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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2일부터 11월 2일까지의 필리핀 여행, 우리의 목적지는 바기오라는 필리핀의 북부에 있는 도시였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바기오로 가는 직행 버스를 탔다. 버스에는 우리의 1960~70년대처럼 안내양이 있었고 화장실이 달려 있었다. 버스는 바기오를 향해 끝없이 벌판을 달렸다. 구불구불한 2차선 도로였다. 우리가 오기 전까지 우기여서 비가 많이 내렸다고 한다. 비가 내려 도로가 파여 있는 데도 있고,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버스는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갔다.

차창으로 필리핀의 넓은 들녘이 보였다. 참 넓기도 했다. 그런 들녘에 우리의 가을 들녘처럼 누렇게 벼가 익어 있었다. 하얀 필리핀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기도 했다. 들녘은 우리의 들녘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도로 옆에 학교가 보이고 많은 아이들이 보였다. 그 아이들 옷차림 또한 우리의 옛 모습과 같았다. 머리를 박박 깎고, 옷차림 또한 남루한 우리 어린시절의 시골촌놈들과 비슷했다. 이렇게 농촌에 아이들이 많은 것을 봤을 때 아직 필리핀은 농경사회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닐라에서 오전 11시에 출발했는데 오후 6시경, 무려 6~7시간을 달린 뒤에야 바기오시에 도착햇다. 버스는 구불구불 높은 고개를 올라 갔다. 한참을 올라서니 산등성이에 많은 집들이 보였다. 산마루, 산등성이까지 집들이 있었다. 바기오에 도착하니 마닐라의 좀 덥고 후텁지근한 그런 날씨는 싹 가셨다. 우리의 가을 날씨처럼 서늘한 날씨였다.

바기오의 산등성이, 산마루에도 많은 집들이 지어져 있었다.
▲ 바기오의 산등성이 까지 지어진 집들 바기오의 산등성이, 산마루에도 많은 집들이 지어져 있었다.
ⓒ 조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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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로 들어서니 마침 퇴근 시간이라 많은 사람이 보였다. 필리핀도 우리처럼 도시로 사람들이 몰린다는 것이다. 옛날에 보던 '지프'라는 차종을 약간 개조해 만든 '지프니'라는 버스에 꽉 차서 매달려 가는 사람들, 필리핀에서만 볼 수 있는 색다른 풍경이다. 필리핀은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 우리의 2차선 정도였고 꾸불꾸불해서 잘 달릴 수도 없어, 도시계획이 되지 않고 자연 발생적으로 내버려 둔 느낌이 들었다. 좁다란 골목까지 차가 들어 가려면 이런 '지프니' 형태의 교통수단이 그들에게 맞으리라.

바기오는 도시계획이 잘 된 도시가 아니라서 골목이 많고 도로가 좋지를 않았다. 그래서 이런 지프형태의 버스가 필리핀의 도로 사정에는 맞았다.
▲ 필리핀의 버스,지프니 바기오는 도시계획이 잘 된 도시가 아니라서 골목이 많고 도로가 좋지를 않았다. 그래서 이런 지프형태의 버스가 필리핀의 도로 사정에는 맞았다.
ⓒ 조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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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안내하는 현지 선교사가 바기오시를 소개했다. 바기오는 해발 1600m에 위치한 고원도시. 인구는 60~70만이 살고 있고 기후가 좋아 한 때 여름에는 바기오로 행정부를 이동할 정도였다. 지금은 대통령의 여름별장이 있고, 필리핀의 육군 사관학교가 있다고 했다.

다음날 우리는 바기오의 육군사관학교를 방문했다. 선교사님이 우리를 무슨 탑으로 안내를 했다. 그 탑은 필리핀이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참전했음을 기념하는 기념비였다. 이 기념비에는 '필리핀군이 UN군의 일원으로 대한민국의 자유수호를 위해 참전해 116명이 사망하고 304명이 부상, 59명이 포로가 됐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필리핀의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한국참전기념비
 필리핀의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한국참전기념비
ⓒ 조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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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를 도운 나라 필리핀을 참 고마운 국가라고 생각하게 됐다. 앞으로 한국에 들어와 있는 필리핀 노동자나 다문화 주부인 필리핀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사람들은 사실 동남아 사람들에 대해 우리보다 못 산다고 해서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50년 전만 해도 필리핀이 우리보다 훨씬 잘 살았다. 우리 국민들도 지금은 개구리가 됐지만, 올챙이 시절을 생각해 동남아 외국인 근로자들에 좀 친절하게 대해야 하지 않을까.

바기오에 가면 바기오의 시장을 한 번 가보길 권하고 싶다. 우리의 재래시장과 같은 바기오의 시장은 정말 구경할 만했다. 풍부한 농산물, 우리 것과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것들이 구경할 만했다. 마늘, 감자는 맞는 데 우리 것과는 조금씩 다르다. 바기오에 백화점도 있지만 아직 바기오에는 아직 대형마트 같은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시민들이 주로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지 시장을 보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특히 바기오 시장의 어물전은 가히 볼만했다. 필리핀이 섬나라이기 때문에 수많은 바닷고기들의 전시장이 연출됐다.

바기오 시장의 어물전
 바기오 시장의 어물전
ⓒ 조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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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기오는 한국사람들이 어학연수로 많이 찾는 도시다. 영어권인 나라 중에서 가장 가깝고 어학연수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에서, 바기오는 한국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도시인 듯했다. 이렇듯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어학원이 많아 한국인 유학생이 많이 찾아오고 있어 바기오의 부동산 시세를 한국인이 올려놨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 아파트형태의 집을 얻으려면 월세 100만 원은 줘야 한단다. 필리핀도 물가가 많이 올라 은퇴 뒤 이곳에 이민와서 산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우리 교민 몇 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봤다. 그분들은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 '필리핀 사람들의 행동문화를 이해 못해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는 말을 가장 많이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情)문화를 갖고 있다. 그래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을 꼭 서류로 작성해 놓지 않더라도 서로 간에 정으로써 이를 모두 해결한다. 그렇지만 필리핀 사람들은 '계약문화'에 익숙하다. 무엇이든지 서류로 정확하게 작성해 놓지 않으면, 나중에 고발을 당하게 된다든가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고 한다. 결국 현지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필리핀을 등지는 경우가 많다. 

필리핀은 현재 민주주의를 채택하고는 있지만 4대 가문이 대통령을 돌아가면서 하고 있고, 전 국민의 1%인 지주계급이 모든 농경지를 갖고 있는 봉건전제사회나 다름없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이 됐을 때, 필리핀도 함께 해방 됐다는데 우리는 정치적·경제적으로 많은 발전을 하고 경제 부흥을 이뤘지만, 필리핀은 당시의 정치·경제가 그대로 머물러 있는 듯하다.

필리핀은 사실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무척 가까운 나라다. 비행기로 4시간 남짓 밖에 걸리지 않는다. 사람들도 무척 순박했다. 말을 걸면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대해 줬다. 필리핀에도 한류가 유행하고 있어 그들은 한국 연예인들도 많이 알고 있고, 한국인들에 매우 우호적이었다. 한국 정부가 필리핀과 외교관계를 좀 더 가까이 해서 필리핀의 경제개발에 참여한다면 필리핀에도 일자리도 많이 생기고 우리 젊은이들이 진출할 수 있는 '기회의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태그:#필리핀, #바기오, #지프니, #어학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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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에 관한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여행싸이트에 글을 올리고 싶어 기자회원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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