 있는 일 아닌가. 산청의 '전 구형왕릉', 의성의 '전 경덕왕릉', 논산의 '전 견훤릉' 등이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새마을운동 최초 발상지를 두고 포항시와 청도군이 서로 다투고 있는 것을 보면, 달성공원의 향나무에 '전 순종나무' 푯말을 단다고 해서 누가 잘못이라 탓할까.

세계 최대의 규모 '빙하기 암괴류', 전망대 세우자 

성재서당과 금회영각을 '다른' 색깔로 안내하고 있다.
 성재서당과 금회영각을 '다른' 색깔로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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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을 정비할 필요도 있다. 동구 미대동의 성재서당과 달성군 다사의 금회영각은 그 인근에 붉거나 흰색 안내판에 세워져 있다. 역사유적이나 문화유산은 관례적으로 짙은 갈색 바탕에 흰 글씨의 안내판이 세워지는데 이렇듯 엉뚱한 모습은 곤란하다. 그런 빛깔의 안내판으로는 오해를 사게 된다. 대구시나 기초자치단체는 이렇게 잘못된 것이 더 없나 살펴본 다음 즉각 바로잡아야 한다.

안내판의 모양과 내용은 아주 훌륭하지만 세워진 위치를 바꾸면 화룡점정의 가치를 빛낼 만한 것도 있다. 비슬산 암괴류 안내판이다. 지금은 대견사지 뒤편 봉우리 정상에 세워져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세계 최대의 빙하기 암괴류 유적이 비스듬하게 옆구리만 보이기 때문에 진면목을 감상하기에 부적절하다. 게다가 1035m 꼭대기 천길 절벽 낭떠러지 위라 아슬아슬하여 세계적 경관을 바라보기에는 마냥 온몸이 떨릴 뿐이다. 

비슬산 암괴류, 어디에서 보는 것이 가장 '전망'이 좋을까?
 비슬산 암괴류, 어디에서 보는 것이 가장 '전망'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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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만 년에서 1만 년 사이의 지구 마지막 빙하기에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땅속 거대바위들이 지표면으로 치솟아 올라오면서 형성된 '빙하기 암괴류'는 영국 다트무어, 미국 시에라네바다, 호주 타스마니아 그리고 한국의 대구 비슬산의 것들이 가장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비슬산의 것이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그래서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배우는 비슬산 암괴류,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를 찾아 감상하는 것은 답사자의 의무이자 예의이다.

비슬산 암괴류. 세계 최대의 빙하기 암괴류 유적이다. 교과서에도 나온다. 대구가 지금보다 더욱 널리 알려야 마땅한 대표적 '답사지'이다.
 비슬산 암괴류. 세계 최대의 빙하기 암괴류 유적이다. 교과서에도 나온다. 대구가 지금보다 더욱 널리 알려야 마땅한 대표적 '답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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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빙하기 암괴류를 가장 잘 보려면 비슬산자연휴양림 한가운데에서 곧장 등산로로 오르지 않고 비슬산강우관측소로 가는 포장 임도로 가다가 중간쯤에서 왼쪽을 쳐다보는 것이 최적이다. 물론 길 오른쪽에 불쑥 솟아 있는 금수덤이라는 거대 바위산 정상이 제일이지만, 오를 상황이 안 된다면 오르막길에서 그냥 바라보아도 어지간히 만족할 만하다.

그러므로 이곳에 전망대를 한 곳 설치하자는 제안이다. 나무에 가려 100%가 안 보이는 것이므로, 그 위로만 볼 수 있는 전망대만 하나 지어두면 모두들 세계적 장관을 즐길 수 있다. 또 길이 줄곧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인데다 오르막이고 그늘이 별로 없어 팍팍하므로 전망대를 설치하면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쉼터 기능까지 하게 될 터이니 소액의 예산으로 일석삼조의 빛을 내는 멋진 행정이 될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대구시 홈페이지

대구시청의 홈페이지를 정비해야 한다. '2011 대구 방문의 해'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관광정보'-'주요관광지'-'관광명소'-'역사유적지'를 보면 부인사, 북지장사, 용연사, 도동측백수림, 유가사, 파계사, 동화사, 신숭겸유적지, 옻골마을, 대구향교, 육신사, 모명재, 도동서원, 하목정, 인흥마을, 영남제일관, 서상돈고택, 불로고분군, 갓바위, 계산성당, 녹동서원, 상화고택, 제일교회, 묘골마을과 육신사, 현풍곽씨12정려각, 녹동서원이 실려 있다. 육신사와 녹동서원이 두 번 반복 소개되는 것만 보아도 이 홈페이지가 얼마나 무성의하게 만들어졌는지는 대뜸 짐작이 된다.

