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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대 가다가 본 해운대와 광안대교. 평범하게 태종대 가려다가 친구가 뜯어말려서 이기대로 갔다.
▲ 부산 이기대 가다가 본 해운대 이기대 가다가 본 해운대와 광안대교. 평범하게 태종대 가려다가 친구가 뜯어말려서 이기대로 갔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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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옥, 윤원, 은엽. 어려운 난관을 뚫고 단신 추구 모임에 발탁, 이기대에 함께 왔다...^^
▲ 이기대에서 기옥, 윤원, 은엽. 어려운 난관을 뚫고 단신 추구 모임에 발탁, 이기대에 함께 왔다...^^
ⓒ 단신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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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들, 한 자리 숫자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만나는 친구도 있지만 몇 해 동안 못 만난 친구도 있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만나야 친구지, 라는 강박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우리는 "애 키우고, 먹고 사는 일이 좀 빠듯하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로 '성장'했을 뿐이다.

부산에 간다. 거기에 친구가 산다. 못 만난 지 6년 반, 그 애의 눈과 코와 입마저 선명하지 않다. 몇 시간에 걸쳐서 지난 10년 동안 찍어놓은 사진 파일을 조사한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의 장면을 찾아낸다. 30대 초반의 친구, 곁에는 딸내미 둘이 있다. 봄에 돋아난 나물처럼 보들보들한 애들이 지금은 초등 6학년과 4학년, 아득하다. 전화를 걸었다. 

"지예야, 우리 만나기 전에 사진 교환 같은 거, 안 해도 될까나?"
"뭐라?"
"7년 동안이나 안 봐 가지고... 몰라보면 어쩌냐고?"
"으하하하!"

새벽 5시 반에 집을 나섰다. 군산에서 부산, 포항, 울진, 삼척, 양양까지. 30대에서 50대, 열한 명의 여행 모임을 이끄는 이희복 선생님은, 본 적 없는 '배지영 친구'를 위해 모시송편과 찰밥을 각각 1상자씩 준비했다. 옛날, 먼지 이는 신작로에 버스가 하루 두세 번 다니던 시절, 시집 간 딸 '드다보러' 가는 친정 엄마 같은 마음 씀씀이다.

아름답다. 산책길에서 빠져나와 바다로 바짝 붙어 걸을 수 있다.
▲ 이기대 가는 길 아름답다. 산책길에서 빠져나와 바다로 바짝 붙어 걸을 수 있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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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오전 10시쯤에 부산 시내로 완전히 들어섰다. 나는 이희복 선생님에게 내 핸드폰에 들어있는 지예 사진을 보여 주었다. 자태가 곱고, 팔 다리가 길쭉길쭉한 친구를 자랑하면서 내 어깨는 으쓱! 앗, 실수였다. 우리 모임은 단신을 추구한다. 장신이라고 가끔 따돌림을 받는 류용희 선생님 키가 172cm. 이희복 선생님은 생각했다고 한다.

'장신이네. 아무리 배지영 친구라도, 꼭 만나야 해?'  

나는 "쫄지 마!"라는 요즘의 시대 흐름을 알고 있다. 그러니 모임의 리더가 지예의 신체 조건을 저어해도 꿇리지 않는다. 친구한테 떡과 찰밥을 줄 때에 속국이 종주국한테 조공 바치는 것처럼 하고 싶다고 했다. 일행들이 빨간 천을 바닥에 깔고, 현물을 보자기로 싸면 된다고 의견을 냈다. 그러는 사이에 차는 지예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야, 너 그대로다"라고 말할 만큼, 지예와 내 낯은 두껍지 않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딱 20년, 아이 두 명씩을 세상에 내놓은 여성들이 주고받기에는 민망한 말이라는 것쯤은 안다. 천만다행으로 세월은 우리에게서 옛 모습을 완전히 거두어가지는 못했다. 한 눈에 알아보았다. 까약,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딱 20년. "야, 너 그대로다." 라고 말할 만큼 낯이 두껍지 않아서 그냥 담백하게 굴었다.
▲ 10년 안에 만나면 친구 인정!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딱 20년. "야, 너 그대로다." 라고 말할 만큼 낯이 두껍지 않아서 그냥 담백하게 굴었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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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대로라면 우리는 태종대부터 갈 참이었다. 지예는 남이 못 되는 꼴을 못 보는, 전라남도 영광 여성이 가진 고유의 카리스마가 있다. 거기는 부산 사람이 잘 안 간다고, 진짜 부산을 보려면 무조건 이기대에 가야 한다고 했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닌 은엽의 여동생도, 인터넷 정보 검색에서도 알려주지 않은 이기대는, 지예네 집 앞에 있었다.

"우와!"

이기대 가기 위해 주차장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마음이 일렁였다. 광안대교와 해운대를 끼고 있는 푸르댕댕한 바다는, 방언처럼 터지는 사람들의 말을 빼앗아 버렸다. 일순간 고요했다. 태양은 10월 말인데도 강렬하게 살갗을 후벼 파며 파고들었다. 긴 스카프를 두르고, 가죽점퍼에 부츠까지 신은 나는, 엿 먹은 게 확실했다.   

걷다가 산책로를 벗어나 바다에 바짝 붙으면 재미있는 일을 벌일 수 있다. 파도가 들고 나는 시간을 적당히 계산하며 서 있는 동안 가슴이 콩닥거린다. 파도가 밀려오기 전에 저 편 갯바위까지 잽싸게 달려간다. 주저하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파도는 겁나서 머뭇거리는 사람을 골탕 먹인 경험이 수백만 번, 바로 덮쳐 버린다.

