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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으로 승부하는 이야기꾼, 허영만 화백이 <식객> 이후 8년 만에 '돌아왔다'. 제목은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월드김영사), 9일 출간되는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했던 몽골 영웅 칭기즈칸이다. 구상에서 취재까지 10여 년에 걸친 준비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당연히 기대가 클 만 하다. 특히 <식객>보다 <타짜>에 더 감동을 느낀 독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짧은 단편들이 모여 거대한 장편을 이룬 <식객> '맛'도 훌륭하지만,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이야기에 '고픈' 독자라면 더욱 반가울 소식이다. 그 '맛'을 먼저 느껴봤다.

여전히 '땀'이 배어나는 이야기, 그 힘

9일 출간되는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9일 출간되는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 월드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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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아래 '말무사')는 칭기즈칸이 작은 몽골 부족 수장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적인 군주로 성장하기까지의 일대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누구나 알 법한 이야기지만, 이 작품에는 또 누구나 한 번쯤 품었음직한 물음표를 담고 있다.

그것은 "마땅한 통신 수단과 교통 수단도 없던 시대에 어떻게 그리 넓은 제국을 통치했을까?"란 의문이다. 허 화백은 이와 같은 의문을 출발점으로 칭기즈칸에 대한 탐색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얻은 '결론'은 "만화가로서 이렇게 재미있는 소재를 놓칠 수 없었다"는 것.

그 재미있는 '소재'의 일단은 1권에서부터 드러난다. 작품은 재미를 감소시키는 '전기류'를 따르지 않는다. 그 시작부터 갈등을 내세워 이야기를 끌고 간다.

정실 부인 아들로 아버지 예수게이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테무진(칭기즈칸), 그에 비해 "들판에서 굴러다니는 쇠똥 취급"을 받는 배다른 형 벡테르.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갈등이 초반 이야기의 '핵심'이다.

'간사한 자무카'? 잘∼생기고 멋있기만 한데...

심각함 사이에서도 가벼움을 잃지 않는 '허영만표 웃음'도 여전하다
 심각함 사이에서도 가벼움을 잃지 않는 '허영만표 웃음'도 여전하다
ⓒ 월드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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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갈등'의 비극적인 파국을 알고 있는 독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초반 이야기 전개는 매우 빠르다. 덕분에 지루하지 않다. 제목을 빌리자면 '말에서 내릴 새가 없다'. '한 호흡'에 읽히는 만화 본디 그대로의 '매력'을 포함하고 있다.

비록 극 초반이지만, 테무진도 '슈퍼 영웅'은 아니다. 개를 무서워하고 사냥에도 서툴다. 이런 주인공이 어떻게 성장할까, 이런 궁금증은 이른바 '영웅 성장기'식 작품에서 흔히 접하는 것이다. 그만큼 이미 '검증'을 거친 스토리 구조이기도 하다. 덕분에 이 작품은 '재미'를 놓지 않는다.

작가의 '캐릭터' 해석도 흥미를 높이는 요소다. 1권 끝 부분에 등장해 테무진과 의형제의 연을 맺는 자무카, 잘∼ 생겼다. '무지' 멋지게 그려진다. '간사한 자무카'란 통념 대신 극적인 리얼리티를 선택하면서 빚어진 결과로 보인다. 테무진에게 늑대의 사냥법을 견학시키는 과정에서 나오는 대사, '자무카'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특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늑대라 해도 가젤을 따라잡기가 여간 버거운 게 아니야. 그래서 새벽까지 기다린다. 날이 밝을 때쯤이면 밤사이 소변을 참아서 가젤들의 오줌통이 꽉 차 있는데 그 상태로는 도망칠 수 없어. 그대로 뛰다간 뒷다리에 경련이 오거나 오줌통이 터지기도 한다. 바로 그 순간이 늑대가 기다리는 기회야."

'토끼 두 마리'를 쫓는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작품 장면을 함께 넣어 구성한 주요사건 연표
 작품 장면을 함께 넣어 구성한 주요사건 연표
ⓒ 월드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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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와 같은 설정은 '픽션과 논픽션 사이'에서 왜곡된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때문인지 책 뒷 부분에는 몽골 관련 정보를 소개하는 '몽골 인사이트', 작품 관련 역사를 만화와 비교하여 해설한 '말무사에게 묻는다, Q/A 코너' 등이 함께 실려 있다. 작가의 취재 과정을 소개한 '허영만의 몽골 일지'를 읽는 맛도 제법 쏠쏠하다.

"기온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지만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오히려 한국의 쌀쌀한 추위보다는 견딜만한 기분이었다. 이유는 바람이 적고 습기가 전무한 기후 탓이었다. 취재 당시 카메라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능한데, 겨울철에 외부 촬영 후 실내로 이동하면 렌즈에 습기가 끼어 한동안 기다려야 하지만 몽골의 겨울은 무척이나 건조해 그런 걱정이 없었다." (허영만의 몽골 일지 중)

이처럼 '말무사'는 '토끼 두 마리'를 쫓는 작품이다. 만화로서의 재미와 역사적인 객관성, 그 사이에서 허 화백이 말한 "너무 알려진 얘기라 그대로 옮기다보면 재탕 밖에 안 되니까 어떻게 다른 방법으로 접근을 해야 하나"란 작가의 고민이 잘 묻어나는 작품이다.

따라서 1권을 '시승'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땀'으로 승부하는 이야기꾼, 허영만 화백은 '칭기즈칸'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작품은 칭기즈칸 당시 '초원'의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과연, 그저, 먼 옛날의 이야기일까

몽골 초원과 허영만 화백
 몽골 초원과 허영만 화백
ⓒ 월드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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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동생은 형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남편이 부인을 믿지 못하고, 부인은 남편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며,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칭찬하지 않고,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경의를 보이지 않으며, 어른이 아이를 보호하지 않고, 아이는 어른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

과연, 그저, 먼 옛날의 이야기만 일까. 이와 같은 '가치의 혼돈'이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란 걸, 우리는 '충격적인 뉴스'를 통해 거의 매일 실감하고 있다. 시대를 관통하는 '해법', 앞으로 총 12권으로 완간 예정인 '말무사'에서 기대되는 또 하나의 이야기다.


태그:#허영만, #만화, #칭기스 칸,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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