게다가 소개된 역사유적지들이 왜 그렇게 분류되었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지역별도 아니고 종류별도 아니다. 그렇다고 시대순인 것도 아니고, 문화재등급에 따른 분류도 아니다. 서변동 선사유적(전시관), 고인돌, 약령시, 곽재우 묘소, 최제우, 국채보상운동, 2·28민주운동 등 빠진 것도 많다.

신숭겸유적지의 표충단과 순절비각, 그 뒤로 왕건이 넘어 도망친 왕산이 보인다.
 신숭겸유적지의 표충단과 순절비각, 그 뒤로 왕건이 넘어 도망친 왕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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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청의 본 홈페이지도 들어가서 '관광안내'에 '왕건'이나 '신숭겸'을 입력해보면 신숭겸유적지, 파군재, 순절지지비, 한천서원만 나온다. 앞산의 안일암, 은적사, 임휴사, 왕굴에 대해서는 '반응'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기에는 왕건이 숨어 지냈다는 왕굴이 그 어느 것보다도 더 제격이다. 당연히 왕굴도 홈페이지에 소개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다른 자치단체의 답사지에서도 흔히 드러나는 문제점 한 가지를 지적해야겠다. 역사유적지와 문화유산들을 좀 더 깨끗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는 찾아가 보면 건물 안에 쓰레기가 쌓여 있기까지 하다.

왕굴만 해도 그렇다. 산 속에 있는 유적인데, 이런저런 사람들이 찾아와 민속신앙의 촛불을 켜고 있다. 우리나라 산은 특히 11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 '산불예방 자연환경보전 기타 산림보호'를 이유로 '입산통제'를 하고, '신고 없이 입산을 하면 2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리 공원이라고 해도 이처럼 유적지가 방치되어서는 곤란하다.

대구에 볼 것 없다? 천만의 말씀!

대구 시내를 흐르는 신천과 멀리 보이는 앞산의 풍경
 대구 시내를 흐르는 신천과 멀리 보이는 앞산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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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는 볼 것이 없다? 천만의 말씀이다. 시대순으로 나열하면 세계 최대의 빙하기 암괴류 비슬산, 가장 오래된 토성 유적 달성,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산정의 갓 쓴 돌부처 관봉 갓바위, 나라 안에 가장 많이 왕건이 남긴 흔적들, 유일하게 남은 사육신의 아들 유적 육신사, 국제적으로 유명한 약령시, 임진왜란 최고의 의병장 홍의장군 재실과 묘소, 임진왜란 때 귀화한 일본과 중국의 두 장수 김충선과 두사충 유적, 국내 최초의 민간 기부금 모금 국채보상운동 유적,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민족시인 이상화의 고택과 국내 최초의 시비, 세계에서 가장 큰 석불 동화사 통일대불 등, 볼 것도 많고 생각할 일도 많다.

물론 4·19의 디딤돌이 된 2·28민주운동 유적과 흔적을 찾기 어려운 '1946년 10월'의 유적 등을 재정비하고, 앞에 나열한 소소한 문제점들을 바로잡으면 대구는 더욱 볼 것도 생각할 것도 많은 답사지가 된다.

'2011 대구 방문의 해'는 이제 며칠 후 끝나지만, 대구를 방문할 날들은 앞으로도 많다. 로마제국의 폼페이와 잉카제국의 마추픽추는 없어졌지만, 현대사회에서 대도시가 사라질 일은 웬만해서는 없을 터, 잘 갈고 다듬으면 더욱 아름답게 빛날 대구의 역사유적과 문화유산들을 보기 위해 많은 분들께서 대구를 찾으시리라.

앞산 옆구리의 커다란 바위 아래에서 가족과 더불어 생활했던 구석기인들의 파동암음도 아직 여전하고, 그들이 물고기를 잡아먹었던 신천의 맑은 물도 예전과 같이 흐르고 있으니,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오시라, 대구로!

덧붙이는 글 | 2011년은 중앙정부가 지정한 '대구방문의 해'였습니다. 이에 2011년 1월 2일부터 이번 기사까지 모두 53회에 걸쳐 '역사유적과 문화유산 답사로 보는 대구의 풍경'을 연재하였습니다. 대구를 찾아오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내년부터는 경북 지역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1년 동안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태그:#대구방문의해, #대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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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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