파도가 들고 나는 시간을 계산해서 달린다. 겁내고 머뭇거리면, 파도는 덮쳐버린다.
▲ 쫄지 말자! 파도가 들고 나는 시간을 계산해서 달린다. 겁내고 머뭇거리면, 파도는 덮쳐버린다.
ⓒ 단신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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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영화 찍었던 곳. 진정한 리더쉽은 단신에서 나온다! 
용희, 희복, 동주, 병용
▲ 이기대 <해운대> 영화 찍었던 곳. 진정한 리더쉽은 단신에서 나온다! 용희, 희복, 동주, 병용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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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젖지 않고 건너와서 마음을 놓는 순간, 바다는 산책로에 올라서려는 사람까지 후려친다. 젖은 내 바지와 신발을 보고, 반쯤은 부산 말을 쓰는 지예가 "괜찮다. 곧 마른다." 라고 했다. 그리고는 앞서나갔다. 옆에 딱 붙어 있어야만 친구인 것은 아니다. 그녀는 관광 가이드처럼 일행들 속에 섞여 이기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원래는 군부대였다. 개방된 지 몇 년 안 되어서 훼손 되지 않고 아름답다. 그렇다고 아주 비밀스러운 곳은 아니다. 영화 <해운대>에서 부산 남자는, 임진왜란 때 적장을 안고 바다에 뛰어든 두 명의 기생을 기리는 곳이라고, 서울 여자에게 말했다. 그 여자는 그 남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럴 때는 서로 눈을 봐야 한다. 내 기억으로 둘은 마주보았다.

이기대까지만 가도 된다. 그러나 지예는 오륙도까지 가야지만 진짜라고 했다. 우리보고는 말을 덜 하고(이 모임은 잡담을 추구한다), 몰아치듯 걸으라고 주문했다. 그리고는 고등학생 때 지리산을 오르던 것처럼 날아가 버렸다. 저를 만난다고 이토록 '개멋'을 내고 왔고만! 내 스타일은 배려 않는 대자유인 친구를 따라잡느라 숨이 차는데 언니들이 물었다.

"배지영, 고등학교 때 껌 좀 씹었지?"

과거가 들통 난 사람처럼, 내 표정 관리에 신경 안 써도 된다. 우리는 착한 고등학생이었으니까. '뻘짓'을 조금만 하고 다녔으니까. 띄엄띄엄, 나 결혼하기 직전까지만 그랬으니까. 그 때 지예는 목포에서 지지리 늦게 끝나는 건설 회사를 다녔다. 그 도시의 가장 큰 서점이 문 닫아도 지예는 오지 않았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그 시간에는 갈 데가 별로 없었다. 야식집에서 술하고 밥 먹고, 밤새도록 웃고 떠들면서 싸돌아다녔다. 졸리면 만화방에서 잠깐 눈 붙였다가 지예는 옷만 갈아입고 출근했다. 나는 다시 목포 외곽을 배회하다가 저녁이면 서점으로, 야심한 밤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러니까 땅!땅!땅! 껌 씹지 않았습니다이.  

끄트머리가 휘어진 수평선을 보면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실감!
▲ 오륙도 끄트머리가 휘어진 수평선을 보면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실감!
ⓒ 단신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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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끼고 걸어본 중에서 최단 시간에 감동을 준 곳
▲ 이기대 바다를 끼고 걸어본 중에서 최단 시간에 감동을 준 곳
ⓒ 단신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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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예 덕분에 '진짜' 부산을 보았다. 끄트머리가 휘어진 수평선을 보면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제는 가끔 어지럽다며, 지구의 자전이 느껴진다는 사람의 말도 믿을 거다. 이기대는 바다를 끼고 걸어본 중에서 최단 시간에 감동을 준 곳이었다. 지예가 아니었다면, 보통 그러는 것처럼, 부산은, 동해갈 때 그냥 찍고 지나는 곳이었을 뻔했다.

지예는 우리 일행들에게 밥이든, 맥주든, 무제한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됐소"라고 일갈했다. 그 애는 사람 수보다 짐 가방이 더 많아서 좁은 차에 미리 준비해 둔 생수와 맥주, 커피와 과일, 박카스, 땅콩 아몬드를 실어주었다. '양손은 무겁게'라는 미담 사례에 실릴 정도였다. 미안하고 고마운데 나는 "우리 군산에도 마트 있다이"같은 말 밖에 못했다.

잘 퍼주는 친구였다. 지예가 광주에서 살 때, 수배 중이던 학교 선배들이 명절 때면 갈 데가 없었다. 그 애는 기꺼이 자기 자취방을 내줬다. 여전히 수줍음을 타는데, 오륙도 가면서, 혼신의 연기력으로 "자, 이제 라텍스하고 진주 보러 갑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웃었지만 오선옥 언니는 내게 "친구 분, 가게 하나 봐요?"라고 진지하게 물었다.

언제 다시 만날랑가? 헤어지고 나서 사람들은 지예 칭송에 빠졌다. 지예의 매력을 한 줌 모래만큼만 봤을 뿐인데도, 그 애가 군산에 온다면, 환영 현수막을 붙이자고 했다. 매혹을 뿜어내던 이기대의 풍광은 그대로 지예 이미지가 되었다. 호칭도 '배지영 친구'에서 '지예'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멀고 먼 울진 금강송 군락지를 찾아가면서 말했다.

"지예가 추천했으니까. 지예가 가보라고 했으니까."

이기대 거쳐 오륙도까지 와야 '진짜' 부산을 본 것이라고 하네요...^^
▲ 오륙도 이기대 거쳐 오륙도까지 와야 '진짜' 부산을 본 것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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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하늘, 그리고 길이 이어진 듯 하다.
▲ 오륙도 바다와 하늘, 그리고 길이 이어진 듯 하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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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10월 28일부터 30일까지 다녀왔습니다.



태그:#이기대, #오륙도, #지예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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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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