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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을 기획한 호주의 글렌 바클리(Glenn Barkley) 큐레이터와 한국의 김인혜 큐레이터가 미술관 아트숍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번 전을 기획한 호주의 글렌 바클리(Glenn Barkley) 큐레이터와 한국의 김인혜 큐레이터가 미술관 아트숍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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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현대미술관(MCA)과 국립현대미술관이 한호(韓濠)수교 50주년을 맞아 호주의 글렌 바클리 큐레이터와 한국의 김인혜 큐레이터가 공동 기획한 '텔미텔미: 한국호주현대미술(1976-2011)'전이 지난 6월 호주전에 이어 내년 2월 19일까지 과천본관에서 열린다.

1976년은 한호미술교류에서 중요한 해이다. 그해 제2회 시드니비엔날레가 열렸고 백남준도 미국에서 참가했다. 당시 한국에선 이우환, 심문섭, 이강소, 곽인식 등도 출품했다. 이번 전에는 이수경, 김범, 양혜규, 김을, 정서영, 김홍주 등 한국중견작가도 참여한다.

호주작가로는 몸을 공간에 걸고 해프닝아트를 하는 작가 스텔락, 행위예술그룹인 브라운 카운실, 대자연까지도 넓은 미술로 보는 개념주의 작가들 개스코인, 위버, 앤드류, 언스워스 그리고 미디어 작가 무어 또한 원주민 작가 캔와리의 작품도 소개된다. 이번 전을 통해 호주미술의 다문화주의를 생생하게 체험하게 될 것이다.

원시문양과 첨단문명의 융합

브룩 앤드류(Brook Andrew 1970-) I '순환회로: 세계의 작동모델' 벽화 네온형광등 가변크기 2008. 작품을 직접 설명하는 작가 브룩 앤드류와 이를 통역하는 김인혜 큐레이터
 브룩 앤드류(Brook Andrew 1970-) I '순환회로: 세계의 작동모델' 벽화 네온형광등 가변크기 2008. 작품을 직접 설명하는 작가 브룩 앤드류와 이를 통역하는 김인혜 큐레이터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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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전시장 중앙 홀에 들어서면  대형설치물이 보인다. 호주로 떠나는 미술여행의 관문이라 할까. 원초적 힘이 느껴지는 검은 얼룩말 줄무늬 위에 휘양 찬란한 네온사인 번쩍인다. 이 무늬는 작가의 고향인 워라주리(Wiradjuri) 부족의 방패 문양에서 온 것이란다. 세계의 작동모델이라는 설명이 붙인 제목 '순환회로'는 그래서 아주 아시아적이다.

작가 브룩 앤드류도 호주 원주민출신이다. 그래선지 원시의 자연과 도시의 문명을 뒤섞고 물질과 정신을 혼합한 것 같다. 색채보다 문양을 중요하고, 움직이는 빛 그림이라 할 수 있는 네온사인을 포인트로 삼는다. 이 작품은 원주민의 문양과 신매체 등 첨단문명을 융합한 호주미술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 해도 좋으리라.

에밀리 푸웰리(Emily Pwerle 1922-) I '유토피아(Awekye Atnwengerrrp)' 캔버스에 합성수지 안료 124×92cm 2007
 에밀리 푸웰리(Emily Pwerle 1922-) I '유토피아(Awekye Atnwengerrrp)' 캔버스에 합성수지 안료 124×92cm 2007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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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호주미술의 근간은 주술성 높은 '원주민 미술(Aboriginal Art)'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위 방패 문양의 작품은 원주민 작가 에밀리 푸웰리이 그린 것인데 2009년 공평아트스페이스에서 처음 소개됐을 때 그 독특한 문양과 화려한 색채로 한국관객을 매려 시켰다.

호주의 원주민 전승에서는 아주 사소한 일도 크고 작은 우주의 조화로 본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유토피아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여기에 있다. 삶과 예술에도 구분이 없다. 이런 정신은 호주만 아니라 우리도 회복해야 할 가치이고 되돌아가야 할 꿈이 아닌가싶다.

호주미술이 아직 우리에게 낯설고 생소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양국문화에서 뭐가 다르고 같은지를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상호이해와 소통도 더 쉬워질 것이다.

한국 정가(正歌)와 호주 전통소리가 만나다

이수경(1963-) I '언약이 늦어가니[정 마리(1975-) 정가]' DVD사운드 2010. 크리스천 톰슨(Christian Thompson 1978-) I '가무 맘부[피의 노래]' 싱글채널 DVD 사운드 2분 2010(아래)
 이수경(1963-) I '언약이 늦어가니[정 마리(1975-) 정가]' DVD사운드 2010. 크리스천 톰슨(Christian Thompson 1978-) I '가무 맘부[피의 노래]' 싱글채널 DVD 사운드 2분 2010(아래)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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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한국 전통음악과 호주 원주민노래가 만난 작품을 먼저 보자. 우리 전통음악에는 민요나 판소리도 있지만 정가(正歌)가 있다. 이 노래는 정제된 형식에 사람의 혼을 정화시키는 양반의 노래다. 이수경 작가는 이 음악을 우연히 듣고 감동을 받고 이를 드로잉으로 바꾼 전시회가 지난 8월 아르코미술관에서 연 적이 있는데 이를 계기로 이번에 참가한다.

호주에도 한국의 정가 같은 전통노래가 있다. 톰슨의 '피의 노래'가 바로 그것이다. 이 장엄한 노래는 수난의 역사 속에서 호주 땅을 수천 년 지켜온 원주민의 혼이 담겨 있다. "나는 노인이다. 수많은 파리가 날아다니고 땅은 메말랐다. 이건 나의 정당한 피의 노래"같이 가사가 다소 난해하다. 이를 서양의 바로크 화성법으로 번안한 것이다.

에너지 넘치는 벽화형식의 텍스트 아트

로버트 맥퍼슨(Robert Macpherson 1937-) I '지저귐(Chitters)' 리처드를 위한 손수레 156점의 그림 156개의 간판 1999-2000
 로버트 맥퍼슨(Robert Macpherson 1937-) I '지저귐(Chitters)' 리처드를 위한 손수레 156점의 그림 156개의 간판 1999-2000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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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맥퍼슨의 '지저귐'이라는 작품은 일종의 '텍스트 아트'로 156점의 패널로 구성되어 있다. 검은 바탕에 흰색의 페인트를 써 강렬한 대조미를 연출한다. 호주의 길거리에 흔히 보는 간판이나 플래카드에 나오는 흔히 보는 단어를 채집해 쓰고 있다. 이렇게 호주만의 독특한 어휘가 많아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알아채기에 안성맞춤이다.

감옥이 미술관이 되듯 의적도 영웅 되다

티비 무어(TV Moore 1974-) I '네디 프로젝트' 6채널 DVD설치 사운드 43분 2004
 티비 무어(TV Moore 1974-) I '네디 프로젝트' 6채널 DVD설치 사운드 43분 2004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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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6개 채널로 된 티비 무어의 영상작품을 보자. 이 미디어 작가는 가난한 자의 편에 서 지배세력에 대한 저항과 벌리다 본의 아니게 경찰 몇 명을 살해한 전설적인 의적 '네드 켈리(Ned Kelly 1854-1880)'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그와 이름도 비슷한 잔혹한 범죄자 '네디 스미스(Neddy Smith)'와 대비시켜 진정한 애국자가 누구인지 깨우쳐준다.

이런 영웅담은 이 나라 역사와 관련이 있다. 호주는 알다시피 원래 영국이 죄인을 수송하여 정착시킨 곳이다. 하지만 호주는 여타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과 함께 전혀 다른 나라를 건설한다. 감옥을 미술관으로 만들고 가난한 이를 돕는 사람을 의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호주만의 독특한 문화가 잉태되었음을 증언한다.

폐품으로 만든 설치미술의 참신함

로잘리 개스코인(Rosalie Gascoigne 1917-1999) I '셋업' 나무에 합성수지 안료, 에나멜 용기, 나무블럭 17개, 나무타일 148개 1984
 로잘리 개스코인(Rosalie Gascoigne 1917-1999) I '셋업' 나무에 합성수지 안료, 에나멜 용기, 나무블럭 17개, 나무타일 148개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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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1982년 베니스비엔날레 호주작가였던 개스코인의 설치작품을 보자. 여기 나무판은 사람들이 울타리를 만들고 난 후 버린 파편으로 만든 것이고 에나멜 용기도 사람이 캠핑장에서 버리고 간 걸 모아 만든 것이다. 이렇게 폐품을 모아 만든 작품이 뜻밖에도 매우 시적인 조형미를 낳고 경쾌한 리듬감과 참신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은 관객도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어떤 마력을 지니고 있다. 바둑판같은 문양이나 패턴은 평평한 초원의 풍경을 연상시키고 바닥에 놓인 오브제들은 마치 땅에서 솟아난 것 같다. 그리고 작품이 바닥에 깔려 있어 관객을 더 적극적으로 감상하게 유도한다.

비슷하나 다른 양국의 '돌 작업', 통념 깨기

이승택(1932-) I '고드랫돌' 돌, 노끈 150×250cm 1956-1960. 켄 언스워스(Ken Unsworth 1931-) I '돌집[폴케를 따라서](Stone house[After Polke])' 200×78×78cm 강변의 돌, 금속 200×78×78cm 1990(오른쪽)
 이승택(1932-) I '고드랫돌' 돌, 노끈 150×250cm 1956-1960. 켄 언스워스(Ken Unsworth 1931-) I '돌집[폴케를 따라서](Stone house[After Polke])' 200×78×78cm 강변의 돌, 금속 200×78×78cm 1990(오른쪽)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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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돌 작업을 한 양국의 작가를 소개한다. 먼저 통념을 깨는 도발적 작업으로 한국미술계의 이단아라 불리는 이승택 작가의 50년대 작품 '고드랫돌'을 보자. 이 작품은 돗자리를 엮을 때 가운데를 파고 그 사이 실로 매는 돌에서 착안한 것이다. 여기서 작가는 돌멩이가 단단하다는 일반인의 상식을 부정하고 물렁물렁한 물건처럼 만든다.

그리고 이승택 작가와 같은 세대인 호주작가 켄 언스워스의 작품 '돌집'을 선보인다. 부제는 '폴케를 따라서'다. 폴케는 1986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대표로 나간 작가로 망점을 통해 불확실성까지도 그리려했다. 이 작품을 폴케 풍으로 풀어본다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알 수 없는 돌을 통해 시간의 불확실성과 그 무한성을 캐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70년대도 여전히 앞서간 백남준과 이우환

백남준이 샬롯 무어맨과 함께 1976년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즈 미술관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백남준이 샬롯 무어맨과 함께 1976년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즈 미술관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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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시대를 앞서간 한국의 두 거장 백남준과 이우환의 이야기로 글을 맺고자 한다.

백남준은 1976년 시드니비엔날레에 참가하면서 칼더 재단의 초대로 3주간 거기에 머물면서 샬롯과 함께 40여회 퍼포먼스도 벌렸다. 이번 전에 선보인 '선(禪)을 위한 TV(1963)'는 백남준의 독창적 발상이 낳은 걸작이다. 그는 TV화면을 화폭으로 보았기에 그 위에 전자파로 수직선을 쭉 긋는다. 무생물인 TV에 생명을 불어넣어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셈이다.

한국미술의 또 다른 선구자인 이우환도 같은 해 시드니비엔날레에 참가해 '상황1'을 선보였다. 그의 주특기인 '돌과 철판'의 관계항이 여기선 점을 상징하는 '전등'과 선을 상징하는 '화판'으로 대신한다. 이 두 오브제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며 만남의 미학을 제시한다. 그래서 미술의 기본인 점과 선의 관계를 기막히게 조응시킨다.

덧붙이는 글 | : 경기도 과천시 광명로 313번지 02)2188-6000 www.moca.go.kr.
전시설명회: 매일 오후1시, 3시 입장료: 성인 5000원, 중고생 무료



태그:#호주현대미술, #호주원주민미술, #시드니비엔날레, #백남준, #개스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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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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